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 5월 23일, 그 사건 직후, 프라하
창밖으로 세 명의 인간이 던져진 후, 수상 집무실을 지배한 것은 잠시의 경악 어린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마치 던져진 자들의 운명처럼, 15미터 아래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살아있다는 외침이 들려오고, 몇 발의 총성이 허공을 가른 뒤, 방 안은 다시금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열기로 가득 찼다. 투른 백작의 선언은 그 용광로에 붓는 마지막 기름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의 손으로 열어야 한다!"
그 말을 신호로, 귀족들은 몽상에서 깨어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더 이상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다. 명백한 반란, 조직적인 혁명이었다. 그들은 즉시 30인의 디렉토리(Direktoren), 즉 임시정부 위원회를 선출했다. 투른 백작과 바츨라프 폰 루파가 그 중심에 섰다. 야쿠프는 주인의 곁에서, 역사의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운명을 느끼며 이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의 펜촉이 양피지를 스치는 소리는 마치 다가올 전쟁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렸다.
임시정부의 첫 번째 임무는 프라하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었다. 흐라드차니 성의 무기고가 열렸고, 도시의 민병대가 소집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합스부르크 충성파 귀족들은 가택에 연금되었다. 프라하 대주교는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끌려 나와 구금되었고, 예수회 소속 사제들은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그들의 도서관과 재산은 '반란 자금'으로 몰수되었다.
야쿠p은 그날 오후, 투른 백작의 지시로 '아폴로기아(Apologia)'라 불릴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전 유럽에 자신들의 명분을 알리기 위한 문서였다. 늙은 법률가와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랐다.
“우리는 황제 폐하께 반역한 것이 아니오.” 한 법률가가 목청을 돋우었다. “우리는 보헤미아 왕국의 헌법과 ‘폐하의 서신’을 유린한 사악한 간신들을 처단했을 뿐이오. 이것은 반역이 아니라, 정의의 집행이다!”
“그렇소. 우리는 우리의 오랜 권리, 왕을 선출하고 우리의 신앙을 지킬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오. 창밖으로 던져진 자들은 황제의 대리인이 아니라, 보헤미아의 자유를 강탈하려던 폭군의 하수인들이었소.” 신학자가 덧붙였다.
야쿠프는 그들의 말을 받아 적으며 씁쓸함을 느꼈다. '정의의 집행'. 거창한 단어였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겁에 질려 목숨을 구걸하던 비서 파브리키우스의 얼굴이었다. 과연 정의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감상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톨의 먼지에 불과했다. 그는 그저 서기일 뿐이었다.
선언문은 라틴어와 독일어, 체코어로 번역되어 인쇄기로 찍혀 나갔다. 며칠 안에 이 종이들은 말을 탄 전령들의 손에 들려 신성 로마 제국의 모든 제후들에게, 그리고 국경 너머 프랑스와 잉글랜드,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궁정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 프라하에서 던져진 돌멩이가 온 유럽이라는 호수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그때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다.
도시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한편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외치는 축제 같은 열기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복에 대한 깊은 공포가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야쿠프는 저녁에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 틈으로 불안하게 밖을 내다보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골목은 낯설었다. 사람들은 식량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대장간에서는 농기구를 녹여 창과 칼을 만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프라하는 거대한 요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1618년 6월 초, 오스트리아 그라츠
슈타이어마르크의 대공, 페르디난트는 그라츠의 성채에 있는 자신의 개인 예배당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창백한 새벽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그의 금욕적인 얼굴 위에 성인들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독실했다. 그의 신앙은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이루는 뼈대였다. 그는 자신이 이단이 들끓는 시대에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신께서 선택한 도구라고 굳게 믿었다.
프라하의 소식은 닷새 전에 도착했다. 전령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었을 때, 그의 측근들은 대공이 분노로 폭발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페르디난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빛을 얼음처럼 차갑게 빛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예배당으로 들어와 밤낮으로 기도했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는 신성한 의무감을 느꼈다. 프라하의 반란은 단순한 정치적 도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고, 거룩한 질서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었다. 그의 사촌이자 황제인 마티아스는 늙고 병들어, 타협과 유화책으로 이단의 독버섯이 자라도록 방치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그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의 검이었다.
기도를 마친 페르디난트가 일어섰을 때, 그의 눈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그는 집무실로 돌아와 그의 충직한 조언자이자 재상인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를 불렀다.
“전령들을 준비하시오.” 페르디난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한 명은 마드리드로, 다른 한 명은 뮌헨으로 보낼 것이오.”
에겐베르크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이 가져올 재앙적인 결과를 염려했다. “전하, 아직은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시간이 있사옵니다. 마티아스 폐하께서도 협상을 원하십니다.”
“협상이라?” 페르디난트가 차갑게 되물었다. “독사를 앞에 두고 협상을 하는 사람이 있소? 독사의 머리는 짓밟아야 하는 것이오. 마티아스 폐하의 시대는 끝났소, 재상. 이제는 나의 시대, 강철의 시대가 되어야 하오.”
그는 책상에 앉아 직접 펜을 들었다. 그의 손놀림은 빠르고 단호했다.
첫 번째 편지는 마드리드의 펠리페 3세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으로서, 가톨릭 세계의 가장 강력한 군주로서의 의무를 상기시켰다. ‘존경하는 사촌이시여, 이단의 역병이 제국의 심장부를 좀먹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보헤미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합스부르크 가문 전체와 거룩한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스페인의 군대와 황금이 없다면, 우리는 이 신성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뮌헨의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1세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막시밀리안은 가톨릭 동맹의 수장이자, 제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야심 있는 제후였다. 페르디난트는 그의 야망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친애하는 공작, 반란의 주모자는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와 그 일당이오. 만약 그대와 가톨릭 동맹이 나를 도와 이 반란을 진압한다면, 나는 그대의 오랜 숙원을 풀어줄 것을 약속하겠소. 팔츠가 가진 선제후의 자리는 그대의 것이 될 것이오.’
그것은 악마의 계약과도 같았다. 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7선제후의 지위를 황제의 마음대로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페르디난트는 주저하지 않았다. 목적은 신성했고, 수단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편지를 봉인한 페르디난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피의 새벽 같았다. 그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주여, 당신의 적들을 분쇄할 힘을 제게 주소서. 당신의 이름으로, 이 땅을 정화하겠나이다.’
두 마리의 말이 그라츠 성을 떠나 남쪽과 서쪽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유럽의 운명을 바꿀 두 통의 편지를 싣고서.
1618년 6월 말, 하이델베르크
라인 강과 네카어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하이델베르크 성은 르네상스의 보석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웠다. 성벽을 뒤덮은 붉은 담쟁이덩굴과 정교한 조각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장대하다는 정원은 이곳의 주인인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세련된 취향과 부를 과시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스물두 살의 젊은 군주였다. 그는 잘생겼고, 교양이 넘쳤으며, 독일 개신교 제후들의 연합체인 ‘프로테스탄트 동맹’의 수장이었다. 그의 아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였다. 그녀의 눈부신 미모와 활기찬 성격은 ‘북방의 진주’, ‘장미의 여왕’이라 불리며 유럽 사교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들은 동화 속의 왕자과 공주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프리드리히의 잘생긴 얼굴에는 깊은 고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앞에는 보헤미아의 임시정부가 보낸 사절단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서 있었다. 그들의 제안은 너무나도 대담하고 위험했다.
보헤미아의 왕이 되어달라는 것.
합스부르크의 세습 재산과도 같은 왕관을 자신에게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영토를 얻는 문제가 아니었다. 보헤미아의 왕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출하는 7명의 선제후 중 한 명이었다. 만약 그가 팔츠 선제후이자 보헤미아의 왕이 된다면, 개신교 진영은 황제 선거에서 4대 3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 독점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프리드리히의 심장은 야망으로 두근거렸다. 그는 칼뱅파 신자였다. 루터파보다 더 엄격하고 전투적인 신앙을 가진 그는 가톨릭 합스부르크의 압제에 신음하는 동료 개신교도들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다. 보헤미아의 왕관은 그 운명을 실현시켜줄 신의 선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것은 함정일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가문이었다. 그들의 심장부와도 같은 보헤미아를 빼앗는 행위는, 잠자는 사자의 입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같았다. 스페인의 군대, 교황의 자금, 그리고 제국 내 가톨릭 제후들이 모두 합스부르크의 깃발 아래 뭉칠 것이다.
그는 조언자들을 소집했다. 그의 오랜 스승이자 재상인 크리스티안 폰 안할트-베른부르크는 매파의 대표주자였다.
“전하, 이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안할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합스부르크의 힘은 겉보기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스만 튀르크와 싸우느라 지쳐있고, 스페인은 네덜란드 반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반격에 나서서 독일의 자유를 되찾고, 참된 신앙을 바로 세울 때입니다. 전하께서 보헤미아의 왕이 되시면, 모든 개신교 제후들이 전하를 중심으로 뭉칠 것입니다. 장인이신 제임스 왕께서도 결코 사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반면, 보다 신중한 외교관인 루트비히 카메라이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 안할트 공의 말씀은 너무 낙관적입니다. 프로테스탄트 동맹은 이름뿐인 허상에 가깝습니다. 작센의 선제후는 루터파로서 우리 칼뱅파를 이단처럼 여기고, 브란덴부르크는 폴란드와의 국경 문제로 군대를 움직일 여력이 없습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휴전이 끝나가고 있어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왕께서는 전쟁을 혐오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명분뿐, 실질적인 지원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팔츠를 파멸로 이끄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조언자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프리드리히는 밤늦도록 그들의 논쟁을 들으며 괴로워했다. 그의 마음은 영광을 향한 야망과 파멸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는 추와 같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는 그날 밤 아내의 침실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잠들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서린 고뇌를 보고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아직도 고민하고 계신가요, 프리드리히?”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한 힘이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그녀의 옆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자베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한쪽에서는 영광과 의무가 나를 부르고, 다른 쪽에서는 파멸과 무모함이 나를 비웃고 있소. 나는 팔츠의 군주로서 내 백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소.”
엘리자베스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녀의 눈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당신은 단지 팔츠의 군주인가요? 당신은 독일 개신교도의 지도자이며, 잉글랜드 왕의 사위입니다. 당신의 핏속에는 위대한 왕들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그들이 당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프리드리히, 운명은 문을 두 번 두드리지 않아요. 당신은 왕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선제후로 만족하며 살 건가요? 억압받는 백성들이 당신에게 왕관을 바치며 구원을 요청하는데, 위험이 두려워 외면할 건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왕의 사위가 될 자격도, 개신교의 지도자가 될 자격도 없는 겁니다.”
그녀의 말은 프리드리히의 심장을 꿰뚫는 창과 같았다. 그녀는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야망과 명예욕을 정확히 건드렸다.
“기억하세요, 여보.” 그녀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역사는 신중한 자가 아니라 용감한 자를 기억합니다. 저는 선제후의 아내가 아니라, 여왕이 되고 싶어요. 당신은 제게 그 왕관을 씌워줄 수 있나요?”
그녀의 마지막 말은 질문이었지만, 프리드리히에게는 명령처럼 들렸다. 사랑하는 아내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프리드리히는 다시 조언자들을 소집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고뇌의 흔적이 없었다. 결단에 찬 군주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나는 보헤미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소.”
안할트는 환호성을 질렀고, 카메라이우스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신중을 기할 것이오.” 프리드리히가 덧붙였다. “다른 개신교 제후들의 동의를 구하고, 장인 어른께도 사절을 보내 지원을 약속받을 것이오. 하지만 나의 뜻은 확고하오. 나는 억압받는 형제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신께서 내게 주신 이 기회를 거부하지 않겠소.”
그의 선언은 하이델베르크 성을 넘어,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개신교 영웅의 탄생을 예감하며 환호했고, 어떤 이들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을 보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그가 다른 제후들의 동의와 장인의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역사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보헤미아의 임시정부는 합스부르크의 반격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더 이상 그의 최종 결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1619년 8월, 프라하
마티아스 황제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새로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출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후보는 사실상 한 명뿐이었다. 페르디난트.
같은 시간, 프라하의 보헤미아 의회는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를 왕위에서 공식적으로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선출하는 투표를 강행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새로운 왕으로 선포했다.
그들이 프리드리히의 수락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은 프리드리히를 자신들의 운명에 묶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보헤미아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지했던 모든 개신교도들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터였다.
며칠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페르디난트가 만장일치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드리히의 대리인조차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페르디난트에게 표를 던진 후였다.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 프랑크푸르트의 모든 선제후들이 모인 자리에서 두 번째 소식이 도착했다. 보헤미아가 프리드리히 5세를 자신들의 왕으로 선출했다는 낭보 아닌 비보였다.
회의장은 얼어붙었다. 새로 즉위한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말없이 자신에게 막 반기를 든 새로운 보헤미아의 왕, 프리드리히 5세의 대리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하이델베르크의 프리드리히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아내의 말처럼 용감한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카메라이우스의 예언처럼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그는 결국 운명의 부름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1619년 가을, 프리드리히 5세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프라하로 향했다. 그가 보헤미아의 왕좌에 앉아 있었던 시간은 고작 한 계절 남짓, 짧은 겨울 동안뿐이었다. 사람들은 훗날 그를 '겨울왕'이라 불렀다.
야쿠프는 프라하 성에서 새로운 왕과 왕비를 맞이했다. 도시 전체가 환호했지만, 그는 그 환호성 뒤에 숨은 불안한 침묵을 들을 수 있었다. 북쪽과 남쪽에서, 페르디난트 2세의 군대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길고 혹독한, 서른 해의 겨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