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 짱가!'
TV만화 '짱가'의 오프닝처럼 찜질방 박반장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된다. 카운터에 시재 금액을 맞추고 물풀을 보급하고 여탕 안팎을 돌며 한 손엔 전구 다른 손에는 공구를 든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새면 드라이버를 돌려 조이고 샤워기 헤드가 낡았으면 새 걸로 갈아 치운다. 변기가 막혔으면 손잡이 걷어붙이고 달려든다. 옷장 문짝이 덜컥거리면 경첩을 바꾸고 헐거운 나사는 다시 조인다. 필요하다면 빨래방 알바생으로 변신했다가 카운터 직원 대타로 앉았다가 현수막 담당 마케터로 변신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직원들을 설득하고 손님의 불만은 달래면서 분노의 온도를 낮춘다. 짱가가 하늘을 날 듯, 박반장은 찜질방 구석구석을 누빈다.
지금은 멀티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지만 시작은 달랐다. 간호사 출신이 목욕탕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모델하우스 손님처럼 '오, 여기가 샤워실인가~' 하고 대충 훑어보고 도망치듯 나왔다. 손님들 눈에는 이렇게 보였을 거다.
"탕에 뭐 놓고 갔나? 누구 찾으러 왔나?"
관리자라기엔 너무 무기력했고 직원들 눈에도 영 마뜩잖았다. 반평생을 이 바닥에서 구른 베테랑 분들 앞에서 나는 그저 애송이였다. 그러니 요구도 없고 인정도 없었다. 그래서 공구를 잡았다. 남편에게 배우고 목욕탕집 딸인 아가씨에게도 배웠다. 처음엔 나사 하나 조이는 것도 버겁고 이름도 생소한 공구들이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반복하다 보니 손이 기억한다. 드라이버 돌리던 손이 어느새 익숙하게 전구를 갈고 수도꼭지를 뜯는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여탕 안에서 이 일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서서히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를 괜히 돌아다니는 여자가 아니라 없으면 곤란한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취약하다고 생각했던 분야가 오히려 내 무기가 된 것이다.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놀라웠다.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내 삶이 새로고침 되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타고나서 앞서가는 게 아니다. 학벌이 좋아서 머리가 좋아서 손재주가 좋아서 잘하는 게 아니다. 다만 시도해 보고 버텼기 때문에 결국 해내는 거다. 못하는 진짜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진짜 실패다.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지면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그 상황이 나를 단련시키고 다음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앞으로 찜질방에서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부디 너무 어렵지 않기를. 그저 작은 고장이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기대가 된다. 오늘도 찜질방 박반장은 여기저기 출몰한다. 짱가 노래 가사처럼 절대 상상도 못한 일들이 대기 중일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