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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안 Nov 18. 2022

계절일기

8

  일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회사에 전화해서, 사업을 담당하는 국가의 수도 좀 줄이고, 일도 좀 줄여야겠다고. 내게는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수십 번 그 말을 되풀이하며 애를 안은 채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의식을 치르듯 박카스를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 힘을 내자, 나는 엄마다.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온 게 바로 그때였다. 나는 전화를 받기 전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나는 엄마니까, 선배님도 아시죠? 선배님도 해봤잖아. 선배님은 육아휴직도 다 써먹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저도 엄마 역할을 할 때가 됐어요. 재인이를 위해 살 때가 됐다고요. 

  전화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에 나는 선배님을 먼저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흥분한 목소리로, 평소와 다른 톤으로, 팀장이 먼저 내 이름을 불렀다. 

  “승연아!” 

  “네, 저 곧 베트남 현지랑 줌 미팅해요. 그것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야, 너 팀장 승진했어.” 

  “예?” 

  나는 날카롭게 소리를 높였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나 이번에 남미 파트로 옮기잖아. 팀장을 추천해야 했었거든. 임원 회의 방금 끝났는데, 다들 흔쾌히 오케이 하시더라. 작년에 일 많이 했잖아. 앞으로 더 많이 해야 할 거다. 아무튼 축하해, 박 팀장.”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입사 십삼 년 만의 승진은, 생각지도 못한 템포로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했을 때는 되지 않았던 일이,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쉽게 풀리는 건가. 어째서 지금이어야 하지. 드디어 나를 희생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 이때에, 아이를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이때에, 왜 하필 이때에. 

  “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애들한테 사업 피오는 물려주고 총괄 피엠 해봐.”

  “······.” 

  내가 아무 말 못 하고 있자 선배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격려했다. 내가 믿고 따르는 이 사람은, 내게 이 순간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것도 해볼 만 해. 배우는 것도 많고. 너 정도면 이제 충분히 할 수 있어. 야, 나도 애들 둘 키우면서 할 거 다 했잖아. 걱정하지 마, 못할 것 없어. 다 해.” 

  나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내 턱과 어깨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아이가 제 몸을 온전히 내게 의지한 채 얕은 숨을 쉬며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2년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또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는 시간들을 앞두고, 나는 일상을 버티는 무게들과, 눈앞에 놓인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천천히 얽매고 있다는 분명한 느낌을 받았다. 그 모든 것이 물속으로 들어간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다. 천천히, 무겁게.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좋았다. 정말 다 좋았다. 아이는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아이는 특별교육을 받아야 하는, 적어도 나보다 훨씬 나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내가 그런 인간을 낳아 기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말이다. 위험한 곳에서도 제 몫을 잘하고 있는 남편은 또 어떤가. 이 난리 통에도 제 할 일을 하며 굳건히 자리를 버텨주고 있는 그는 어떠냔 말이다. 나는 또 어떤가.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나는 매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았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자리로 가 앉으며 화장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화장대 거울에는 누렇게 뜬 내 얼굴이 반사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노란 달처럼 거울 위로 둥근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 셋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 삶은 어떤지.



  도진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도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그곳에 한 번 적응하고 나니 세상 어디든 적응하는 건 문제도 아니겠더라고, 이를테면 자신감이 생겼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환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이겠구나, 그래서 나는 그의 곁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구나. 

  나는 그의 곁에서 그런 삶을 꿈꿨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어릴 때 꿈꾸던 플로리스트가 되어 꽃집이나 하며 살아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도진과 결혼한 후에 종종 그런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도진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살자. 우리 그렇게 평생 편안하게 잘 지내자. 우리는 그렇게 잘 살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도 한 계절 스쳐갈 풍경에 불과한 것 아닐까. 이 계절이 지나면 없어질 것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낸 풍경, 영재 교육을 받느라 분주한 아이, 지금의 아이에게 먼 미지의 사람 같을 아빠. 그런 풍경들을 지나치며, 또 지나치는 줄 모르면서, 그렇게 우리는 삶을 통과하는 것 아닐까. 결국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저마다 계절의 모습을 스쳐 보내며.   

  나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에는 나와 내 아이가, 피로에 지쳤지만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려는 내 모습과 아직 어떤 꽃도 피워보지 못한 나의 작고 여린 아이가 서로를 품에 안고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살지. 이건 이 전염병이 이렇게 무섭도록 세상을 잠식하기 직전에,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말이었다. 중국은 도무지 살기 힘들 것 같은데, 그곳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나는 내게 수없이 되물었었다. 그런데 도돌이표처럼, 나는 그 질문을 다시 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그저 좋은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만약 내가 꿈꾸던 삶을 향해 갔다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꽃집을 했더라면, 그랬었다면, 지금쯤에는 운영이 어려워진 가게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내가 꿈꿨던 여유로운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염병의 시대에 대해, 인간답게 사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내게 오지 않았던 어떤 삶에 대해, 나는 오래 주저하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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