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총에 얽힌 사연

by 이상역

직장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경찰서에서 우편물이 왔다며 건네준다. 봉투를 열고 읽어보니 호신용 분사기에 대한 사용주의 안내장이다.


갑자기 호신용 분사기에 대한 우편물이 왜 왔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근 이십 년 전 예산국토에 근무하던 시절 과적 단속을 위해 사법경찰관리 업무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과적 단속 업무는 트럭 운전자가 단속을 방해하거나 폭력행사에 대비해서 경찰서에서 가스총 소지를 허가받아 관리했다.


안내장에는 가스총 소지 허가를 받은 사람의 이름이나 경위 등에 대한 내용은 없고, 호신용 분사기에 대한 주의사항만 적혀 있었다.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예산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가스총 관리자가 아직도 내 이름으로 관리되어 우편물을 보냈다고 한다.


예산국토를 떠난 지 이십 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내 이름으로 관리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인사이동에 따른 후속 조치를 해주지 않아 관리자가 변경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예산국토를 떠난 뒤 가스총이 내 이름으로 관리되었다면 지금까지 경찰서에서 보낸 우편물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이번에 처음 우편물을 보낸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서 담당자와 통화를 끝내고 예산국토 과적 단속업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에게 경찰서에 등록된 가스총 관리자 명의를 왜 바꾸지 않았느냐고 하자 곧바로 명의를 바꾸겠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가스총은 몇 개를 관리하느냐고 묻자 2개를 관리하고 있단다. 담당자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담당 계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스총 관리자 명의를 변경하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예산국토에서 관리하는 가스총이 내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어 분실되면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담당자 부주의도 문제지만 가스총이 내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으니 인계인수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가스총이 관리되고 있다는 행태를 생각하면 과적단속 업무를 맡은 담당자에 대한 불신만 팽배해진다. 아마도 가스총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담당자는 잘 몰랐다고 잡아뗄 것이다.


담당자는 관행대로 전임자가 하던 업무를 인수받아 관리하였을 뿐 가스총이 누구 명의로 관리되는지 관련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우리나라 행정의 투명성은 일선 기관에서 정책부서로 올라갈수록 높아지고 반대로 일선 기관으로 내려갈수록 낮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부서 보다 일선 기관은 제도보다는 관행과 선례 답습 위주로 행정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 받은 우편물로 마음이 영 불편하고 좌불안석이다.


내가 가스총을 소지하고 있다면 즉시 반납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이십 년 동안 사용하고 관리했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만 가득해진다.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지금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맡았던 다른 업무도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것에 의구심만 생겨난다.


예산국토를 떠난 지 이십 년이 지나서 근무하는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 없다. 사무소 소장과 과장과 계장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해서 확실한 처리를 부탁하겠는데 그럴 수도 없다.


예산국토는 도로 유지관리를 관리하는 국토부의 최일선 기관이다. 일선 기관의 행정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마음만 불안해진다.


직장에 출근해서 아침부터 경찰서와 사무소에 전화하느냐 바쁘게 보냈다. 그나마 경찰서에서 우편물을 보내준 것에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경찰서에서 우편물을 보내지 않았다면 가스총은 영원히 내 이름으로 관리되었을 것이다. 경찰서와 통화한 후 며칠 뒤 담당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산국토에서 계장과 담당자가 가스총을 갖고 와서 반납하겠다고 찾아왔는데 가스총을 반납하려면 신분증 사본이 필요하다며 사진을 찍어 핸드폰 문자로 보내 달란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사진 찍어 경찰서로 보냈다. 문자를 받은 경찰서 담당자는 잘 처리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담당자 문자를 받고 나자 이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처럼 시원해졌다.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는 아직도 내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 의구심이 거품처럼 부풀어 올라 가슴속을 요동치게 하는 불편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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