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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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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커 Oct 08. 2023

7.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카라멜 마키야토(3)

D+207

나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죽였다. 내년에 반장선거를 나갈 거라고 했었는데,


오늘도 지율이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왜 아직 죽지 않았냐고 묻는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내 옆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날카로운 비밀은 심장을 뚫고 나와 흔적이 된다. 이 책처럼.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될까. 결국 살아서 흔적을 지우게 될까. 마침내 죽음일까.


    각각의 글들은 날짜가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펜의 굵기와 질감이 다른 걸로 보아 서로 다른 날이었던 듯했다.

    죽였다 지율이

    '지율' 이를 죽였다고? '민서'가?

    지율이라면 민서가 몇 년 전에 말한 적이 있는 소아환자였다. 선천적으로 기형의 간을 가지고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병원에 들락날락거리곤 했는데, 유아기를 거친 후 신체가 성장하면서 간 기능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했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들은 바가 없었기에 깜빡 잊고 있던 아이였다.

    그 아이 이야기를 할 때면 민서는 은근히 들떠있었다. 아픈 아이임에도 또래 친구들보다 유달리 목청이 크고 밝다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 딴판이지 않냐면서, 헤헤-하고 웃던 민서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살아서 흔적을 지우게 될까. 마침내 죽음일까.

   진실의 벽이 쿵 소리를 내며 부영의 앞을 막자 민서는 사라진다. 이제 부영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언젠가 민서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덮칠 때마다 민서에게 받았던 문자들로 자위하곤 했었다.

    ‘이거 봐, 문자가 왔잖아. 살아있다는 증거가 여기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 문자는 민서가 남겨둔 흔적이었다는 것.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도착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제 민서는 이곳에 없다는 의미였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내 옆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껴안은 채로 얼마나 괴로웠니. 하지만 부영은 슬픔에 안주할 겨를이 없었다. 민서가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것도 그렇게나 아끼던 환자를.

    민서의 곁에 남기 위해서는 '모든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영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지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민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렸어요."

    "무슨 일이시죠? 민서 때문이신가요?"

    영민은 언제나 용건만을 요구했다. 부영 또한 안부 따위를 나누느라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지율이라고 기억하세요? 성은 모르겠어요. 민서가 담당했던 환자인데요. 한 열 살 정도 되었고 간이식받으러 입원했던, 아, 여자아이예요."

    "알죠. 어떻게 잊겠어요."

    "혹시 지율이가 죽은 이유가 민서 때문인가요?"

    "무슨 의미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누가 그랬나요?"

    "아뇨... 누가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전에 민서랑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서, 아니면 말고요. 그럼 전 이만..."

    부영은 영민의 취조하는 듯한 말투에 본인이 범죄자가 된듯한 공포를 느껴 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영민은 부영의 말을 가로채고는 물었다.

    "혹시 지율이 부모님이 민서한테 연락했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민서가 살아있을 때 전화를 종종 거셨던 것 같아요. 지율이 부모님은 민서가 당신 자식을 죽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요."

    "지금 어디십니까."

    "집에 있어요."

    "두 시간 후에 한수대병원 앞 사내카페로 오세요.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끊겠습니다."

    영민은 정확히 두 시간 후에 카페에 도착했고 부영에게 지율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지율이의 수술은 당시에는 꽤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했다. 성인 남성의 간을 이식받는 터라 그 크기가 크긴 했지만 이례적으로 버거운 크기는 아니었기에 악조건까지는 아니었다고. 되려 출혈도 적고 반응성도 우수한 편이었다고. 문제는 수술방에 나온 후에 발생했다. 위생방에서 일반실로 옮긴 지 일주일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지율이가 발작을 일으키더니 정신을 잃고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한 채 심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그때 소식을 듣고 집에서 달려온 민서는 지율이를 놓지 못하여 두 시간이 넘도록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했다. 고집 한 번 안 부리던 애가 주위 의사들이 다 말려도 침대에서 몸을 벌벌 떨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니까 나중에는 부모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그날 민서와 지율의 부모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단다. 이후 지율의 부모는 아이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게 믿기지 않는다며 부검을 요청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닥들였다. 지율의 사인이 폐렴이었던 것이다. 간이식 후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감염에 취약하므로 위생방을 마련하여 감염예방을 철저히 한다. 그렇게 일정 시간을 보낸 후 해당 환자가 안정기에 들어서면, 일반병동으로 옮겨 며칠 동안 상태를 지켜보다가 퇴원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니 일반병동으로의 이동은 사실상 퇴원을 하기 위한 절차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율이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빠른 속도로 폐렴이 발생하였고, 갑작스러운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원인을 알게 된 지율의 부모는 당신의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민서라며 태도를 돌변시켰다. 여태껏 지율이를 보살폈던 민서가 다른 환자들을 돌보다가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주장이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자식이 허망하게 죽음에 이르면 부모는 원망할 상대를 찾고 찾다가 그 화살을 의사한테 겨냥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일어나면 안 될 일이지만, 중증환자를 다루는 의사로서는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라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고 넘겼다고 했다. 이후로도 전화로 민서를 협박하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그 둘이 한참을 이야기하던 와중에 부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민서의 흔적이었다.

-엄마랑 살았으면 달랐을까?


D+213

    부영은 민서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해 상봉아저씨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지? 당신의 딸이 사람을 죽였다는 오명을 쓴 채로 죽었는데 엄마랑 살았으면 어땠을지 궁금해하여 어머니를 찾아뵙는다고? 절대 그렇게는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영은 그리하여 진실에 기반한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자고로 거짓말은 진실 사이에 묻혀있을 때야 말로 그 실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여보세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부영이에요. 잘 지내셨, 아니, 어..."

    "너무 눈치 볼 것 없어. 난 괜찮다. 부영이 너도 소중한 친구를 잃어 힘들지?"

    제가 아무리 힘들어봐야 딸을 잃은 부모만 할까요. 부영은 상봉의 걱정 어린 배려에 목이 메어 헛기침을 해대었다.

    "아저씨 제가 곧 찾아뵐게요.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그래 고맙다. 전화는 무슨 일로 한 거니?"

    "저 그게... 제가 중학교 때 민서랑 같이 쓴 다이어리가 있었는데요. 민서네 어머니께서 그걸 뺏어가셨거든요. 공부할 시간에 딴짓한다고... 그런데 오늘따라 민서가 너무 그리워서요. 혹시 어머니 집 주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어머니 집에 가서 다이어리만 받아와도 될까요?"

    "그런 게 있었구나. 글쎄 네가 연락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겠니? 내가 애들 엄마한테 연락해서 받아오마."

    "아니요!!"

    부영은 아저씨가 직접 가신다는 말에 놀라 반사적으로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저씨는 더욱 놀라신 듯 말을 잃으셨다. 부영은 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그 안에 비밀내용이 많아서 제가 직접 가고 싶어서요. 하하."

    "하긴. 중학생은 비밀이 가장 많을 시기이지. 그럼 그렇게 하렴."


D+218

    민서 어머니의 집은 꽤나 충격적인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로 한수대병원 앞 빌라. 양육권이 없었던 어머니는 민서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둘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긴 했겠군. 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벨을 눌렀다. 후우,

    띵동-

    "누구세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민서 친구 부영이에요."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영이 벨을 한 번 더 누르려는 찰나, 끼긱거리며 문이 열렸다.

    "니가 여길 왜 와."

    사나운 말투와는 달리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다리가 뽑혀 삐걱이는 의자 같았다. 바삭거리는 눈꺼풀부터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 꺼끌해 보이는 맨발까지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민서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당신 낯선 이질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흔들거리는 눈을 움켜쥐고 있는 힘껏 부영을 째려보았지만 볼이 함빡 패어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얼굴에 주름만 희끗거릴 뿐이었다. 사실 부영은 어머니가 꽤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있는 상봉아저씨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마지막 기억이어서일까. 하지만 이 순간의 부영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함부로 가늠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어머니가 차갑게 대꾸했다.

    "신경 꺼. 왜 왔는지나 대답해."

    "아, 저 그게 말이에요. 아, 아니에요. 잘 지내시나 해서 와봤습니다."

    "거짓말 마. 너 내가 여기 있는 거 몰랐잖아. 분명 애들 아빠한테 캐내 왔겠지. 말해. 문 닫아버리기 전에."

    부영은 이미 자신의 속내가 들통나버린 김에 온전히 솔직해지기로 했다.

    "네 맞아요. 본론만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혹시 민서가 작년 이맘때쯤에 찾아온 적 없었나요?"

    "... 몰라."

    "민서가 어머니에게 병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요?"

    "... 모른다고."

    "민서가 의료사고 낸 거 알고 계셨어요?"

    털썩,

    부영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어머니는 와르르 주저앉으셨다. 부영이 몸을 낮추어 급히 말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 그 년이 날 버렸잖아!"

    어머니는 느닷없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경기하듯 소리쳤다. 부영은 그 모습이 당황스러워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네? 어머니 그게 무슨..."

    "날 선택했어야지!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내 부모한테도 못 받은 사랑, 그년한테 주겠다고, 내 한 몸 다 바쳐서 헌신했어. 내 삶 다 버리고, 내 인생, 다 그 년한테 걸었는데, 그런데 날 거부해?"

    어머니는 숨을 헐떡거리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부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도.

    "내 밑에 있었으면, 그럴 일 없었어. 평생을 길러놨더니, 한 번도, 지 인생에 도움 된 적 없는, 지 아빠를 선택해? 그리고 쌩 도망가더니, 냅다, 나타나서는, 뭐? 사람을 죽여? 참나, 사람 살리라고 의사 시켜놨더니, 기껏 수십 년 동안 만들어놨더니, 한순간에, 내 딸이, 살인자가 됐다네. 내가 머리가 안 돌고 버텨?"

    어머니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본적인 대화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부영은 자신이 받은 충격은 뒤로 하고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만 같았다. 119로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몸이 굳어 움직이기 버거웠다. 응급실에 전화를 거는 건 처음인 부영은 범행을 자수하는 범죄자가 된 듯한 불안함이 느껴졌다. 민서야, 나 죄를 짓고 있는거니. 어머니는 색색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 아빠가 애를 다 버려놓은 거지... 사람 죽이는 의사로 변질시킨 거야..."

    곧이어 소방대원들이 도착했고, 주저앉은 어머니를 가볍게 들어 베드로 옮겼다. 그때 어머니가 부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곧 죽을 것처럼 시들 거리던 어머니에게 뿜어 나오는 불가사의한 힘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 맘 단단히 먹으라고 한 말이었다고..."

    부영은 순간적으로 저 말을 하는 여성이 진정 민서의 어머니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머니는 메마른 눈과 기이할 정도로 강한 악력을 가지고는 그의 긴 손톱으로 부영의 손등을 긁고 있었다. 악령이 씐듯한 괴상한 모습에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부영의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었다.

    곧 소방대원이 도와 손을 끊고 어머니를 차에 태워 떠났다.

    부영은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핏방울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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