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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Dec 05. 2023

찜질방 박반장의 하루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라~

씩씩하게 잘도 난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TV만화 '짱가' 가사 중



찜질방 박반장의 하루는 딱 이 노래 가사 같다.


'어디선가~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따따따 따 따따따 달려간다. '


 카운터에 시재 금액을 맞춰 주고 필요한 물품을 갖다 주거나 배송을 시킨다. 여탕 내와 탈의실, 화장실, 한증막, 공용실 등을 둘러본다. 전구가 나가진 안았는지,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는지, 문제 되는 상황은 없는지 다각적으로 확인한다.


 고장 난 곳이 할 수 있는 범위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친다. 예를 들면 수도꼭지의 누르미를 고치거나 온수와 냉수 바꾸는 레버를 고친다. 샤워기 헤드를 바꾸거나 사우나실 전구를 교체한다. 하수구가 막혔는지 확인한다. 변기가 막혀 청소이모님이 쩔쩔매고 계시면 함께 변기를 뚫는다. 옷장과 신발장에 고장 난 부분이 있으면 열쇠를 교체하거나 경첩을 바꾸고 헐거워진 나사를 조인다.


 빨래방 직원이 쉴 때는 빨래방에서 일한다. 하루 종일 대량의 빨래를 넣고 빼고 건조해 갠다. 카운터 직원의 일손이 빌 때는 카운터를 본다. 찜질방 안에 직원이나 용역들이 시정해야 할 사항이 생기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얘기한다. 손님들의 불평불만을 듣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노한 마음을 공감하여 화난 감정을 달랜다. 광고를 위해 매월 현수막 지정게시대에 신청을 한다. 현수막이나 안내문 같은 걸 만들어야 할 때는 광고기획사와 협의해서 제작한다.




 지금은 멀티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간호사 출신으로 목욕탕관리와 거리가 멀었다. 둘러보며 뭘 봐야 하는 건지,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 건지 몰라 모델하우스 보듯 쓰윽 보기만 했다. 손님들의 시선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빠르게 도망치듯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를 본 손님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탕에 뭐 놓고 갔나 보다~ 뭐 찾으러 왔나? 누구 찾으러 왔나?'라고.


 관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끔 와서 대충 훑어보고 가는 여자가 그렇게 보일 리 있나. 그렇게 생각한 건 손님들 뿐이 아니었다. 직원들의 시선은 더했다. 나이도 어린 게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둘러보고 간다 생각했다. 반평생을 목욕탕에서 일하신 분들도 계시니, 그분들이 더 베테랑이었다. 그러니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요구사항도 없었다. 어차피 못 고칠 거 아니까. 남편인 매니저에게 여탕에 한번 날 잡고 들어와 고칠 게 많다며 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능력치를 키웠다. 고치는 기술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도 배우고 아가씨에게도 배웠다. 아가씨는 목욕탕집 딸로 오랜 세월 살아서 이것저것 고칠 수 있는 게 많았다. 공구도 처음 써보고 기계도 처음 만져봤다. 뭐 고치는 거 한 번도 안 해봐서 생소하고 헷갈려서 금방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점차 자리 잡아갔다.


 '여탕 안에서 오직 나만 할 수 있다.'는게 큰 강점이 되었다. 직원들이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취약한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터득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삶이 리셋되는 듯한 쾌감이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항상 타고난 것처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학벌이 좋아서.', '그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그 사람은 손재주가 좋아서.' 등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야.'라고 규제하고 못하는 이유에 핑계 댄다.

 우리가 못하는 일들 중에 때론 '실패할까 봐.',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진짜 실패다.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물듯, 어쩔 수 없는 환경에 갇히면 적응하게 된다. 무언가를 도전해보고 싶다면 환경을 제한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취약한 부분에 성과가 보이고 나니, 새로운 도전 정신이 생긴다. 앞으로 찜질방 내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일은 어떤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부디 너무 어렵진 않길)


오늘도 찜질방 박반장은 여기저기 출몰한다.


p.s 좌충우돌 고군분투한 박반장은 또 어떤 다양한 일을 하게 될까? 아마도 이건 확실하다.

     절대 상상하는 일은 아닐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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