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보류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초름 Jun 07. 2023

4. 수제 고구마라테(1)


    민기가 아버지 몰래 야간자율학습 대신 PC방을 택한 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는 누나가 죽은 이후로 한 번도 야자를 빼먹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전에도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서도.

    그건, 사방에서 쏟아지는 거지 같은 눈빛, 한 사람을 향한 수 개의 검지 손가락, 두 귀로 달려와 꽂히는 누군가의 귓속말 따위 때문이었다. 또, 고개를 들고 있는 매 순간 어떠한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야 마니까.

    ‘내가 숨을 쉬는 속도조차 구경거리인 것이지.’

    부모는 이혼하고 누나는 자살했다니까 애처로운가? 아니면 풍미박산 난 집안의 아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게 더러운가? 그도 아니면, 니들도 내가 누나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무서운가? 가장 많은 눈을 견뎌내야 하는 곳은 단연 급식실이다. 급식을 받으려 줄을 서면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세진다. 민기는 민서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기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민기를 '의대나온 애 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5년 만의 의대 입학생이라며 1년 내내 플랜카드까지 붙여놨던 그들이었다. 그런 학교의 유명 인사가 의사가 된 지 2 년도 되지 않아 자살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이 급식실에서 버젓이 밥을 먹고 있다.

    "지 누나가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나 봐."

    누군가 뱉은 가래 따위의 말 덩어리는 민기를 PC방 안으로 꽁꽁 숨겨버렸다.

    종례가 끝나자 민기는 빠르게 짐을 싸서 제일 먼저 교문을 통과한다. 오늘은 PC방이 아닌 카페로 가야 한다. 아빠가 보내준 카페의 위치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뒷골목 쪽으로 가야해서 꽤 걸어야 했다. 버스를 타기에도 애매한 위치. 이어폰을 꽂고 걷기 시작한다. 아빠 말로는 오늘 가는 카페가 누나의 단골 가게라고 했다, 단골 가게였다고.

    '공부 벌레인 주제에 단골은 무슨.'

    누나는 공부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누나를 참 좋아했다. 엄마는 밥을 먹는 누나를 보며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애라며 왼쪽 입꼬리를 바짝 올리곤 했다. 언젠가 명절날에 외삼촌네 집에서 외숙모를 붙잡고는,

    "일곱살 때 더하기를 알려줬더니 구구단을 외워왔더라니까!"

    라며 깔깔 웃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민기는 민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늦둥이로 태어났다. 같은 해에 엄마는 유달리 영민했던 누나를 데리고 한 센터에 찾았고, 그 곳에서 누나는 영재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흔하고 뻔한 욕심을 드러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된 누나가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무작정 의대를 강요한 것도 엄마였다. 누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민기에게 말했다.

    "의사가 쓴 의료기사는 신뢰도가 더 높지 않을까?"

    누나는 곧 엄마가 알아온 의대 입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둘은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부터 사라져있었고, 9살의 민기는 엄마에게 오는 전화를 알람 삼아 일어나 식탁 위의 미지근한 제육볶음이나 오징어볶음을 먹고 학교로 갔다. 하교한 후에도 집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저녁으로 아침에 먹은 제육볶음이나 오징어볶음 따위를 다시 먹고,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면 거실은 어두운 채로, 안방에서는 티비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퇴근한 아빠의 소리였다.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게임을 한참 하다 보면 엄마와 누나가 함께 들어왔다. 누나에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검은 물약을 먹이고 나서야 민기를 찾아온 엄마는 그렇게 한심한 눈빛을 띄곤 했다.

    "넌 우리 집의 별종이야."

    엄마의 말이 맞다. 이 집에서 자신 같은 사람은 없다. 한때는 누나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숙제를 다 해내는 것,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는 것 정도는 엄마와 누나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민기에게는 난관 투성이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아침을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 일도 아닌, 영 따위의 것이었다. 민기가 받아쓰기 백점을 받아온 날 누나는 전교 1등 시험지를 내밀었다. 누나가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적당히 잘하지. 조금만 여지를 주지. 매일 누나가 딱 한 과목이라도 망하기를 바랐다. 그 틈을 노려 누나보다, 아니 누나만큼은 잘하는 게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늘 완벽했고 자신은 여전히 한심하고 미개한 별종이었다.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 확신했다. 나는 부모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 더욱이, 사랑같은 것은 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민서가 대구에 있는 의대에 합격했을 때 민기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제 밤마다 전자레인지로 아침과 똑같은 저녁을 데워먹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학원에 갔다 돌아오면 거실 불이 켜져 있을 테니까. 누나가 대구로 내려간 후, 엄마의 한심한 눈을 마주보아도, 그렇게라도 눈이 마주쳐서 좋았다. 경멸의 눈빛일지라도, 반가웠다.

    하루는 잠에서 깼는데 창 밖에 햇살이 가득했다. 거실에서도 아무 소리 없이 고요했다. 불안한 기운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이미 10시였다. 2교시가 시작되었을 시간이었다. 엄마는 어딜 간 건지 사라져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야 최민기! 너 이 자식 뭐 하는 거야. 학교 안 가?"

    "엄마가 안 깨워줬잖아요."

    "니 나이가 몇인데 혼자 일어나지도 못해! 한심한 놈. 얼른 옷만 갈아입고 학교로 가. 씻을 생각 하지 말고 튀어가. 알았어?"

    그날 누나가 쓰러졌다고 했다. 누나의 연락을 받고 새벽부터 대구에 가느라 아들의 존재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까, 그제야 생각이 났겠지. 그래놓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다. 나는 안중에도 없었으면서. 누나는 대구에 가서까지도 자신을 외롭게 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할 거라고 했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낯설었다. 누구랑 살 거냐는 엄마의 말에 아빠라고 대답했다. 엄마에 대한 복수였다. 엄마한테 누나가 늘 1순위인 것처럼, 한 번도 내가 1순위였던 적이 없던 것처럼, 나에게도 엄마가 1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는 잠시 어이없어하더니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가 아빠랑 살겠다고 대답했을 때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아빠는 엄마보다는 나았다. 한심한 눈빛을 띠지는 않았으니까. 다 식어버린 아침밥에서, 계절마다 바뀌어있는 이불에서, 전자레인지나 솜으로 채워지지 않는 온기를 느꼈다. 우렁아빠의 돌봄을 받으니 민기는 자신이 1순위인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끔 아빠와 함께 누나를 보러 대구로 내려갈 때면 아빠는 늘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마음 때문일까. 누나와 자신에게 잘해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그런 아빠를 보는 민기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제야 아빠 노릇 하려는 모습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홀로 2인분의 부모 노릇을 하며 자식을 챙겨주려는 모습이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빠가 우리를 조금만 더 잘 챙겼으면, 조금만 더 일찍부터 챙겼으면, 그러면 누나는 죽지 않았을 텐데.

    누나는 6년의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누나는 그동안 외로웠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외로웠는데 고작 6년 가지고 외로웠다고 하는 게 괘씸했다. 10년 넘게 거슬렸던 존재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누나는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이 나이가 들면서 차분함이 더해져인지 더욱 심해진 것 같았다.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 같기도 했고.

    누나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성격.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가 더 매달려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것이다. 누나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상기하고 또 상기해왔다. 특히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이후로는, 엄마가 없어도 마치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공부만 하는 누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엄마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 엄마는 학생 답지 않은 모든 것을 싫어했다. 그리하여 PC방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거나 시험을 보러 가지 않는 등의 반항을 해봤던 것이다. 떨어질 성적도 없고 게임에도 흥미가 떨어졌을 때 즈음, 담배를 피워봤다. 호기심에 한 번 피운 담배는 이상하게 3일 후 다시 떠올랐고, 그때 피운 담배는 고등학생이 된 자신이 매일 담배 한 갑씩을 태우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여느 날처럼 집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민기는 집으로 돌아오던 민서와 마주쳤다. 누나는 자신에게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는 하찮은 사람이었다. 고작 한다는 말이

    "민기야 그러지 마. 담배 몸에 안 좋아."

    였으니까. 다 큰 성인이, 무려 의사 양반이나 되어서는 지 동생한테 빌빌 기면서 말하는 꼴은 나를 열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약자인 척, 겁먹은 척. 사실 엄마와 편 먹고 나를 따돌려와놓고서는. 언제나 약자는 나였는데.

    엄마 노릇을 하려드는 누나가 원망스러워 온갖 욕을 퍼붓고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었다. 누나는 특유의 하찮은 표정을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잠에서 깼을 때 책상 위에 한가득 올라와있는 젤리와 쪽지는 민기를 더욱이 분노하게 했다.

    '답답할 때는 젤리를 먹어봐. 아직 콜라맛 좋아하지?'

    동생을 나쁜 놈으로 만드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이제 와서 배려심 가득한 누나인 척하는 꼴이 소름 끼치고 메스꺼워서 젤리를 보란 듯이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는 하나도 먹지 않았다.

    두 달 후 누나는 죽었고, 또다시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젤리는 자리 그대로 놓여있다.

    어쩌면 누나는 나 때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전 07화 3. 아반롱반(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