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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안 Nov 18. 2022

계절일기

1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라고, 도진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계속 되뇌는 중이었다. 집 정리는 출국을 삼일 앞두고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리를 시작한 내 옷들과 가져갈 것들을 겨우 골라낸 재인이 물품은 대강 정리해서 중국으로 보낼 짐으로 싸 두었다. 택배로 미리 보내 두려고 준비한 상자들이 다섯 박스는 되었다. 

  내일 오후에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시면, 그 시간에 서둘러 택배를 보내고 관리사무소를 갔다가 유치원에 쿠키 세트라도 사서 갖다 드리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머릿속은 각종 정보와 소소한 계획들이 휘몰아쳤고 나는 그 사이에도 박스에 손을 넣었다가 자꾸 뺐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특히 재인이 짐은 너무 많은 데다가 어떤 게 필요한지 정확하게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진은 생활용품이야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거라고 했지만, 막상 가서 없으면 아쉬울 것이 분명한 것들은 쉽게 빼고 가기가 어려웠다. 재인이 몸에 꼭 맞는 옷가지들이며 몇 년 전 일본 여행 갔을 때 사온 플라스틱 미키마우스 쟁반과 수저 세트 같은 것들, 재인이가 가끔 흥미롭게 들춰보는 한글 책 같은 것들이 그랬다. 

  나는 살면서 중국 청두에 꼭 한 번 가봤다. 남편이 그곳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정착을 도울 목적으로 짧은 방문을 했던 여름이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아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했고 습한 기운에 온몸에 쉽게 땀이 올랐다. 습한 여름은 한국의 기온과 다르지 않아 익숙했지만 공기는 더 끈적했고 낯선 냄새가 어딜 가든 땅에 뿌려진 향수처럼 따라붙었다. 

  남편은 중국에 대해 물론 나보다 훨씬 잘 알았지만 생활용품을 고르는 데에는 재주가 없어서 나는 남편에게 필요할 것들을 여기저기 보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생활용품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라이팬은 보는 것마다 너무 깊이 움푹 팼고 죄 플라스틱인 생활용품은 내구성 있는 것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으며 남자 혼자 남았을 때 필요한 게 또 뭐가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도 물론 남편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보러 다녔지 아이용품을 사러 다니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중국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중국에 대해서라면 정말로 무지했다. 중국어라곤 니하오와 셰셰가 아는 것의 전부였고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중국이라곤 출장차 베이징에 한번 가본 게 다였다. 중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남편을 만난 뒤에도 그랬고 남편과 결혼을 해서도 변한 건 많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알려주는 중국에 관련된 낯선 고유명사들을 듣는 즉시 자연스레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의 삶과 그곳의 삶이 어느 정도 다른 지도 피부에 전혀 와닿지 않았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다.’,‘방글라데시도 미얀마도 척척 잘만 가는 애가 왜 엄살이냐.’는 도진의 말은 전혀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았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내가 살아온 환경과 그곳은 전혀 다를 것이고, 우리에게는 아직 제 나라에도 적응을 못한 38개월 아이가 있으며, 나도 적응이 안 될 텐데 아이와 대체 그 난국을 어떻게 헤쳐가면 좋을지 내게는 별다른 비법이 없었다. 도진의 말처럼 ‘방글라데시도 미얀마도 잘 가는’ 나지만 어디까지나 출장차 갔던 것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생활을 한 게 아니라 일을 했을 뿐이고, 내가 만났던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로부터 받은 대접과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은 일반인들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일단 일 년 동안은 가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하니 그냥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었겠지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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