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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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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커 Oct 16. 2023

7.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카라멜 마키야토(5)

D+299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다시 겨울이 찾아왔으니까. 부영이 차분한 마음을 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민서의 일기장을 본 날, 부영은 폭발하는 듯한 분노에 휩싸였다. 이불을 쥐어 뜯기도 하고, 뜯은 천 조각을 입 안에 넣고는 쇳소리가 나도록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였다.


    원망할 대상을 찾아야 했다. 첫 타자는 네티즌. 익명이라는 방어막을 쓰고 한 사람의 삶을 끝내라 마라 왈가왈부하는, 더러운 손가락을 가진 짐승들. 한 명 한 명 찾아가 댓글을 쓰지 못하게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고 싶었다. 특히 민서에게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면 죄가 씻길 거라고 조롱한 개짐승은 경찰에 신고하여 찾아낸 후에 성기를 뜯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컴퓨터 뒤에 숨어 형체를 잃은 채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수많은 이들을 탓하는 것은 체에 물을 걸러내는 것 만큼이나 허무한 도돌이표같은 일이었다.


    다음, 지율의 부모님. 당신의 자식이 죽었다는 이유로 남의 자식까지 죽인 사람들이다. 부영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민서의 죽음을 책망해보려고 했다. 민서 핸드폰의 통화목록에서 번호를 쉽게 찾아낸 후 전화를 걸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율의 아버지였다. 그를 통해 들은 소식은, 자신의 아내는 몇 달 전 딸을 지켜야 한다며 세상을 떠났고, 그는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신세를 지다가 퇴원한 지 한달이 채 안되었다고 했다. 아내와 딸의 묘지에 잡초를 뽑아야 해서 죽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실과 바늘이 되어 한 순간에 부영의 눈과 입을 꿰매었다.


    그다음으로는, 그다음은, 자신이었다. 멍청한 기억력으로 민서에게 집행유예기간을 준지도 몰랐던 자신이다. 언제 민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지 모른다. 착한 민서가 나의 잘못을 책망하기 싫어서 일기에 남겨놓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일기장에 없는 내용이라면 죽을 때까지 알 수도 없다. 친구와의 관계를 그렇게나 소홀히 한, 가장 가까운 친구가 죽어가는 지도 몰랐던 내가 살인자다.


    죄책감에 몇 날 며칠을 보내던 중, 부영은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살인이 무엇인가? 총과 칼로 사람을 죽인 것만이 살인인가? 그럴리가. 살인 도구는 우리 몸 안에도 즐비해있다. 손으로도, 입으로도, 심지어 눈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눈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할 수 있나? 눈으로 다른 이의 심장 박동을 멈추게 할 수 있나? 신체를 마비시킬 수 있나? 어디까지가 살인이지? 살인이 아니지?

    널부러진 공상은 분리수거하고, 수학적으로 사고해보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누군가의 살인 도구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죽은 모든 상황을 살인이라고 가정하고, 그 후에 소거법으로 살인을 분별해 보는 것이다.

    평생을 패배자로 살다가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살인한 사이코패스, 살인이 맞는가? 30대 중반이 되도록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님의 돈으로 도박을 하다가 돈이 부족해지자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죽인 자식. 우리는 통상적으로 이러한 살인사건에 깊이 몰입하여 피해자를 연민하고 가해자에게 큰 처벌을 바란다.

    아빠와 아들이 저녁식사를 하던 중, 칼을 든 강도가 창문을 깨고 침입하였다. 아빠에게 가방 안에 금은보화와 현금을 채워 넣게 시킨 후, 가까이 서있던 아들을 인질로 삼아 죽이려고 한다. 다 채운 가방을 건네주며 순발력을 발휘하여 강도를 살해한 아빠. 자식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살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만약 누군가가 나를 10년 동안 스토킹 해서 나의 삶이 파괴되었다면, 신고를 해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조차 없다면, 그 누군가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기괴한 상황에서, 나는 피폐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해도 되는가? 미래의 직접적인 피해가 살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떠한 상황에도 다른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결말로써, 스토킹을 하던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죽음을 택한다면, 스토커는 눈으로 나를 죽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죽인 것인가?

    쉽사리 예, 아니오 로 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문제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댔어.

    부영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답을 할 수 있었다.

    그래, 문제가 잘못되었다. 예, 아니오로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살인의 경계는 매우 모호해서, 옳고 그름이 흐릿하게, 마치 수채화처럼, 그러데이션처럼 퍼져있다.

    그러니까 책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한 명의 분명한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부영은 누가 진정한 살인자인지, 누구를 마음껏 질책하면 되는지 고민하는 데에 너무나 오랜 기간을 소요했다.

    

    정작 놓친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었다. 

    민서였다. 


    민서를 추모하는 마음.

    민서를 기리는 마음.


    민서는 없다. 하지만 민서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 또, 그가 남긴 일기는 평생동안 부영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영은 민서와의 기억을 책으로 엮기로 했다. 우리의 영원한 우정은 글이 되어 민서를 애도할 것이니까.


D+352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때로 진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에 대한 미숙한 답으로서, 나의 글 일부분을 발췌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살인자라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살인을 할 수도, 이미 했을 수도, 혹은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위험해서, 곳곳에 숨은 살인의 지뢰로부터 '생존'해내려면 자신만의 단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무기는 무엇일까요.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자아'라는 단어라면 의미가 얼추 전달될 것 같습니다. 단단한, 그러니까 흔들리지 않는 고유한 자아는 형체가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내 안에 존재함을, 나를 지켜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지요.


    자아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버릇처럼 정의를 뒤적여봅니다.

자아(自我):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반응·체험·사고·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나.


    우리의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입니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순간마저도, 사실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러니 매 순간 고르는 나의 선택이 곧 의식의 통일체, 자아이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그러한 의구심이 듭니다. 나의 자아가 잘못되었으면 어떡하지? 내가 옳다고 생각한 선택들이 알고 보니 오답이라면?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당돌하게 한 가지만 바로잡고 싶습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고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옳고 그름이 있을 것 같나요? 최소한 살인과 같은 윤리적 문제에는 확실한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지만 앞 장에서 말씀드린 예시와 같이,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제 머리가 더 아파옵니다. 정답이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살아가야 하냔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으로 삼을만한 일은, 정답이 없다면 오답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닌, 무한한 질문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대답하는 것입니다.


    양심(良心) :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양심이라는 내 안의 의식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부끄럽게 살지 않는 것, 암담하게 살지 않는 것, 모나게 살지 않는 것.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비겁하지 않게, 비록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존중하기 위하여, 내가 존엄하기 위하여, 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그리하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성을 향하여, 정답이 아닐지라도, 애초부터 답은 없으니, 내 삶에 대해 내가 어떠한 지향점을 가졌는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그러므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쉬움이 일어 올라도, 서운함으로 차올라도, 옳은 삶을 지향했던 나를 기억하기에, 응원하기에, 어찌 보면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나를 위하여, 양심적으로 살아보는, 살아가는 것.

    온전히 나를 위한 마음으로.


D+364

    -나는 정말 모르겠어.

    민서에게 간간히 오는 문자는 부영에게 무한한 질문을 만들어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마치 예전처럼 민서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도 들었다. 부영은 그렇게 민서를 애도하고 있었다. 오늘도 부영은 민서의 문자와 수다를 떨기 위해 커피 오마카세를 찾았다.

    "오늘은 따뜻한 우유예요."

    "사장님, 저 커피가 필요한데요오."

    부영의 칭얼거림을 가벼운 웃음으로 되받아치며 사장이 대꾸했다.

    "부영씨 눈이 너무 퀭해요.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여기서 엎드려서 좀 자요. 담요 줄 테니."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요."

    "내일이 책 출판하는 날이라고 했죠? 더 할 것도 없는데, 마음이 무거워요?"

    "아무래도 민서 이야기를 다루었다보니 그런가봐요. 민서가 내일 이곳에 찾아올 것 같기도 하고... 책을 보고는 자신의 일기장이 드러났다며 저를 원망하면 어떡하죠? 한편으로는 익명의 누군가가 내릴 평가들로 민서가 상처받을까 걱정이에요."

    "부영씨 책은 저도 읽어 봤잖아요. 민서씨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민서씨가 딱 좋아하는 책의 온도이잖아요. 그리고 부영씨의 마음을 가장 깊이 있게 느낄 사람은 바로 민서씨예요. 그 누구보다도요. 다른 사람의 평가는 중요치 않잖아요. 알지요?"

   부영은 대답 대신 우유 한 모금을 들이켰다. 끝도 없이 하얀 우유는 식도를 타고 명치 아래까지 내려가 부영의 몸을 감쌌다. 따뜻한 온기는 경직되어 있던 부영의 몸을 차근히 풀어주었다.


D+365

    오전 7시. 알람이 울린다. 부영은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쑤셔들어오는 추위와 함께 샤워를 마치고는 어제 다려둔 정장을 꺼내입는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날씨에 한껏 겁을 먹고는 패딩에 목도리, 장갑까지 중무장한 채로 가방을 맨다. 집 앞 카페에서 따뜻한 바닐라라떼 두 잔을 사들고는 택시에 탄다. 20분쯤 달렸을까. 택시는 추모공원 앞에서 멈추었고 부영이 내린다.

    “야, 너 너무 추운 곳에 산다.”

    이럴 줄 알고 따뜻한 커피를 샀다 이 말이지. 부영은 실시간으로 미지근해지는 커피 두 잔을 양 손에 쥐고 민서에게로 향한다. 오른쪽 여섯번째 줄, 끝에서 두번째 자리. 여기에 민서가 있다. 부영은 바닐라라떼를 비석 앞에 올려두고나서야 자신도 차가워진 커피를 마신다.

    “나 책 가져왔는데, 한 번 볼래?”

    가방에서 꺼낸 샛노란색 책 한 권. 이 또한 비석 앞에 올려둔다. 전 날 새벽 편지를 써둔 맨 뒷 장을 펼쳐서.


    민서야 안녕, 나 부영이야. 오늘은 네가 떠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야. 매일 되뇌지만 오늘따라 네가 더욱 보고 싶다. 네가 없는 시절에 나는 어떻게 살았나 생각해 봤어. 그런데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우리는 엄청 어렸을 때부터 함께하고 있었잖니. 네가 나를 더 잘 알고, 내가 너를 더 잘 알고, 우리는 그런 사이잖아.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책을 내보는 거야. 네가 틀렸다는 걸, 너보다도, 내가 너를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네 세상에서는 너를 살인자라고 판결했지만, 내 세상에서는 아니야. 너는 한 편의 책으로 남아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의사이자,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인걸. 이제 내가 너를 지켜줄게.


    -결국 나는 살인자가 맞았어.

   민서의 마지막 흔적이 부영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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