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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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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Oct 16. 2023

7.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카라멜 마키야토(4)

D+222

    -난 그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어

    새벽부터 민서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작년의 오늘, 네 출근길이었겠다.

    부영은 아침 일찍부터 민서 어머니를 찾아뵈러 한수대병원에 다녀왔다. 자신을 보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고집에도 굴하지 않고 죽과 과일을 한껏 챙겨서. 의사 선생님들이 드실 단팥빵도 함께. 그건, 환자에게 받는 쪽지조각에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는 민서가 떠올랐기에, 민서에게는 못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민서는 대신하여 좋아해 줄 아이니까.

    부영은 민서 어머니 옆 간의 침대에 쪼그려 앉아 사과를 깎으며 물었다.

    "어머니, 저랑 민서 중학교 때 쓰던 다이어리 어디에 두셨어요?"

    "갔다 버렸지. 한창 공부해야 할 녀석들이 쓸데없는 곳에 펜이나 굴리고 말이야."

    "에이 거짓말. 민서가 분명 봤다고 했어요."

    "걔가 그걸 봤대? 언제."

    "그게... 어머니 이혼하시고 짐 싸실 때..."

    "쯧, 걔는 그 새 그런 거나 봤다니."

    "어머니 제발요. 그때의 우리가 너무 그리워요."

    "뭐가 그렇게 그리운데."

    "전부 다 그립죠. 시간을 돌려서 하루만 살고 돌아오고 싶어요. 10대의 우리는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하다못해 학교에서 무슨 과목을 재미있게 들었는지, 그런 사소한 거 있잖아요. 거기에는 다 적혀있거든요."

    부영은 사과에 포크를 집어 어머니에게 건네었다. 아직까지 단단한 걸 잘 못 삼키시는 어머니를 위해 최대한 잘게 잘라서 드렸지만 어머니는 그 작은 사과 조각을 한 번 더 베어 드시고는 대꾸했다.

    "너희는 매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뛰쳐나가서 구름사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좋아했었다. 변규정? 그 아이를 둘이 함께 좋아했다며. 좋아해도 하필 변 씨가 뭐니. 애 이름은 뭘로 지을라고. 그리고 참내, 세상에나말이야,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을 서로 갖겠다고 난리인데 너네는 네가 눈을 갖고 내가 코를 갖는다는 둥 이상한 얘기만 해대더구나."

    다이어리는 어머니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막힘 없이 이야기바구니를 쏟아내었다.

    "민서 걔는 중학생이나 돼가지고 개구리가 무섭다고 실험도 안하고 말이야. 혼자 운동장 보면서 놀다가 발 옆에 검은 봉다리가 있어서 보니까 개구리 시체 수십 개가 있어서 펑펑 울었다며? 어휴 부끄러워서 원."

    부영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 하고 쳤다.

    "개구리!!!"

    천둥만치 큰 목청이었다.

    개구리 실험이었다. 펄펄 끓는 물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넣으면 폴짝 뛰어올라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지만, 개구리와 미지근한 물을 담은 비커를 끓이게 되면, 자신이 익어가는 지도 모르다가 어느 순간 죽어버리는, 끔찍하고 잔인한 실험이었다.

    부영은 뒷 산이 떠올랐다. 죽은 개구리 수십 마리를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선생님께 졸라서 그곳에 묻어줬던 기억이 난 것이다. 그리고 떠오른 또 하나의 기억.

    '타임캡슐'

    그곳에 우리의 타임캡슐이 있다.


D+223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추억이 모두 담겨있던 타임캡슐, 10년이 지나면 보자고 해놓고는 어느 순간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것이다. 10년이라면 딱 작년이었다. 민서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우리의 타임캡슐을 혼자서라도 열어보았을까.

    유달리 붉은빛을 내는, 퉁퉁한 나무들 사이에서 솜사탕처럼 본연의 존재를 뽐내는 흰말채나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나무들의 형상은 그대로이기에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글쎄, 어찌 보면 오랫동안 헤매었다고 해야 할까. 보면 볼수록 흰말채나무가 괜히 작아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져온 삽을 꺼내었다. 이 뒷편에 숨겨두었었지. 부영은 흰말채나무가 우리의 타임캡슐을 잘 지켜주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루, 두 자루, 뜨기 시작한다. 십 수 번쯤 반복했을까.

    팅,

    하고 철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삽을 옆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흙을 판다. 하트모양의 원기둥 철제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부영은 다급하게 박스 주위의 흙을 움푹 파내고는 철제통을 양손으로 집어 올린다.

    솨아,

    흙이 바람에 날려 흩날리니 철제통의 본체와 마주한다. 부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뚜껑을 연다.

    "아..."

    그시절 우리의 일상은 여기에 모두 모여 있었구나. 중학교 때 함께 맞춘 쌀알 모양의 반지. 얼굴을 다 가리고 찍은 스티커사진. 유명인사가 되었을 우리를 위한 친필사인 도안.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십자수. 10년 후 우리에게 쓴 편지. 대체 짜장면 집 쿠폰은 왜 들어가 있는 건지, 웃음이 픽 터진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정체 모를 수첩이 있었다. 부영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민서가 이곳을 다녀갔었어.'

    부영은 타임캡슐 안의 보물을 차곡히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민서는 왜 말도 없이 홀로 타임캡슐을 열어봤을까, 수첩 안에는 무슨 말이 적혀있을까.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D+224

    새벽 3시. 수첩을 앞에 두고 주위만 서성이는 부영과, 부영 주위를 서성이는 커피가 있다. 저 안에 모든 비밀이 있겠지. 부영은 다시 겁이 났다. 민서의 죽음을 직면하는 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 일이었으니까. 타임캡슐만 뒤적거리던 부영은 10년 전 서로에게 쓴 편지를 꺼내었다. 그때의 민서는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부영아 안녕! 그러고 보니 부영언니라고 해야 하나? 큭큭. 부영이 너는 어떤 어른이 되었니? 아직도 우리는 제일 친한 친구이지? 꼭 유명해져서 내가 만든 싸인 써줘야 해. 그럼 난 네 매니저 할래! 내가 지켜줄거야.


    중학생 짜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친구를 지켜주겠다는 말을 함부로 해. 하물며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이었잖아. 부영은 그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었을 애틋한 책임감에 마음이 아려왔다. 어쩌면 민서는 이런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진작부터 알고, 친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여태껏 아무런 말도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을 민서는 엄청난 죄의식에 빠져 절망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결코 민서에게 그런 친구로 남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또, 그 시절 중학생의 민서에게 나는 고작 이런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부영은 용기를 내어 수첩을 펼쳤다.


    수첩의 정체는 민서의 일기장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다.) 특징이 있다면 민서가 정의한 1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그러니까 매일의 판결 일기라는 것.(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흑연이 닿지 못한 빈 종잇장이 절반을 넘었다. 부영은 첫 장의 판결문을 꼼꼼히 읽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전에, 과연 내가 살아도 되는가? 나는 답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조언을 구할 수도 없다. 오늘은 답답한 마음에 부영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살인자는 사형을 당해야 하냐고.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부영이의 말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거나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한 번의 기회를 주어도 될까? 단 1년이라도.

오늘의 판결: 집행유예


    부영은 기억조차 못하는 사소한 대화였다. 그 대화로 민서는 세상에 1년 더 머물렀다. 하지만 1년 뒤의 결말에는 죽음이 있었다. 얼마나 지옥 같은 1년이었을까.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면, 기억나지 않을 그때의 대화에서 살인자는 죽어야 한다고 할 걸 그랬을까. 그럼 네가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혹시, 마침내의 죽음도 나와의 사소한 대화 때문이었을까? 내가 민서를 죽인 것일까? 나도 살인을 한 것일까?


오토바이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10대 후반 남자아이를 살려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를 제외한 선생님들은 모두 수술 중이었다. 내가 응급실에 상주해 있었기에 빠른 수술 준비가 가능했고, 영민선생님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치명상의 출혈을 막아내어 살릴 수 있었다. 내가 없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오늘의 판결: +1


    민서는 자신이 환자를 살린 날에는 오늘의 판결에 +1로 표기하고, 딱히 생명을 구한 환자가 없는 날에는 0으로 표기하는 듯했다. 부영은 혹시 판결문에 -1이 나올까 봐 마음을 졸이면서 글을 읽었다. 민서는 1년 내내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갔겠지. 지옥의 불은, 민서 안에서, 그를 장작 삼아 타오르고 있었다.


수십 명의 환자를 살려내면 무얼 할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애초부터 씻을 수 없는 죄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지율이의 어머님께 전화가 온다. 전화로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지율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율이에게 가고 싶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만날 수 없다. 나는 적어도 집행유예 기간 동안 삶을 영위해야 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 혹시 모르지 않나. 100명의 환자를 살리면 1명의 살인은 상쇄될지도.

오늘의 판결: 0


    민서는 지율이 부모님의 전화를 피하지 않고 매번 받아왔던 것 같았다. 부영은 1년 전 언젠가의 이 날로 돌아가 민서의 핸드폰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문득, 지율의 부모님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서는 거의 매일 판결문을 썼다. 바보같이 성실한 아이였다. 그리고, 비극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지율이의 어머님께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저녁까지만 해도 전화가 오지 않음에 기분이 꽤 평온했지만, 미쳐버린 걸까,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계셨다고 한다. 평소처럼 화를 내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으신다. 나는 지율이만 죽인 게 아니었다.

오늘의 판결: -2


5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살린 환자는 57명. 아직도 판결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의 판결: +1


엄마를 보러 갔다. 아빠와 이혼할 때 다시는 안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는 늘 해답을 줬으니까.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고로 살인을 했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61명의 환자를 살렸다고, 그러니 이 죄가 상쇄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런데 엄마가 나보고 살인자란다. 부끄럽단다. 자신과 살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엄마랑 살았으면 달랐을까.

그런데 엄마... 날 이 길로 몰아넣은 건 엄마였잖아.

오늘의 판결: 0


오늘까지 살린 환자의 수는 102명. 100명의 환자를 살리고 나면 답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정녕 1-1=0 이 아니란 말인가.

오늘의 판결: +2


내일은 판결의 날이다. 나는 스스로 판결 하나 내리지 못하는 무능인이다. 이럴 때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최후의 방법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야겠다.

오늘의 판결: 0


판결이다. 나는 살인자다. 마지막 살인을, 사형을 집행한다.

오늘의 판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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