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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내가 없다는 말을 볼니 씨는 그제야 했다. 처음에 윤영은 헤나가 어디 잠깐 여행을 갔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러다 볼니 씨의 표정을 살피고서야 윤영은 아내가 완전히 떠났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챘다. 다니엘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쪽에 일자리를 잡았고, 그즈음 헤나도 볼니 씨를 떠나겠다는 의견을 공식화했다는 거였다.
볼니 씨는 그러니까 이 집에 혼자 남아 생활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영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헤나와 볼니 씨는 따로 살고 있지만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서 헤나 역시 아직까지도 볼니라는 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헤나가 매년 여름이면 토요일 오후 두어 시간 정도 근처의 숲 안내 도우미 일을 하러 볼니 씨의 집에 왔다가 주말을 보내고 간다는 것.
윤영이 볼니 씨의 집에 한동안 머물 거라는 건 집안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윤영의 소식을 들은 다니엘과 헤나가 이번 주말에 곧장 집을 찾아올 거라는 거였다. 이야기를 마친 볼니 씨가 윤영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군데군데 모르는 단어들로 비어 버린 문장이 머릿속에 묶어 둔 단어들과 함께 윤영의 곁을 떠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침묵의 시간을 대신할 것도 역시 언어뿐이라, 윤영은 볼니 씨의 간이 오븐에서 꺼낸 바게트를 한 조각 베어 물며 답했다.
“빵이 너무 딱딱해요.”
볼니 씨는 그거야 뭐 별일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삐죽 위로 세워 올리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말이다. 색이 아주 검은 빵이 있었어.”
마침 할 말이 떠올랐다는 듯 힘찬 목소리로 볼니 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조만간 그의 고향 슐레지엔 쪽으로 방향을 틀 이야기였다. 그가 얼마나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는지, 그가 보고 들은 어린 시절의 참상이 그의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인지 생각하다 윤영은 어느 구절부터 언어의 줄기를 잃어버렸다. 흐름을 놓쳐 버리자 볼니 씨의 이야기는 빛의 무리처럼 흘러내렸다. 그렇게 윤영은 자신이 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만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단어들도 문장 안에 뒤섞이면 모르는 단어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더 많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볼니 씨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윤영이 관찰한 건 볼니 씨였다. 볕에서 보니 볼니 씨는 7년 전에 비해 주름이 제법 많이 늘어 있었다. 혼자서 밥을 해 먹고 혼자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 오고 혼자서 생활의 전반을 감당하는 삶, 삶에 대한 완전한 목표가 없지만 목표를 갖는 것에도 부담은 없는 삶. 그리고 가끔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지겨워지는 삶. 이상하게도 그것은 한국에서 윤영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볼니 씨는 윤영을 집에 들이게 된 것을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윤영에게 당장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좀 봐 오자고 했다. 두 사람 먹을 것은 충분하지 않으니 창고를 좀 더 채워야 한다는 거였다. 그는 윤영을 못 본 지 7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새삼 놀라워했는데, 그보다 놀라운 건 그사이 윤영의 외모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너희 아시아인들은 정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지금 너를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단 말이야. 볼니 씨는 그렇게 말했다. 칭찬인지 비하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말이었다. 어쩌면 볼니 씨에게는 그것이 윤영에 대한 친근감을 대변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냥 독일어의 의사소통 방식이 한국어의 그것과 다른 건지도, 독일에서 허용되는 사고방식이 한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대부분, 그냥 ‘그렇다’ 정도로만 해석하는 게 좋을 말들이었다.
7년의 시간 동안 볼니 씨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헤나가 집을 나간 후에 벨라라는 이름의 뮌헨 출신 여자 친구가 잠시 이곳에서 살기도 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 달을 함께 지내다 이혼도 하지 않은 아내가 가끔 찾아온다는 이야기에 짐을 싸더니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는 거였다. 몇 년 전에는 녹내장을 심하게 앓았고, 가벼운 뇌출혈 증세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주인이 늙어 가는 만큼 낡은 집에도 곳곳에 문제가 터져 누수와 난방 문제로 한동안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사는 게 귀찮다고 그는 말했다. 사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다고.
사는 것 자체가 귀찮은 사람 치고 볼니 씨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게 윤영과 함께하고 싶은 건지 혼자서 해도 좋다는 건지 모호했지만 그는 어쨌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동차를 타고 서쪽 도시들을 따라 네덜란드까지 여행을 하고 싶었고 프랑스 고성을 배경 삼아 치르는 사이클 대회에서 응원을 하거나 선수들을 위해 물을 건네는 봉사도 해 보고 싶었다. 다니엘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 묵고 로스앤젤레스나 방콕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가 계속 떠들어 대는 말이 뜻 없는 소음으로 들릴 때마다 윤영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지루하기도 했거니와, 모르는 단어들이 출몰해 맥락을 잡을 수 없을 때마다 대화가 흐르는 지점을 잡아내느라 애를 쓰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윤영이 인색한 미소조차 잃어버렸을 즈음 볼니 씨는 잠깐 기다려 보라더니 뒤뚱거리며 걸어가 낡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볼니 씨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식탁 위에 빈자리가 생기도록 자신의 접시를 부엌 싱크대에 갖다 두고는 가벼운 휘파람을 불며 다가와 박스를 열었다. 박스에 담겨 있는 것은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과 인화되었지만 낡아버린 사진들이었다. 또렷하지 않은 컬러 사진 속에 젊은 볼니 씨와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예정이라는 그의 친구들이,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베이지색 메르세데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옆집 토마스의 젊은 시절 모습도 있었다.
“토마스는 잘 지내요?”
윤영은 그렇게 묻고 볼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위독해 병원에 있다거나, 고생을 많이 하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거나, 그런 종류의 말이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지 내심 걱정하면서. 블라인드가 올라갔을 때 우연히 본 창 안쪽 여자의 건강하고 무심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아주 잘 지내지. 젊은 애인도 생겨서 같이 지내.”
뒤통수에 화살이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7년은 충분히 많은 일이 생기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윤영이 느낀 감정에 별로 궁금함 따위 들지 않은 것이 분명한 볼니 씨는 어째서 묻느냐는 질문도 없이 조금 흥분된 채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모두 멋진 날들이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멋진 날들. 오일쇼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독할 정도로 독일의 국가 생산력이 올라가고, 공장이 매 순간 가동되던 날들이었다고. 전쟁에서 잃은 것들을 만회하려던 사람들이 작정하고 일궈 놓은 것들이라고. 나의 세대는 정말이지 20세기 격변의 역사 속에 있었다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윤영은 자주 길을 잃어버리고 그의 문장을 왜곡했다. 왜곡하고 싶어 한 것이라기보다, 그가 쓰는 어휘들을 모두 다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오해였다. 그의 말을 다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간간이 들리는 단어들로 이해를 겨우 이어 가고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생길 때마다 볼니 씨를 멈추게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그저 그의 문장들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니 그의 말을 어디까지 이해하는지 아는 것은 윤영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를 오해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대화의 진짜 모습이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이해의 정도를 결코 알 수 없다는 이치. 사람 간의 완전한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이치.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나를 이해해 달라고 부르짖는 행위. 그것이 바로 대화의 실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