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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 관한 일들도 복잡하긴 했지만 사실 내 일도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 년 내내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에 가볼 수는 없었고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새로 맡은 국가 공무원들과는 라포를 탄탄히 형성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중동 국가들처럼 완전히 연락이 안 되는 식으로 막무가내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천성이 느리고 국가 발전에 큰 관심이 없는 데다 우리나라에서 제공하는 도움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원조가 워낙 풍부해 우리 사업이 우선이 아닌 공무원들도 많았다. 이런 이들에게는 우리가 하는 지식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공들여 설명을 해야 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정부에도 예산을 받아와야 했다. 어째서 수많은 ODA의 방법 중에서 이런 식의 협력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이 누군가를 단순히 보조해주는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지식의 협력’이라는 것을 수없이 강조해가며, 나중에는 내가 하는 말이 맞는지까지 의심해가며, 체력과 에너지를 고갈시켜 갔다. 그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어째서 필요하냐는 말에 앵무새처럼 답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국가도 교육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제 아이 하나 교육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사실에 무한한 책임을 느꼈다. 어쨌든 설명회와 토론회, 각종 회의들이 온라인에서 열렸으니, 나는 아이를 데리고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을 분주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이 지나고, 나는 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원장 선생님은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흥분된 톤으로 꾸짖듯 나를 불렀다.
“재인 어머니, 그렇게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가만히요?”
“말씀드린 대로 재인이가 가진 재주는 정말 남다르거든요. 아이를 어서 영재 아카데미에 데리고 가시든지, 아님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주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들어 멀리 화장대의 거울 속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제가 아이를 위해 뭘 더 많이 해야 하나요?”
“그럼요 어머니, 재인이는 다른 애들하고 그냥 달라요. 그런 아이가 얼마나 흔치 않은데요. 영재 아카데미에서 심화 테스트도 해보시고, 재인이한테 정확하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살펴봐주셔야 하고. 아이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를 더 세심하게 살펴야죠.”
원장은 나보다 흥분해있었다. 나더러 ‘어째서 그러고 있느냐’고 채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 나는 변한 게 없었다. 트레이닝복 하의를 입고 정장 상의를 갖춰 입은 차림으로 어제와 다름없이 재택근무 중이었고, 내 앞에는 서류들이 쌓여있었고 나는 두 시간 후에 베트남 정부와의 화상회의에 들어가야 했다.
그 전화를 끊고 나는 원장이 알아봤다는 영재 아카데미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테스트해볼 수 있느냐고 묻는 동안 재인이가 방에 들어왔는데, 나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영재 아카데미는 아이를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하고 있었는데, 전인적 활동과 다양한 대회 기회를 확보해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말이 전인적 활동이지, 대한민국 교육의 모든 목적지인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여러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영재 교육에는 아이를 위해 전면적인 희생을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원장 선생님의 문장이 얼마나 강하고 억양은 또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 대화가 끝난 후에 나는 내가 못된 엄마처럼 느껴져 아이의 등을 괜히 더 많이 쓰다듬었다.
도진은 그 얘기를 듣고 혼자 떨어져 있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연아. 우리한테는 정말 잘된 일이지. 그렇지 않아?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이고, 부모가 그만큼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거니까.”
“그래. 나도 알아.”
“우리가 해볼 수 있을 만큼 해주자. 우리 아이잖아.”
“그래. 나도 알아.”
앵무새 같이 그 말만 반복하면서, 나는 정말이지, 도진과의 대화중에 무거워 잠식당할 무게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해주어야 할 일이 뭐지. 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꾸만 쓸어내리며, 아이가 혹시나 알아챌까 봐 한숨 한번 쉬지 못하고, 그렇게 앉아 멍하니 화장대 유리로 나와 아이의 모습을 바라봤다.
어딘가에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무 데나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고, 아이가 아픈 거라면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들이 내가 사는 도시로 와서 도와주기라도 하겠지만, 아이가 뛰어난 게 문제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나중에 영재로 기대되는 진로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게 내 탓이 될까 봐. 도진조차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 수년의 시간이 모두 내 책임이 될까 봐. 나는 그게 솔직히 가장 겁이 났다. 똑똑한 아이를 교육시키는 건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바이러스로 닫힌 국경 따위는 핑곗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게 어쩌면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내가 엄마니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차올랐다.
이제 진짜 엄마로서 내가 뭔가를 아이에게 해줄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나는 엄마니까. 재인이의 하나밖에 없는 엄마니까.
아이에게는 전인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나는 자꾸 나를 탓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엄마로서 내 할 일을 다 하자고, 이미 낳은 이상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도 내 몫이라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