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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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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May 31. 2023

3. 아반롱반(3)

    현준은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바로 교수실. 미처 보지 못한 과목의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답변은 편의점에 일렬로 배치된 박카스처럼 똑같았으며, 가지런했다.

    "마약을 하고 시험을 보는 건 엄연한 부정행위이자 범죄입니다. 유감이지만 이번 학기는 F 학점이에요. 다음 기회에 본인의 진정한 실력으로 재수강하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교수님을 찾아가서 똑같은 대답을 들었을 때 현준의 세상은 붕괴되고 말았다.

    '이번 생은 망했어.'

    새로 시작해야겠다. 시작부터 불리한 싸움이었지 않는가. 붕어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이 지경까지 올 리 없었다. 나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그렇게 즐기면서 살았을텐데. 이렇게 평생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붕어로 사는 건 단 하나의 의미도 없다.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자. 가벼운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잖아.

    현준은 완벽한 리셋을 계획하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어떻게 리셋을 진행할 것인가!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한번에 사라져야 한다. 만약 리셋 장소로 집이나 모텔을 선택한다면? 경비아저씨나 모텔 주인 같은 방해꾼이 죽어가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다시 살아나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외로 나가야 한다. 현준은 한강에 가기로 결정했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낮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없을 시간인 새벽 두시를 채택했다.

    두 번째로는, 아무래도 유서를 써야겠지. 현준은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거나 고맙지 않았다. 하지만 유서가 없다면 타살이라고 의심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나의 육체에 유서를 써야겠다. 만에 하나 누군가 한강에서 죽어가는 나를 건지더라도 '죽어 마땅한 놈이구나' 하고 내버려 둘 수 있게끔. 현준은 학교 후문에 있는 문신샵을 향해 걸어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몸 전체에, 심지어 얼굴까지 문신으로 가득한 여성이 현준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예약 안 했습니다. 지금 바로 할 수 있을까요."

    "원래는 안되는데 지금 마침 비어서 해드릴 수 있어요. 그나저나 지금 저희가 리뷰이벤트 하고 있거든요. 리뷰 써주시면 다음 방문 때 20% 할인해 드려요."

    "괜찮습니다. 필요 없어서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어떤 디자인으로 해드릴까요? 요즘은 반려동물 그림 같은 게 유행이에요. 강아지 키우시면 발목에 발바닥 그림도 많이 하시구요."

    "아니요. 저... 왼쪽 팔뚝에 '망친인생'이라고 크게 써주세요."

    "네? 에이. 그게 뭐예요. 요즘 그런 중2병 같은 레터링 잘 안 해요. 유행 한참 지났어요!"

    "제가 항상 뒤쳐지는 사람이라서요. 그냥 이걸로 부탁드릴게요."

    독특한 취향이라며 구시렁거리던 직원은 대략 30분 만에 문신을 완성해 주었다. 고양이수염 따위를 그리지 않아도 되어서 금방 끝났다고 했다.

   현재 시간은 저녁 8시 반. 새벽 2시까지는 5시간 30분이 남아있었다. 현준은 1시에 택시를 타고 한강에 가기로 다짐하고 그 전까지는 학교 운동장에 앉아있기로 했다.

    운동장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들로 가득했다. 운동장의 중심에서 축구를 하는 이들, 벤치에 앉아 맥주와 치킨을 나눠먹는 이들, 큰 헤드셋을 쓰고 달리기를 하는 이들, 한 편에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옆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이들도 보였다. 참 다채롭게도 노는구나. 저들은 왜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재미있는 것일까? 재미있다는 게 무엇이지? 현준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미'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 나는 무엇을 아기자기하게 즐기는가. 현준은 자신이 하는 유일한 행위인 공부가 아기자기한 행위일까 고민해보았지만 즐거운 감정에 무지하여 알 도리가 없었다. 이상했다. 넓은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누구보다도 협소한 공간에 갇혀버린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 작은 방 안이 공부로 도배되어버린걸까. 언젠가는 방 안에 축구공이나 리코더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약 부작용 때문인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공부하는 나를 제외한 나는 어디 갔지? 죽었나? 그래. 사실 나는 이미 꽤 많은 나를 죽여왔던 것이야. 그렇다면 죽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지금껏 죽여온 대로 남은 하나만 죽이면 끝이겠구나.

    그렇게 몇 시간동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꼼꼼히 관찰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현준은 더 이상 탐색할 사람이 없자 택시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것. 바로 택시기사의 의심을 사지 않기. 새벽에 한 남성이 홀로 한강다리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자살을 의심할게 뻔하다. 내 완벽한 계획이 들통날 수도 있다.

    택시에 탄 현준은 전원을 꺼놓은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며 미리 연습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야 나 출발했어. 언제 와?"

    한 박자 쉬고,

    "... 뭐? 아직도 출발 안 했다고? 치킨 먹기로 했는데 늦으면 어떡해!"

     두 박자 쉬고,

    "... ... 그럼 나 시켜둔다? 맥주는 네 잔만 사와."

    여기까지만 하자. 충분하다. 홀로 한강에 가는 현준을 의심하는 듯했던 택시기사는 곧 현준의 연기에 껌뻑 속아 넘어갔다.

    "총각, 아직 여름이긴 해도 밤에는 추우니 즉당히 놀다 가쇼."

    "네 아저씨.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저씨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다리 위의 체감온도는 학교보다 최소 5도 이상 낮은 것 같았다. 시리고 따가운 바람이 현준의 반팔 속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현준은 무심결에 겉옷을 입고 올걸 그랬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그 따위의 생각을 한 자신이 너무나 멍청해 보였다. 어차피 죽을건데 겉옷 타령이라니. 택시기사가 멀리 떠난 것을 확인한 현준은 뒤를 돌아 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저기 하얀 기둥 즈음이 좋겠네.'

    다리 한가운데에 있는 하얀 기둥에서 떨어지면 급류로 인해 땅으로 올라올 일도 없고, 조명도 유달리 약해서 눈에 띄지 않을 것이므로 완벽한 리셋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천천히 하얀 기둥으로 다가가던 현준은 점점 기둥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

    기둥이 아니다. 저건 뭐지? 아, 사람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딱 봐도 변성기도 제대로 오지 않았을 어린아이였다. 현준은 속도를 높여 걸었다. 마른 체구의 아이는 다리 위를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아이의 몸은 대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준은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바람 소리에 현준이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으압!"

    현준은 있는 힘껏 아이의 등을 끌어안았고,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혹시 다시 뛰어내릴까 봐 아이를 놓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아이도 자신의 모든 힘을 써서 발버둥을 쳤지만 현준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힘이 다 빠져버린 아이는 현준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는데, 완벽했는데, 아저씨가 뭔데 내 계획을 무너뜨려요. 네가 뭔데! 악!!"

    아이는 자신의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괴성을 질러댔다. 현준은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아이의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너는 어쩌다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니.

    "나도 알아. 나도 알아."

    그 삶, 그 끝이 어딘지 나도 알아. 그 끝에는 죽음 밖에 없다는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현준은 이 아이가 마치 10년 전의 자신 같았기에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이 아이만은 리셋이 아닌 재생 버튼을 누르기를 바랐다.

    "내가 어떻게 왔는데, 내가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아저씨가 다 망쳤어요. 사는 것도 망했는데, 죽는 것도 망하면... 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이제 어떡하라고요..."

    아이는 현준에게 온몸을 기대어 숨이 넘어가도록 울기 시작했다. 현준은 말했다.

    "너는 아직 늦지 않았어. 망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말아 줘. 부탁이야..."

    "아저씨가 뭘 알아요. 아저씨도 나처럼 인생 망해서 온 거잖아요. 그런 아저씨 말을 제가 뭘 믿고..."

    지금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현준은 자신이 내뱉는 모든 단어에 신중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안고 서있던 현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나도 망한 삶에 지쳐서 리셋하러 온 거야. 죽고 다시 시작하려고 왔어. 그런데 너를 보니 너무나 불쌍해. 네가 너무나 불쌍하고, 내가 너무나 불쌍해.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함께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면, 1등 대가리를 가진다면, 그러면 안 망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망했다는 게 뭔데. 치킨에 맥주로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는 삶,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는 삶, 숨이 턱까지찰 때까지 달리기 하는 삶은 망한 거니?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망했다는 말, 사실 우리는 그게 뭔지도 모르잖아. 망한 게 뭔지도 모르고 죽을 수는 없어. 나는 나의 기준을 세울 거야. 내가 세운 기준에서 망했다고 느낄 때, 그때 죽어도 늦지 않아."

    현준은 어느샌가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현준의 말을 되뇌는 듯 가만히 기대어 있었다. 잠시 후 아이가 대답했다. 그 또한 최선을 다해 신중히 말하고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저희 논술 선생님이 새로운 단어를 접할 때는 정의부터 꼼꼼히 읽어보라고 했어요. 처음에 개념을 잘못 받아들이면 주위에 얽혀있는 다른 개념들도 엉켜버려서 한참 뒤에는 주먹만큼 큰 뭉치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고요. 어디서부터 엉킨건지도 모를 끈을 풀어내려면 대공사를 해야 한댔어요. 처음에는 사소한 뒤틀림에서부터 시작됐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 그럼 우리는 망했다는 것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보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완벽하게 찾아내는 거야. 우리는 성실하잖니."

    "일단 알겠어요. 아저씨 번호 좀 주세요. 서로 망했다는 게 뭔지 알게 되면 전화하기로 약속해요."

    "그래.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야! 나 스무 살이야. 너랑 별로 차이 안나. 현준이 형이라고 불러."

    "네. 현준이 형. 저는 태석이에요. 그나저나 저 좀 이제 풀어주세요."

    "... 안 죽을 거지?"

    "아! 안 죽는다고요! 아직 못 푼 문제가 있는 상태로 죽을 수는 없어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현준과 태석은 닮은 구석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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