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지 마세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1인 2역을 맡을 때 과한 화장과 점 하나로 다른 사람인 척한다. '금 나와라 뚝딱!' 속 한지혜는 색조 없는 민낯과 강렬한 메이크업으로 두 인물을 나눴다. '아내의 유혹' 장서희는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가소롭다. 나야말로 이중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찜질방에 갈 때의 나는 검정이나 회색 운동복 차림이다. 체격도 더 커보이는 오동통한 모습. 화장은 당연히 안한다. 세수조차 안하고 갈 때도. 머리는 집게핀으로 대충 집어 올린다. 반면 학원 강사로 갈 때는 달라진다. 머리 감고 찰랑거리게 말리고 풀 메이크업에 액세서리를 하고 옷도 한껏 화려하다. "오늘 저 좀 꾸몄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송출한다. 사실 이 두가지 모습 사이인 애들 엄마 버전도 있다. 이쯤 되면 이중생활이 아니라 삼중생활인건가? 세수는 하고 기초 화장은 바르고 깔끔하지만 과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등하원을 담당한다.
이렇게 세 명의 내가 일주일을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다르게 했는데 지금은 약간 의도적인 위장이다. 찜질방에서의 나와 학원 강사로서의 나를 완전히 분리하고 싶었던 거다. 찜질방에서 여탕 관리와 수리를 하다 보면 손님들의 눈이 불편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부끄럽진 않지만 때로는 험하고 더럽고 힘들다. 그런 일을 하는 여자로만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세수도 안 하고 더 폐인처럼 다녔다. 이쪽에서 본 나와 저쪽에서 본 나를 절대 이어붙일 수 없게 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나눠 입고 꾸미다 보니 내 마음도 달라졌다. 학원 갈 때 꾸미는 순간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찜질방에서 잡일만 하며 자존감이 땅바닥을 기던 시절 '나도 이 일만 하는 사람은 아니야.' 라는 생각이 조금씩 살아났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정말 맞다.
책 [실행이 답이다]에서는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김밥이나 팔고 있으니깐 우습게 보여?"
김밥을 판다고 해서 스스로를 '김밥이나 팔고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동시에 더 큰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나의 찜질방과 학원, 엄마로서의 삶이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걸. 그냥 내가 선택한 '다양한 역할'일 뿐이라는 걸.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생계형 투잡이었는데,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지금은 온갖 ‘N잡러’로 살아가고 있다. 찜질방 관리인이면서, 강사이면서, 엄마이면서, 또 글을 쓰는 사람. 그러니까 나는 다양한 걸 고치는 사람인 동시에, 강의실의 사람이고, 아이들의 엄마이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평생 직업’이라는 말은 이제 어딘가 박물관에 전시될 유물처럼 옛말이 된 거 같다. 나는 나를 더 넓게 불러보고 싶다. 찜질방 박반장으로 불려도 좋고, 강사로 불려도 좋고, 브런치 작가로 불려도 좋다. 솔직히 이 조합, 어디 가서 다시 못 만난다. 누가 이런 인생 시놉시스를 썼을까 싶지만, 그게 지금의 나다.”
p.s
혹시 인터넷 어딘가에 "이게 같은 사람 맞아?" 싶은 수준의 메이크업 전후 영상 아시면 알려달라. 내 3중생활 입증 자료로 딱이다.
(이미지 출처: ‘금 나와라 뚝딱’ 한지혜 진가 드러났다, 1인 2역 호평일색 - 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 - 뉴스엔 (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