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중독자의 1년 루틴
계획을 세우는 건 일종의 중독이다.
한 번 마인드맵 툴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가지를 뻗어보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대로만 하면 된다.’
그럴싸한 계획이 완성되면
뇌는 이미 성취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치 게임의 최종보스를 잡은 듯한 쾌감.
완벽한 청사진을 만들어냈으니,
이제는 실행만 남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작은 내일부터.
“오늘은 이 정도 했으면 됐지.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하자.”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어, 오늘이 목요일이라고 치자.
멋진 계획을 세웠다.
시간대별로 딱딱 나눠서,
블로그 쓰는 시간, 운동 시간, 사업 아이템 리서치 시간까지!
완벽하다.
그런데 문득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음...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그냥 이번 주 마무리하고 다음 주부터 깔끔하게 시작하지 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갑자기 아내에게 혼난다든지,
아이가 아프다든지, 기분이 좀 꺾인다.
“그래, 오늘은 좀 정리하고 내일부터 시작하자.”
화요일. 갑자기 지인이 급하게 도와달란다.
“오케이, 수요일부터는 무조건 시작.”
수요일. 주 중반이다. 애매하다.
“에이, 그냥 이번 주는 기존대로 하고 다음 주부터!”
그런데 다음 주가 되면?
월말이다.
“... 깔끔하게 다음 달부터 하자.”
이쯤 되면 거의 연례행사처럼 돌아가는
'계획 미루기 연대기'가 있다.
1월: 연초 모임 많아서 안 됨. 애들 방학.
2월: 설날 연휴. 애들 방학 연장전.
3월: 신학기. 상담, 수업참여, 학원 적응기.
4월: 봄꽃이 절정. 이럴 땐 나가야지.
5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가정의 달.
6월: 누군가의 생일, 혹은 그냥 지쳐서.
7월: 여름휴가 예약, 계획 세우기만으로도 한 달 gone.
8월: 본격 여름휴가. 더워서 아무것도 못 함.
9월: 추석. 이번엔 명절증후군으로 패스.
10월: 하늘이 너무 예뻐서 카페만 감.
11월: 연말 임박. “아, 올해도 끝나가네.”
12월: 송년회, 크리스마스, “내년부터 진짜 시작할게.”
이건 혹시 우주가 나의 실행을 방해하려는 계획이 아닐까?
문제는 이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계획 → 미룸 → 자기 합리화 → 새로운 계획 → 또 미룸.
중요한 건 매번 계획이 아주 그럴듯하다는 거다.
계획할 땐 천재 같고,
실행할 땐 바보 같다.
‘계획’은 뇌에게 환상을 준다.
“이대로만 하면 넌 성공이야.”
하지만 그건 말뿐이다.
계획은 이벤트에 밀리고, 감정에 밀리고,
결국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도, 또 계획만 남는다.
그 고리를 끊고 싶다면,
이제는 멈춰야 한다. '내일부터'라는 유혹을.
변화하고 싶다면, 바꾸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내일부터는 없다. 바로 지금부터다.
주말이고 뭐고,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계획한 바로 그 순간부터 실행해야 한다.
계획을 지키는 게 내 감정보다, 일정보다, 이벤트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계획이 변수에 밀리는 삶은 절대 변화할 수 없다.
계획은 지키라고 만든 것이지, 머릿속에서 성취감을 느끼라고 만든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딱 한 줄만 적어도 좋다.
작은 실행이 진짜 변화를 만든다.
계획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성공자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계획을 ‘그 순간에 바로 실행하는 자’다.
어느덧 2025년도 3개월이 지났다.
오늘 거리에서 활짝 핀 목련 꽃을 보았다.
나무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시기에 정확하게 실행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벚꽃이 만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벚꽃보다 단 하루라도 먼저 피어 보기로 했다.
내 인생의 봄은,
오늘 내가 움직이는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