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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일정이 끝난 체육관에서 재인이는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집에서의 재인이는 목소리가 크고 활발한 성격인데도 밖에서는 어쩐지 늘 겉돌았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찰나에 불과했다. 특히 많은 것에 예민하게 굴었다. 냄새, 시끄러운 소리 같은 것은 특히나 잘 참아내지 못했다. 거리를 지나치다가 하수구 냄새가 나면 냄새가 나는 곳까지 따라가서 그 원인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렸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도 차 소리가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나면 주저앉아 손으로 귀를 막고 멍하니 있었다.
도진도 없는데 아이가 어딘가 문제라도 있으면 어쩌지 늘 걱정이 되었고, 아이가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저렇게 자라나는 것이 내 탓인 것 같아서 늘 미안했다. 매사 긍정적이고 활달한 도진과 함께 3년을 지났다면 아이가 저렇게 외롭게 크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엄마가 왔다고 하면 재인이가 더는 놀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조용히 재인이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를 보자 담임 선생님은 활짝 표정을 피면서, 원장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함께 원장실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보통 면담이 아닌 것 같았다. 예민한 아이가 친구들을 해치지는 않았는지, 또 나뭇잎 떨어지는 걸 보고 갑자기 울어버린 건 아닌지. 나는 밀려드는 걱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복도를 걸어, 담임 선생님을 따라 원장실로 들어가 안내받은 소파에 앉았다.
원장 선생님은 나를 앉히고 얼른 따뜻한 차를 대접하더니 약간의 미소로 대화를 시작했다. 재인이의 담임은 연신 흥미로운 얼굴로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인 어머님, 아셨어요? 재인이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거.”
“네, 죄송해요.”
‘죄송하시다뇨’하고 말하고는 원장이 말을 이었다.
“지나치게 민감하고, 극단적으로 예민하고, 원하는 게 해결되지 않았을 때 우울감을 느끼는 정도가 지나치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해결되지 않았을 때 유독 성질을 냈는데 그게 우울감인 줄은 몰랐었다고 생각하면서.
“집중력이 높고 한 가지 일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언어 고르는 능력이 누구보다 탁월하고요. 저희도 계속 지켜봤는데, 재인이가 아마 영재 교육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고개를 들고 선생님들을 바라봤다. 선생님들 두 분이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을. 깜짝 소식을 전하듯 올라오는 흥분을 천천히 가라앉히는 모습을.
“저 정도라면 예전에 다녔던 어린이집에서도 분명히 관찰이 되었을 텐데 이상하네요. 아무튼 어머니, 재인이 같은 아이들은 집에서 정말 교육이 중요하거든요. 특히 어머니의 행동 양식과 제공받는 애정이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요. 영재 아이들은 에너지가 내면에 밀집되어 있어서 그걸 풀어주기 위해 어머니의 노력도 필요해요.”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싶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제부터 재인이를 위해 내가 해주어야 하는 역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재 아이는 선생님들에게도 처음이라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물어보고, 찾아보고, 그렇게 천천히 관찰해왔다면서.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아이 교육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주기 위해 나를 여기까지 불렀다면서. 우선 조금 더 세밀하게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어서 보호자의 허락을 구한다고.
나는 여름 한낮 동물원을 거니는 말처럼 느리게 눈을 끔뻑이며 그 얘기를 들었다.
아이가 평균을 훨씬 우회할 정도로 영리하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거였다. 나도 그랬다.
도진 역시 그 말을 듣고 기쁨을 감출 수 없어했다. 도진뿐만이 아니었다. 시부모와 우리 부모는 그 얘기를 듣더니 아이가 누굴 닮아 똑똑한 거냐며 자랑스러워했다. 아이는 똑같았는데 어른들이 아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게 너무 확연해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나는 그날 원장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고, 정말 기뻤지만, 사실 그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게 하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에는 재택근무를 하는 내 옆에 앉혀두고 이것저것 어린이집에서 요구했던 것들을 하게 하며, 그렇게 삶을 이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영재 교육에 대해 검색을 부지런히 해보기는 해서, 영재 아이들이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우리 아이의 교육을 책임져 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이것저것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경험치를 늘려주는 것뿐이었는데, 그것도 나 혼자는 한계가 있었다.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화상회의로 다양한 국가의 고위 공무원을 만나게 해 주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미술 상담 센터에 보내주고, 바이올린 선생님을 붙여 일주일에 한 번 과외를 받게 해주는 그런 것 말고는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