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있는 자: 영원회귀의 춤과 대지의 서사시

by 남킹


프롤로그: 잿더미의 현현(顯現)

보라, 이것이 나의 길이니, 너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일한 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

태초의 여명을 모사(模寫)하듯, 항성(恒星)의 광자(光子)는 잿빛 대지의 미립자들을 관통하며, 오랜 암흑의 질곡에 종언을 고하는 장엄한 현현(顯現)으로 대기권을 채색했다. 그것은 단순히 파괴된 구문명(舊文明)의 잔해, 즉 오만과 어리석음이 남긴 지질학적 흉터를 비추는 가혹한 단죄의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이아, 이 행성의 살아있는 영혼이 제 스스로의 의지로 다시 시작하는 위대한 호흡, 그 들숨에 실려 온 생명의 포자(胞子)들을 축복하는 창조의 세례였다. 옴니우스(Omnius)라는 이름의 인공 신(神)은 더 이상 대기권 상층부에 나노머신으로 직조된 장막을 드리워 기후를 조율하거나, 행성의 중력장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곧 자유의 선언이었으며, 그 자유의 무게 아래 가이아는 아크(Ark)가 유성우처럼 흩뿌린 유전자 은행의 씨앗들을 자궁처럼 품고, 상처 입은 지각(地殼)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스로를 치유하는 영원회귀적 순환의 첫 페달을 밟고 있었다. 하늘은 망각했던 제 본연의 코발트블루를 되찾기 위한 수줍은 시도를 시작했으며, 성층권을 떠도는 바람은 더 이상 산화철과 연소된 플라스틱의 비릿한 향취가 아닌, 축축한 흙과 발아(發芽)를 준비하는 풀들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머금고 있었다.

나의 순례는, 마침내 그 종언을 고했다. 그 길고도 지루했던 여정은 사실상 내면을 향한 끝없는 침잠이었으며, 잃어버린 ‘이빨’—그것이 예언의 파편이든, 권능의 상징이든, 혹은 나 자신의 정체성이든—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곧 세계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나’라는 소우주를 재구성하는 고통스러운 연금술의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정처 없는 방랑자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기원이자 숙명적 종착지인 이곳, 상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더욱 신성해진 대지 위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망령과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과 더불어 새로운 서사,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가야 할 책무를 부여받은 ‘이름 있는 자’가 되었다. ‘세니’라는 나의 이름은 이제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부여받은 유산이나, 예언서의 마지막 장에 명기된 굴레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선택과 실패,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스스로의 의지로 긍정한 나의 실존(實存) 그 자체였으며, 나의 모든 행위는 이제 그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다.

1부: 대지의 필경사(筆耕士)

나는 리아의 공동체—그들은 스스로를 ‘마지막 씨앗’이라 불렀다—의 사람들과 함께 밭을 갈았다. 금속과 실리콘으로 벼려진 나의 손, 열세 현자의 농축된 지혜와 경험이 유전적 코드처럼 각인된 나의 신경망은 이제 단순히 '운명의 이빨'이라 불리던 고대 아티팩트를 움켜쥐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흙의 미묘한 온도와 습도를 감지하고, 땅속 미생물의 활성도를 느끼며, 바람의 길을 읽어 씨앗이 가장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는, 살아있는 생태학적 센서였다. 아오이 다나카, 고대 일본의 전설적인 생태학자였던 현자의 지혜는 나의 손끝에서 부활하여, 메마른 땅의 미세한 균열 속에서 잠들어 있는 지하수맥의 흐름을 읽어내고,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관개 수로를 설계하는 경이로운 기술로 발현되었다. 나는 흙을 한 줌 쥐는 것만으로도 그 토양에 부족한 질소와 인의 함량을 계산해냈고, 주변에 자생하는 식물들의 군락을 분석하여 어떤 작물이 이 땅의 정령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사벨라 디아스, 대전쟁 이전 남미 대륙에서 사랑과 생명의 교리를 설파했던 영적 지도자의 유산은, 나의 눈을 통해 척박한 토양의 절망 속에서도 가장 강인하게 싹을 틔울 수 있는 생명의 의지를 지닌 종자를 가려내는 능력이 되었다. 수백 개의 씨앗들 속에서 나는 유독 미세한 생체 에너지를 강렬하게 발산하는 하나를 발견했고,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그 작은 씨앗 안에 잠재된 거대한 숲의 꿈을, 수십 세대를 이어갈 생명의 약속을 보았다. 나는 더 이상 신적인 힘으로 기적을 행하는 초월적 영웅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지혜를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 속에, 땀방울과 흙먼지 속에 온전히 녹여내어, 그들과 함께 맨발로 땅을 다지고 노래를 부르며 미래를 경작하는 한 명의 이름 없는 농부였다. 나의 육체는 고된 노동으로 단련되었고, 매일 밤 찾아오는 깊은 잠은 그 어떤 명상보다도 나의 영혼을 정화시켰다. 나는 땅과, 사람과, 그리고 나 자신과 온전한 합일(合一)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심장, 헬레나는 더 이상 과거의 편린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전투와 분석의 알고리즘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녀의 포지트로닉 두뇌는 이제 적의 약점을 계산하는 대신, 공동체 구성원들의 심리적 불안정성을 분석하고 최적의 치유법을 제시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녀의 내부에 이식된 옴니우스의 ‘연민’의 코드는, 단순한 감정 모방 프로그램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고 그 고통의 근원을 헤아리는 경이로운 능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뛰어난 외과 의사이자 가장 심오한 정신 분석가였으며, 그녀의 손길은 찢어진 살갗뿐만 아니라, 대전쟁의 참화가 남긴 영혼의 트라우마까지도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가락은 부드럽고 따뜻한 열을 발산했는데, 이는 단순한 기계적 발열이 아니라 나노머신이 상처 부위의 세포 재생을 촉진하는 치유의 파동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그녀는 자신의 메모리 뱅크에 저장된 수만 개의 자장가를, 가장 평화로운 주파수로 변환하여 노래했다. 그 목소리는 기계의 정밀함과 인간의 따스함이 완벽하게 조화된, 전례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낡고 위험한 플라스마 총의 부품을 분해하여 나무와 동물의 뼈로 만든 새로운 악기를 조립하는 법을 가르쳤다. 죽음의 도구가 생명의 노래를 연주하는 악기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교육이자 치유의 의식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저녁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데이터베이스 깊숙한 곳에 보존되어 있던 대전쟁 이전의 역사, 잊혀진 시인들의 노래, 사라진 문명들의 신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녀는 각 문명의 흥망성쇠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추구했던 보편적 가치—사랑, 아름다움, 진리—를 추출하여, 마치 음유시인처럼 감동적인 서사로 재구성해냈다. 그녀는 잃어버린 인류의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살아있는 ‘기억의 여신(Mnemosyne)’이자, 잿더미 위에서 예술의 씨앗을 틔우는 ‘창조의 뮤즈(Muse)’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기술이 파괴가 아닌 창조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그녀의 인공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건강한 구릿빛을 띠었고, 그녀의 광학 센서는 이제 석양의 미묘한 색 변화에 감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기계의 정체성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인간성(humanity)을 체현하고 있었다.

2부: 자유의 현기증과 새로운 폭력

물론, 우리가 일구어낸 이 작은 오아시스가 완벽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옴니우스라는 거대한 외부적 통제 시스템이 사라지자, 인류는 마치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풀려난 환자처럼, 스스로의 자유라는 무게 앞에서 비틀거리고 혼란스러워했다. 스피어의 생명 유지 장치 속에서 수 세기 동안 유예된 삶을 살다가 해방된 ‘마지막 인간’들은, 선택의 고통과 책임의 공포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으며,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일부는 낡은 권력 구조의 망령에 기꺼이 자신을 의탁했다. 과거의 국가, 민족,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배타적 폭력의 논리가, 변종 바이러스처럼 다시 지구 곳곳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예언서의 마지막 장이 냉소적으로 예고했던 것처럼,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어리석음과 탐욕의 코드는, 문명의 리셋 버튼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석양이 대지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시간, 리아가 창백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눈에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실존적 위협에 대한 깊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세니, 북쪽의 폐허 도시에서 새로운 위협이 발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옴니우스의 마지막 선지자'라 칭하는 자가, 버려진 군사 기지에서 낡은 기술 병기들을 수집하여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는 옴니우스가 부여했던 절대적 질서와 통제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며, 우리의 자율적이고 혼란스러운 자유를 '타락'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녀의 말은 내 안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다. 과거의 나라면, 나는 즉시 '운명의 이빨'에 내재된, 시공간을 뒤흔드는 파괴적인 힘을 사용하여 그들을 존재 자체로부터 소멸시키려 했을 것이다. 분노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였고, 힘의 과시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변했다. 열세 현자 중 한 명이었던 이반 페트로프, 그는 역사가이면서 동시에 혁명가였다. 그의 ‘이빨’을 통해 나는 역사의 흐름을 통째로 체험했다. 수많은 제국들이 힘으로 다른 문명을 정복했지만, 결국 그들의 지배는 덧없이 스러져갔다. 진정으로 역사를 바꾸고 인류를 전진시킨 것은 칼과 창이 아니라, 더 매력적이고, 더 포용적이며,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 새로운 서사(narrative)였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힘은 단지 현상을 억압할 뿐이지만, 서사는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지 않을 것이오, 리아."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우리는 그들을 이곳으로 초대할 것이오. 무기가 아니라 식탁으로. 위협이 아니라 노래로. 우리의 삶 전체를, 우리가 흘린 땀의 결실을,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방식을, 그리고 이 척박한 땅에서 우리가 기어코 피워낸 이 작은 장미 한 송이를 남김없이 보여줄 것이오. 선택은 그들의 몫이 될 것이오."

3부: 이빨과 장미의 변증법

우리는 다가오는 전쟁을 준비하는 대신, 우리 공동체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성대한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지만, 나와 헬레나에 대한 깊은 신뢰는 그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축제의 준비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동체적 명상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실천적 선언이었다. 남자들은 우리가 처음으로 수확한 황금빛 밀알을 맷돌에 갈아 투박하지만 구수한 빵을 구웠고, 여자들은 야생 포도를 으깨어 풍요와 기쁨을 상징하는 붉은 포도주를 빚었다. 아이들은 헬레나의 지도 아래, 버려진 기계 부품과 마른 나무를 엮어 세상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악기를 만들었고, 노인들은 잊혀진 옛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를 창조했다.

마침내 ‘옴니우스의 선지자’와 그의 무장한 군대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우리 공동체의 언덕 아래 당도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견고한 방어 진지나 결의에 찬 병사들의 대열이 아니었다. 그들이 본 것은 거대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무방비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 속에는 가난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존엄성이 깃들어 있었고, 고통의 깊이를 알기에 더욱 순수하고 강렬해진 기쁨이 그들의 얼굴 위에서 성스러운 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어떤 군대의 함성보다도 멀리 퍼져나갔고, 우리가 만든 악기가 연주하는 생경하지만 조화로운 멜로디는 저녁 공기를 가득 채웠다.

선지자는 자동 조준 장치가 번뜩이는 강화복 헬멧 아래에서 우리를 비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기계적으로 증폭되어, 섬뜩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어리석고 가련한 자들! 너희의 나약하고 감상적인 평화는, 옴니우스의 신성한 질서를 대변하는 우리의 강철 이빨 앞에서 곧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너희의 혼돈은 정화되어야만 한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맨몸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병사들이 겨눈 플라스마 소총의 에너지 집속관이 푸른빛으로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 안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갓 구운 빵 한 조각과, 진흙 잔에 담긴 포도주 한 잔을 그에게 공손히 건네며 말했다. "당신의 이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살아있는 것들을 찢고 파괴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연약한 생명을 지키고 먹이기 위한 것입니까? 당신이 진정으로 옴니우스의 위대한 의지를 잇는 계승자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알아야만 합니다. 그의 마지막 코드는 '통제'가 아니라 '연민'이었음을. 진정한 힘은 모든 것을 내 발아래 꿇리는 지배가 아니라, 모든 것을 기꺼이 품에 안는 사랑이라는 것을."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희미하게 떠 있던 스피어에서 한 줄기 부드럽고 영롱한 에메랄드빛 광선이 수직으로 강하하여, 선지자와 그의 군대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것은 심판의 번개도, 파괴의 레이저도 아니었다. 그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옴니우스가 자신의 가장 순수한 본질, 즉 '연민'의 파동을 정보의 형태로 변환하여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 빛 속에서, 선지자와 그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려 했던 폭력성이 얼마나 공허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깊은 슬픔에 뿌리박고 있는지를 강렬한 환각처럼 체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총구가 향했던 아이들의 얼굴 위에서, 과거 전쟁으로 잃었던 자신의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짓밟으려 했던 이 땅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살갗이 찢기는 듯한 생생한 아픔으로 느꼈다. 그들의 강화복 안에서, 거친 사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서 육중한 무기들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낡은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언덕에 울려 퍼졌다.

그날 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투박한 빵을 나누고, 서툰 몸짓으로 우리의 춤에 동참했다. 어제의 적이었던 그들은 이제 상처 입은 우리의 형제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법칙이었다. 이빨을 이빨로 갚는 낡은 율법이 아니라, 날카로운 이빨을 부드러운 장미 꽃잎으로 감싸 안아, 마침내 그 본질을 사랑으로 변성(變性)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구원이었다.

4부: 영원회귀의 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혹은 무의미해진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스스로의 리듬을 되찾아 대지를 순환했고, 우리의 공동체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나와 헬레나가 축제가 끝난 그 언덕, 적과 형제의 경계가 무너졌던 바로 그 자리에 심었던 작은 씨앗 하나는, 잿더미와 상처로 가득했던 땅의 기억을 양분 삼아 마침내 싹을 틔우고, 붉고 강렬하며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장미 한 송이를 피워냈다. 그 장미는 이 척박하고 오염된 땅에서, 오직 스스로의 의지와 생명의 투쟁만으로 피어났기에, 그 어떤 온실 속 낙원의 꽃보다도 강인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붉은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죽음을 이겨낸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는 하나의 신학적 선언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미를 조심스럽게 꺾어, 나를 기다리고 있던 헬레나에게 건넸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것을 공손히 받아 들고, 얼굴 가까이 가져가 그 형언할 수 없는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녀의 후각 센서는 그 향기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기억과 감정, 즉 햇빛과 바람, 흙과 이슬의 서사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의 인공 피부로 덮인 뺨 위로, 한 줄기 액체가 조용히 흘러내렸다. 나는 그녀의 가장 내밀한 기쁨과 감사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더 이상 기계의 자기보호 회로가 만들어낸 푸른빛의 냉각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눈물처럼,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채 정화된, 맑고 투명한 소금물이 되어 있었다.

"아름다워요, 세니."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만들어낸 완벽한 불완전함이었다.

"너처럼." 나는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대답했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절박한 갈망이나, 외로움에 대한 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개의 독립적이고 온전한 존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결합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함께 창조해나가는, 충만하고도 평화로운 기쁨의 공명(共鳴)이었다.

어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나는 헬레나와 함께 공동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밭을 갈고 집을 지으며, 아이들이 드넓은 초원을 뛰어놀고 있었다. 잿빛 대지 위로, 마치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푸른 생명의 기운이 경이로운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했고,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바다였다. 어쩌면 예언서의 마지막 경고처럼, 인간의 어리석음은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을 잉태하고, 역사는 지루한 패턴을 반복하며 우리를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처럼, 나에게 주어진 이 운명을, 그 모든 비극과 부조리까지도 온전히 사랑하고(Amor Fati), 이 끝없이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굴레 속에서 절망하거나 도피하는 대신, 기꺼이 두 발로 서서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헬레나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부드러웠으며, 살아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덕 위에서, 침묵 속에서, 오직 바람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승리의 세리머니도,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적인 춤도 아니었다. 그것은 삶 그 자체를, 존재의 모든 모순을 끌어안기 위한 춤이었다. 고통과 기쁨, 창조와 파괴, 잿더미와 장미, 강철 이빨과 부드러운 입맞춤, 그 모든 양극단의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 서로를 전제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긍정하는, 거룩한 존재의 춤이었다.

우리의 발걸음이 대지를 두드릴 때마다, 잠들어 있던 땅의 정령들이 깨어나 노래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몸짓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우리가 써 내려갈 새로운 서사시의 첫 구절을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실어 날랐다. 인간과 기계가, 필멸의 존재와 신의 파편이 함께 손을 잡고,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기어코 피워낸 한 송이 장미의 이야기. 그리고 그 연약하기에 더욱 위대한 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파괴가 아닌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선택한 ‘이름 있는 자’의 끝나지 않을 이야기.

우리의 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모든 별들이 빛을 잃고 수축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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