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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2

몽환*에 부치다

          

  당신의 서신을 어제야 받았습니다 몽환의 생이 저를 구하는 일이라 하셨으니 다음 이야기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적소에는 붓과 종이가 석 달이 걸려야 도착합니다 한동안 밤의 두께만큼 모았다가 혼자 적요한 새벽


  당신을 위해 구름 편을 짓고 몽중의 글귀를 써 보냅니다 도끼 자국을 가지고 사는 소나무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새벽달과 저녁 해를 마음에 들이는 겨울


  궁금해할 뒷장을 앞장에 붙이고 또 붙여 보냅니다

 

  여기는 남천, 멀고 먼 하란의 성 밖 드나들면 바다에 배를 맨 마음이 출렁거려 당신의 서신을 다시 열어 봅니다


  모든 것을 보았으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세필의 구절이 꿈의 바깥인지 안쪽인지 알 수 없어 열리지 않는 귓가 수레바퀴 소리


  눈에 달빛을 담으면 바다에 내리는 눈 육화송이인 눈송이가 당신을 불러 보는 천일의 날들 달이 뜨고 함박눈이 내리고, 태어났으나 태어난 적 없는 몽환이겠거니


  그날의 날씨가 도착하기 전 옷섶에 지니고 다니던 쪽지를 먼 바다로 안고 날아가 버리는 바람


  보름 후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 두 눈을 누가 쓸어 줄까 걱정하는 새벽 달빛 아래 몽(夢) 환(幻) 포(泡) 영(影)의 긴 이야기를 씁니다 그곳으로 아홉 꿈 마지막 장의 안부를 속히 보내겠습니다

 

  *「몽환」은「구운몽」의 전작으로 전해지지만 그 작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구운몽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썼을 거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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