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달리하면 ‘실패’조차도 자산이 된다
내가 진짜로 ‘망했다’는 걸 처음 인정한 날이 있다.
누군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이 차갑게 돌아섰던 그날.
모든 사업을 접고, 텅 빈 사무실 짐을 차에 실어 집으로 돌아오던 한겨울 저녁.
그 차 안에서 나는, 울었다.
목놓아, 대성통곡을 했다.
전신이 저릴 만큼 울고 나서야,
이게 현실이라는 사실이 더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나는 모든 걸 잃은 사람이었다.
손에 남은 것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하나,
‘글을 쓰는 것’만 빼고.
절망 끝에서 쓴 첫 번째 글이었다.
전략도, 키워드도, 마케팅도 없었다.
그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을 썼다.
제목은,
‘나는 왜 퇴사 후 완전히 무너졌는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는 며칠간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바로 이어지는 피드백이나 조회수를 기대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며칠 후, 무심코 접속한 순간.
조회수는 9천을 넘겨 있었고,
댓글엔 낯선 이들의 응원과 공감이 가득했다.
놀라웠다.
망한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글 이후 나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망한 제품 대신 글을 썼고,
망한 서비스 대신 콘텐츠를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놓았던 블로그를 다시 잡았다.
전자책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사업에는 세 가지가 있다.
재화, 서비스, 콘텐츠.
나는 재화를 팔다가 망했고,
서비스를 팔다가도 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콘텐츠는 나를 다시 걷게 해 주었다.
예전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가진 게 없으니, 콘텐츠는 못 해.’
그런데 지금은 안다.
가진 게 없어서 콘텐츠를 할 수 있었다.
실패, 고통, 고백,
그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야기였고,
누군가에게는 위로였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용기였다.
그게 바로 가치였다.
나는 여전히 후회가 많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회사를 그냥 계속 다닐걸.’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고통이 내 자산이고, 내 유산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는,
이 절망조차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을 만들겠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마트 배송 일을 하고 있다.
그 길 위에서 자주 과거의 장소들을 지난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걷던 골목.
친구들과 뛰놀던 공터.
연애 시절 아내와 걷던 거리.
그 기억들은 지금의 현실과 대비되어
더없이 아프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아름다웠던 기억조차 고통이 될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지금의 기억도 언젠가는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 가능성 하나를 붙잡고,
나는 오늘도 쌀을 들고, 생수를 나르고, 글을 쓴다.
내 실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 이 폐허가 된 땅 위에서 복구작업 중이다.
중장비도 없고,
돕는 사람도 없고,
잃은 게 너무 많지만,
나는 직접 장갑을 끼고, 무너진 잔해들을 하나하나 치우고 있다.
그 잔해는 원망이고, 분노이고, 슬픔이고, 무기력이다.
이제 그 잔해는 거의 다 치워졌다.
이제 삽 하나 들고,
나는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려고 한다.
이번엔, 기초부터.
이번엔, 혼자서.
그리고 이번엔, 무너지지 않도록.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각오한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아픈 하루들을 계속 기록할 것이다.
물론 기록 그 자체가 희망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짓기 위한 벽돌 한 장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벽돌 한 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부디 모두가 멋진 집을 지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