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보류 0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초름 Jun 11. 2023

4. 수제 고구마라테(2)

    한참을 걷다 보니 커피 오마카세 간판이 보인다. 꽤 오래 걸은 탓에 지쳐있던 민기는 지체 없이 문을 열었고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엄마와 비슷한 나이인 듯 보였다.

    "오셨네요. 이쪽으로."

    사장은 이미 민기를 아는 눈치였다. 카운터 밖으로 나온 사장은 오른쪽 창가 자리를 가리켰다. 그 자리에는 눈 두 덩이에 살이 많은, 그래서 웃을 때 하회탈처럼 눈웃음이 지어지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후리예요. 잘 부탁해요."

    후리라는 남자는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방긋이 웃어 보였다. 옆에 있던 사장이 말했다.

    "마실 것 좀 가져다줄게요."

    민기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민기 맞지?"

    어른들은 왜 교복 입은 학생만 보면 말을 못 놔서 안달일까. 민기는 그런 후리가 불편했다. 아랫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싫었지만, 자신도 말을 놓기에는 너무 가까운 사이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 또한 싫었다. 그러니 민기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후리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과외를 할 거야. 무슨 요일에 할지는 정하지 말자. 서로 시간 될 때 연락하는 걸로."

    과외 날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는 것은 꽤 마음에 들었다. 엄마와 함께 살 때 월수금은 영어학원, 화목은 수학학원에 가는 쳇바퀴 같은 시스템에 한껏 질려버렸으니. 민기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돌아온 사장이 따뜻한 고구마라테를 건네며 말했다.

    "아직 미성년자이니까 커피는 안되고. 학생은 늘 든든해야 하니까요."

    배가 고팠던 민기는 라테가 꽤 뜨거웠음에도 빠른 속도로 삼켜대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고구마라테가 민기의 텅 빈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후리는 민기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다.

    "사실 내가 또래 친구를 만난 지 좀 됐거든. 그래서 지금 좀 신이 나네. 우리 앞으로 한동안은 제일 친한 사이가 될 텐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볼까?"

    민기는 후리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물을까 봐 걱정스러워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싫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고개만 왔다 갔다 하네. 싫으면 싫습니다 하고 말하면 되지. 도리도리가 뭐냐. 애도 아니고. 아니네, 너 애구나. 애가 맞네."

    후리는 자신이 한 말이 재밌다는 듯이 피식거리고는 다시 말했다.

    "그럼 네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해줄게. 내가 너 때는 말이야, 공부를 엄청나게 잘했어. 너네 학교에도 공부 잘해서 유명한 애 있지? 그게 몇 년 전 나라고 보면 돼. 그런데 그런 내가 작년에 전 과목 F학점을 맞았어. 어쩌다가 그랬게?"

    후리는 정답을 맞혀보라는 듯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민기는 자신도 빵점을 맞았던 적이 있었기에 답을 맞혀보고 싶어졌다. 민기가 대답했다.

    "시험 보러 안 가서요?"

    후리는 유달리 길죽한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말했다.

    "아쉽지만 틀렸어. 사실 내가 마약을 했거든. 공부를 너무너무 잘하고 싶었는데 못하는 게 답답해서 공부 잘하는 약을 먹다가 시험 도중에 졸도했어. 부정행위라면서 다 F라더라. 너네로 치면 빵점이지. 그것도 전 과목 빵점.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민기는 후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던 또 다른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민기가 대답을 않자 후리는 말을 이어갔다.

    "죽으려고 했어.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한강까지 갔지. 그때 어떤 중학생이 날 살렸다.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살아 나가기로 했어.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세계일주를 갈 거고, 돈이 필요해서 네 과외를 하겠다고 했어. 내 이야기는 우선 여기까지 할게. 혹시 궁금한 거 있어?"

    후리가 내뱉는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누나를 떠올리게 했다. 누나도 같은 이유로 죽은 걸까. 후리를 통해 누나가 죽은 이유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둘은 상황이 다르다. 누나는 대학에서 힘들어하긴 했다지만 결국 졸업까지 잘 마쳤다. 이제 버젓한 의사가 되었고 힘든 순간은 다 지나갔을 텐데 죽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민기가 물었다.

    "공부는 얼마나 잘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어. 수능도 두 개 틀렸나. 대학 와서는 중간도 못했지만. 아니다, 다 F니까 꼴등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어. 네 수준에서 내가 못 푸는 문제는 없을 거야."

    역시 누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황이다. 아빠 말로는 누나가 한수대병원의 의사가 된 이유도 대학에서 공부를 곧 잘해서 병원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누나도 마약을 한 것일까. 민기가 물었다.

    "마약 하면 어때요?"

    "한마디로 최악이야. 나는 심하게 중독이 되었던 편이라 아직 금단현상이 있거든. 그래서 병원에도 성실하게 가고 있긴 한데 후유증 때문에 고생 중이야. 아주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온 몸에 파리가 붙어있는 환각이 보이기도 해."

    자신이 담배 피우는 것에도 화들짝 놀라 유난을 떨던 누나가 마약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지어온 비싼 보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던 누나였다. 그렇다면 누나가 죽은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때 민기의 눈에 후리 팔목의 문신이 보였다.

    "이 문신은 뭐예요. 희망찬 인생?"

    "아 이거 말이지."

    후리는 테이블 왼쪽에 있던 휴지를 꺼내고서는 다 마셔가는 아메리카노를 묻혀 팔뚝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희망찬 인생이 아니었다. '망친 인생'이었다.

    "이건 원래 내 유서였어.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말이야, 기꺼이 인생을 망쳐나가는 게 내가 살아갈 희망이 되겠더라고."

    민기는 후리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내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민기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넌 누구니?"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자신은 최민기이다. 19살이고, 음, 한수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자신에게 이따위의 신상정보를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무엇을 묻는 것일까. 무엇이 궁금한 것일까. 어려워. 민기는 입술을 몇 번 들썩거리고는 대답했다.

    "... 몰라요."

    "네가 누군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니. 너는 나보다 낫네."

    민기는 자신의 대답을 이해한 듯 말하는 후리에게 반감이 들었다. 정작 민기는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한데 후리 혼자서 느낌표를 띄운 듯한, 껄끄러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쪽 말 참 어렵게 하는 거 알아요?"

    "내가 말을 잘 안 해서 그래. 나 친구 없다고 했잖아. 자,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 그러니까 말이지. 모른다는 걸 아는 게 되게 어려운 거거든.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아는 줄 알아? 깨달을 때 아는 거야. 네가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때 어땠을까? 둘 중 하나였겠지. 맛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그 순간 알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어. 아!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몰랐던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방금 전에 알았구나! 하면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민기는 양쪽으로 팔을 휘적휘적 뻗어가며 설명을 해대는 후리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민기가 대답이 없자 후리가 물었다.

    "이거 안 되겠다. 현장 체험 학습 한 번 해야겠네. 너 짜장면 좋아해, 안 좋아해?"

    "몰라요."

    민기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후리에게는 먹히지 않는 듯했다. 후리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좋았어. 그러면 짜장면부터 먹으러 가자. 밥 먹었어? 또 먹을 수 있지? 돌도 씹어먹을 낭랑 19세의 힘을 보여주란 말이다."

    그의 말대로 고구마라테로는 배가 채워지지 않았던 낭랑 19세 민기는 후리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후리는 중국집에 도착하자마자 앉기도 전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 세트를 시켰다.

    "자, 너는 짜장면과 짬뽕 중에 더 맛있는 음식을 고르면 되는 거야. 이건 단순히 저녁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인 실험이라는 것만 알아둬."

    심오하다기엔 짜장면을 비비는 후리의 표정이 꽤 상기되어 있었고 철학적이라기엔 민기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꽤나 본능적이었던 걸. 후리는 음식들을 가운데에 두고 민기에게 한 입씩 먹게 했다. 후리가 물었다.

    "뭐가 더 맛있어?"

    민기는 짜장면과 짬뽕을 순서대로 먹어본 후 대답했다.

    "짬뽕이요."

    후리는 특유의 눈이 사라지는 웃음을 지은 후 박수를 한번 짝 하고 치며 말했다.

    "그렇지! 취향을 적립한 걸 축하해. 그럼 내가 짜장면 먹어도 되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는 탕수육이 제일 좋다. 역시 고기가 최고야."

    후리는 탕수육을 소스에 흠뻑 묻혀서 짜장면과 함께 와구와구 먹어댔다. 입가에 짜장면 소스가 가득 묻은 모습은 결코 자신보다 형 같아 보이지 않았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실험은 무슨. 민기가 말했다.

    "전 튀긴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민기의 말에 후리는 작은 눈을 부릅떠 보이며 물었다.

    "오, 뭐야. 너 탕수육 아직 안 먹었잖아. 너도 이미 너를 알고 있는 거지?"

    민기는 오버하는 후리가 이해가 되지 않아 툴툴거렸다.

    "고작 튀김 가지고 뭘요."

    삐죽거리는 민기의 앞에 활짝 웃는 후리의 눈이 하회탈처럼 휘어졌다. 후리가 말했다.

    "그게 시작이란 말이다. 우리는 이제 매번 이런 거 하고 다닐 거야. 네가 공부를 잘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공부 잘하는 애로 10년을 넘게 살아봤잖냐. 그거 할거 못돼. 되게 힘들다 그거."

    민기는 후리의 말에 또다시 누나가 생각났다. 누나도 공부를 잘하는 애로 사는 게 힘들었을까. 젓가락으로 다 먹은 짬뽕을 휘적거리는 민기를 보며 후리는 말했다.

    "다 먹었네. 다음에는 뭘 해볼까. 너 민트초코 알아?"

    "그게 뭔데요."

    "너 진짜 어디 숨어있다 나왔냐. 오늘 후식은 아이스크림이야."

    후리는 자신보다 세상에서 동 떨어진 애는 처음 본다는 말을 반복하며 민기를 아이스크림 가게로 이끌었다. 후리와 민기는 청록색 아이스크림에 초코칩이 콕콕 박힌 아이스크림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후리는 왜인지 입을 씰룩거리며 민기에게 숟가락을 건넸다. 민기는 멜론맛으로 보이는 듯하면서도 보다 파란빛을 띠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서 한 입 먹었다. 이내 민기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으웩, 이게 뭐예요!"

    한참 전부터 입을 씰룩이던 후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깔깔대더니 민기에게 물었다.

    "왜. 왜. 맛없어?"

    "치약이잖아요. 먹어도 무해한 거예요?"

    민기는 후리를 쳐다보며 원망과 분노의 눈빛을 날렸다. 욕을 뱉기 직전의 표정. 하지만 후리는 그 표정조차 예상했다는 듯이 웃으며 민기의 약을 올렸다.

    "너는 반민초파구나. 난 맛있기만 한데? 상쾌함 사이에서 초코의 달콤함이 훅 치고 들어오잖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민기는 화 내기를 포기한 듯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 먹어요."

    "그래 그럼 하나 더 사자. 뭐 먹을래? 대신 한 번도 안 먹어본 맛으로 먹어봐."

    한참을 고심하던 민기는 바닐라와 초코가 섞인 아이스크림에 동그란 과자가 박혀있는 과자를 골랐다. '엄마는 외계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아이스크림은 취향에 잘 맞았고, 의외로 그 속에 박힌 과자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후리와 민기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주고받았다. 한 밤이 되어서야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오며 후리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배만 채운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게 다 너를 알아가는 수학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알아둬. 어제의 너를 알고 오늘의 너를 알아야 미래의 너를 알 수 있는 거란다. 그러니까 너는 오늘 수학적 귀납법을 배운 거라고 할 수 있지."

    민기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후리가 괘씸했지만 웃음이 새어 나와버렸다. 민기가 말했다.

    "찔리세요?"

    후리는 팔짱을 끼고는 혼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쓰읍, 어른한테 찔리냐니! 물론... 너와 과외를 오래 하고 싶긴 하달까?"

    "최소 두 달은 과외해야 자퇴할 수 있다고 약속 했으니까 그 동안은 걱정 마세요."

    "오호라, 자퇴 생각 중이구나. 혹시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될까?"

    민기는 대답을 대신하여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때문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후리는 민기를 향해 합장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엡. 알겠습니다 고용주님."

    길가에서 흘깃 본 그들의 모습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수다를 늘어놓으며 집에 가는 두 남학생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전 08화 4. 수제 고구마라테(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