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업무적인 관계로 일본의 국토지리원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일본에 가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는데 이전에 발급받은 여권은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일본에 공무로 가는 것이라 관용여권을 발급받아도 되지만,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일반여권을 발급받기로 했다.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가장 먼저 사진이 있어야 한다.
수중에 있는 증명사진은 너무 작아 여권 사진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마침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이 경기도여권민원실 근처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일을 보러 갔다.
여권민원실 건너편 버스정류장 옆에서 내려 직원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사진관에 들어갔다. 사진관에 들어서면서 여권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기사 아저씨가 촬영실에 들어가 기다리란다.
잠시 후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자세를 교정하고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다. 여권 사진을 찍고 아저씨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자 오 분이면 된다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여권 사진은 아저씨가 말한 대로 오 분이 채 되지 않아 여섯 장이 인화되어 나왔다. 사진관에 사진값 이만 원을 지불하고 여권 사진을 들고 나왔다.
사진관을 나와 직원의 차를 다시 타자 직원은 벌써 여권 사진이 나왔느냐며 놀라는 표정이다. 여권 사진을 찍었으니 여권 발급을 신청하고 갈 겸 경기도여권민원실을 찾아갔다.
민원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직원에게 여권 발급 신청만 하고 나올 테니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자리한 여권민원실을 찾아가자 민원실 안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여권발급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직원에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앞섰다. 오랜만에 신청서를 쓰는데 신청서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성하고 있었다.
신청서 작성을 헤매는데 안내직원이 다가와 틀리게 쓴 것을 지우고는 자세하게 설명해 줘서 다시 고쳐 썼다. 여권발급신청서를 작성하고 여권 사진 1장을 첨부하여 안내대에 제출하자 직원이 서류를 훑어보고는 접수번호 쪽지를 건네주고 호출이 될 때까지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란다.
접수번호를 들고 대기실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번호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번호를 부르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접수 업무를 다섯 곳에서 처리해서 순서가 빠르게 다가왔다.
은행에서 번호를 호출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처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드디어 내 번호를 호출하는 표시와 함께 안내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권 발급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여권 발급업무는 은행처럼 시스템화되어 있다. 민원실에 도착해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안내대에 제출하면 직원이 신청서를 검토하고 접수번호를 건네준다.
그 번호표를 들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번호가 호출되면 접수대에 가서 신청서와 여권 사진을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여권 발급에 필요한 신상 확인과 전자서명을 하고 나면 서류처리는 완료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지대를 수납하는 곳에 가서 오만 원만 수납하면 여권 발급과 관련한 일련의 절차가 모두 끝이 난다. 여권 접수 담당자가 여권은 신청일로부터 정확하게 3일 후에 찾으러 오란다.
어느 나라에서 여권을 3일 만에 발급받는 나라가 있을까. 아마도 한국만이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여권 발급 행정서비스가 체계적이고 혁신적이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여행서를 읽어 보면 여권을 잃고 새롭게 발급받기까지 온갖 어려움과 고충을 겪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여권 발급을 신청해서 받기까지 담당자도 만나기 힘들고 행정 처리가 지루하고 더뎌 여행 일정까지 꼬이는 바람에 애를 먹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외국에서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한국은 여권 발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왜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될까. 여권 발급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기반에는 여권과 관련한 각종 정보시스템이 뒷받침되고 있어 가능할 것이다.
행정기관에 가서 이름만 대면 이전에 여권을 발급받은 사실은 물론 영어 이름 등 개인 신상에 대한 모든 이력이 화면에 뜬다. 따라서 특별한 이력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될 수밖에 없다.
여권 발급 신청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3일 후에 새로운 여권을 손에 쥘 생각을 하자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권 사진을 언제 찍을까 여권은 어디 가서 신청하나 걱정하다가 여권 사진과 발급을 한꺼번에 해결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날이 발전하는 여권 발급 행정시스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어느 기관을 찾아가던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IT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했다. 여권 발급 시스템 하나로 다른 시스템을 같은 잣대로 보는 것도 무리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권 발급 행정 시스템은 누구든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대견하고 흐뭇해졌다.
여권 발급을 신청하고 3일째 되는 날 사무실 직원이 여권민원실 근처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여권을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여권을 찾는데 필요한 위임장과 신분증도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날 오후 직원에게 받은 새로운 여권을 받아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러자 여권에서 방금 찍은 듯한 잉크 냄새가 배어 나와 기분이 좋았다.
마치 학창 시절 학기마다 새 책을 받아 들고 좋아한 것처럼 새 여권을 받아 들자 마음은 벌써 외국에 간 듯이 설레었다. 그리고 일본에 갈 생각을 떠올리자 손에 든 여권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