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평화 (The False Peace)

by 남킹

1623년 겨울, 독일 중부의 이름 없는 땅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위대한 군주들과 장군들의 연대기에는 그렇게 기록될 터였다. 팔츠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겨울왕’은 네덜란드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보헤미아는 피의 세례를 통해 정화되었으며, 제국의 권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그러나 역사의 잉크가 마르는 양피지 위와,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신음하는 현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렀다.

야쿠프는 그 강을 걷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프라하의 말쑥한 서기가 아니었다. 그의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얼굴은 수염과 먼지로 뒤덮여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의 눈은 한때 지식의 총기로 빛났지만, 이제는 굶주린 늑대의 경계심과 깊은 피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독일 땅을 떠도는 수많은 유령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프라하를 탈출한 후, 그는 서쪽으로, 꺼져버린 희망의 근원지였던 팔츠를 향해 막연히 걸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것은 고향을 되찾으려는 군대가 아니라, 고향을 파괴하는 또 다른 전쟁이었다. 만스펠트와 틸리가 맞붙었던 라인 강 유역은 거대한 도살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양 군대의 징집병들을 피해 숲과 늪지를 헤매고 다녔다. 밤에는 차가운 땅에서 잠을 잤고, 낮에는 야생 열매나 운 좋으면 얻을 수 있는 자선가의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의 가죽 가방은 그의 유일한 재산이자 저주였다. 그 안에 든 양피지 뭉치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몇 번이고 그것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평범한 난민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때마다 프라하 광장에서 처형당한 스물일곱 명의 얼굴과, 자신을 향했던 펠스 백작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라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 기록은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그 목소리를 지켜야 했다.

겨울이 닥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이 남긴 유산은 더욱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잃은 용병들이 떼를 지어 시골을 약탈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신앙도, 국적도, 명분도 없었다. 오직 생존 본능만이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법칙이었다. 그들은 한때 프리드리히의 깃발 아래 싸웠던 개신교도일 수도, 틸리의 군대에서 복무했던 가톨릭교도일 수도 있었다.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전쟁’이라는 거대한 짐승이 뱉어낸 굶주린 새끼들이었다.

어느 추운 날 오후, 야쿠프는 숲길에서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부서진 북이 놓여 있었다. 한때 군대의 행진을 이끌었을 군악수였을 것이다. 그의 목에는 조잡한 나무판자가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누군가 검댕으로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약탈자’. 야쿠프는 그가 정말 약탈자였는지, 아니면 그저 빵 한 조각을 훔치다 붙잡힌 굶주린 병사였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땅에서는 그 둘의 경계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야쿠프는 시신을 피해 조용히 길을 걸었다. 그는 이제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목적지를 바꾸었다. 팔츠는 희망의 땅이 아니었다. 그는 북쪽으로, 한자동맹의 자유도시 함부르크를 향해 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부유하고, 강력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었다. 그곳이라면, 이 위험한 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자신 역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는 길에서 자신과 같은 수많은 난민들을 만났다. 모든 것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농부들, 겁에 질린 눈의 고아들,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모두 잃어버린 채 구걸하는 하급 귀족까지. 독일은 거대한 난민 수용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평화’라는 단어는 군주들의 조약 문서에나 존재하는, 굶주린 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치품이었다.

1624년, 빈 호프부르크 궁전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었다. 그는 호프부르크 궁전의 화려한 집무실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제국의 가장 강력한 제후들이 보낸 축하 사절들이 줄을 이었고, 교황청에서는 그의 신앙심을 찬양하는 서신이 연일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공고히 하기 위한 두 가지 조치를 단행했다. 첫째, 1623년 레겐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그는 반역자 프리드리히 5세의 선제후 자격을 공식적으로 박탈하고, 그 자리를 자신을 도와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에게 수여했다.

이 결정은 제국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선출직이었고, 선제후의 지위는 수백 년간 이어진 제국의 헌법, 즉 ‘금인칙서’에 의해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보장되어 있었다. 황제가 자신의 의지대로 선제후를 갈아치운다는 것은, 제국의 근간을 흔드는 전례 없는 행위였다.

개신교 제후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심지어 전쟁 내내 황제의 편에 섰던 루터파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마저 등을 돌렸다. 그는 황제가 가톨릭 동맹의 힘을 빌려 제국 내 개신교 세력 전체를 말살하고, 나아가 선출 군주제를 세습 절대군주제로 바꾸려 한다고 의심했다. 페르디난트의 조치는 반란의 불씨를 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른 장작더미 깊숙한 곳에 새로운 불씨를 심은 꼴이 되었다.

페르디난트의 두 번째 문제는 돈이었다. 승리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은 황실의 금고를 바닥까지 긁어내 버렸다. 그는 틸리와 부쿼이의 군대에게 지급해야 할 급료가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군대를 해산해야 할 판이었지만, 아직 독일 곳곳에 만스펠트와 같은 용병 부대들이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위험했다. 급료를 받지 못한 병사들은 언제든 폭도로 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딜레마의 순간, 한 남자가 황제 앞에 나타났다. 마치 시대의 혼란이 빚어낸 거인처럼, 그의 등장은 조용했지만 압도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브레히트 벤첼 오이제비우스 폰 발렌슈타인이었다.

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의 가난한 개신교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두 번의 성공적인 결혼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이었다. 그는 백산 전투 이후, 황제로부터 헐값에 몰수된 반란 귀족들의 영지를 사들여 보헤미아 최대의 지주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었다. 그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였고, 누구보다 뛰어난 사업가였으며, 거대한 야망을 품은 남자였다.

그는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도 굴종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폐하.”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폐하의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 들었나이다. 또한, 제국의 안정을 위해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페르디난트는 지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발렌슈타인 공. 내게는 돈이 없고, 군대는 흩어질 위기요. 무슨 좋은 방안이라도 있소?”

발렌슈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의 제안은 너무나도 대담하고 혁명적이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조언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폐하, 제게 군대를 조직할 권한을 주시옵소서. 5만 명, 아니 그 이상의 대군을 일으켜 보이겠나이다. 그리고 이 군대는 황실의 금고에 단 한 푼의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옵니다.”

황제의 재상인 에겐베르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돈을 쓰지 않고 어떻게 군대를 유지한단 말이오? 병사들은 공기를 먹고 싸우는 것이 아니오!”

발렌슈타인은 에겐베르크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상대를 동정하는 듯한 차가운 미소였다.

“전쟁은 전쟁으로 먹고사는 법입니다, 재상. 제 군대는 ‘콘트리부치온(Kontribution)’, 즉 기여금 제도로 운영될 것입니다. 군대가 주둔하는 영지에서 직접 세금을 걷고, 군수품을 징발하여 자급자족하는 것입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그것은 만스펠트와 같은 용병대장들이나 사용하는 약탈의 논리를, 제국의 이름 아래 체계화하고 공식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한 늙은 관료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공작, 그것은 약탈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식으로 군대를 운영한다면, 제국의 영토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황폐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제국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제국을 파괴하는 군대가 될 것입니다!”

발렌슈타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질서 있는 징발은 무질서한 약탈과는 다릅니다. 모든 것은 제 통제하에, 엄격한 계산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백성을 굶겨 죽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음 해의 수확까지 고려하여,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은 남겨둘 것입니다. 폐하, 선택은 분명합니다. 무력하게 흩어지는 소수의 군대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제국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대군을 가질 것인가. 저는 폐하께 후자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논리와 자신감이 있었다. 페르디난트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체계적으로 수탈하는 것을 허락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다. 제국 내의 잠재적인 반란을 억누르고, 국경 너머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황제의 힘을 과시할 군대가.

오랜 침묵 끝에, 페르디난트는 결정을 내렸다.

“좋소, 발렌슈타인 공. 그대에게 전권을 위임하겠소. 제국을 위한 군대를 조직하시오.”

그 순간,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은 단순한 보헤미아의 지주가 아니라, 유럽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강력한 군벌로 거듭났다. 그의 ‘유령 군대’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그림자는 이미 독일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1625년 봄, 덴마크 코펜하겐

북해의 차가운 바람이 크론보르 성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4세는 성벽 위에서 남쪽을, 신성 로마 제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과 부리부리한 눈은 그의 야심만만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르네상스적인 군주였다. 예술과 건축을 사랑했고, 국가의 부를 증진시켰으며, 무엇보다 강력한 군대를 원했다.

그는 두 가지 이유에서 독일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첫째, 그는 신성 로마 제국 내에 홀슈타인 공국이라는 영지를 가진 제후이기도 했다. 황제의 힘이 강해져 독일 북부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자신의 영지와 덴마크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터였다.

둘째, 그는 야심가였다. 그는 발트해의 패권을 놓고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경쟁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독일 개신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제국 문제에 성공적으로 개입한다면, 그의 위상은 스웨덴 왕을 뛰어넘어 북유럽의 패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게다가 전쟁은 언제나 영토 확장의 좋은 기회였다. 그는 브레멘과 페르덴의 주교령을 탐내고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접근해왔다. 그들은 황제 페르디난트와 발렌슈타인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전쟁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싸워줄 대리인을 찾고 있었고, 크리스티안 4세는 완벽한 후보자였다.

헤이그에서 열린 협상 끝에,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크리스티안 4세에게 막대한 전쟁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프랑스의 실권자인 리슐리외 추기경 역시, 비록 가톨릭 국가의 성직자였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 동맹을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크리스티안 4세는 이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 그는 ‘니더작센 관구’의 개신교 제후들을 소집하여, 자신을 관구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제 독일 개신교의 공식적인 보호자로서, 합법적으로 제국에 군대를 파견할 권리를 얻었다.

북방의 새로운 사자가 포효할 준비를 마쳤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첫 번째 막이 내렸을 뿐이었다. 더 거대하고, 더 많은 국가들이 얽힌 두 번째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1625년 여름, 함부르크

야쿠프는 함부르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는 운 좋게도, 스웨덴과 거래하는 한 거상(巨商)의 서기로 일자리를 구했다. 거대한 항구 도시의 활기는 그가 지나온 황폐한 땅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엘베 강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창고들, 전 세계에서 온 온갖 종류의 상품들, 그리고 다양한 언어를 쓰는 상인들과 선원들. 함부르크는 돈과 정보가 모이는 유럽의 혈관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작은 방을 얻어, 밤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온 양피지 뭉치를 정리했다. 그는 잊고 있던 서기의 본능을 되찾아, 흩어진 기록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여백에 자신의 목격담을 덧붙였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기록 모음이 아니었다. 한 시대의 비극을 증언하는 연대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항구의 선술집은 소문의 용광로였다. 야쿠프는 저녁이면 그곳에 앉아,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웠다.

어느 날 밤, 그는 옆자리에서 떠드는 덴마크 선원들과 네덜란드 상인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우리 왕께서 곧 남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실 거라네. 저 거만한 황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지.” 덴마크 선원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덜란드 상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잉글랜드의 금과 우리 공화국의 길더가 없었다면 당신네 왕이 감히 움직일 수 있었을까? 어쨌든 잘된 일이지. 발렌슈타인이라는 악마가 만든다는 그 군대가 북쪽으로 올라오기 전에 손을 써야 해.”

“발렌슈타인?” 야쿠프는 그 이름을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

“자네도 못 들어봤나? 보헤미아에서 온 마법사라는군.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만 명의 군대를 불러 모은다지. 그의 군대는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그들이 밟는 모든 땅에서 원하는 것을 가져갈 권리가 있다고 하더군. 제국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합법적인 약탈자 떼라는 소리야.”

야쿠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자신이 길 위에서 보았던, 주인을 잃고 떠돌던 용병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발렌슈타인은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거대하고 효율적인 약탈 기계. 그것은 그가 겪었던 어떤 공포보다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양피지를 펼쳤다. ‘1625년’이라고 적고, 그 아래에 새로운 장의 제목을 썼다. ‘북방의 사자와 제국의 독수리’.

그는 창밖의 항구를 보았다. 수많은 돛대들이 밤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저 배들은 소금과 향신료뿐만 아니라, 전쟁의 소문과 자금, 그리고 무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조차 거대한 전쟁 기계의 일부였다.

야쿠프는 깨달았다. 보헤미아의 비극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덴마크의 사자가, 발렌슈타인의 독수리가, 그리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스웨덴의 늑대와 프랑스의 여우가 모두 독일이라는 사냥터로 모여들고 있었다.

거짓된 평화의 막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훨씬 더 거대하고 참혹한 전쟁의 무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의 이름은 여전히 모두의 깃발에 새겨져 있었지만,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은 신앙이 아니라, 탐욕과 공포, 그리고 복수심뿐이었다. 야쿠프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해, 조용히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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