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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캐릭터

전혀 관련 없는 일이지만 상호보완합니다

by 다몽 박작까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지나 님은 세상에 없는 캐릭터예요."


이 말이 참 좋다. 내 일이 더욱 특별해진 기분이랄까. 세상에 N잡러가 많다지만 찜질방 박반장과 간호학원 강사를 동시에 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간호학원 강사 중에 투잡을 뛰는 분들이 있다. 병원 근무와 강의를 병행하거나 간호학원과 요양보호사학원을 오가며 일한다. 하지만 그건 '같은 결의 일'이다. 나는 조금 다르다. 하나는 머리를 쓰고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부딪치고 기술로 버텨내는 직업이다. 얼핏 보면 전혀 접점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두 일은 서로를 보완한다.




찜질방에서 몸을 쓰다 보니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공부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공인중개사 책도 한 번 펼쳐봤는데 영 맞지 않았다. 결국 다시 전공으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해야 할 때는 도망치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시점에선 하고 싶어진다. (나만 그런가?) 어쨌든 강의 준비를 하면서 공부하는 시간이 묘하게 즐거웠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까?" 고민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까먹었던 의학용어들을 다시 붙잡았다. 그러다 보니 건강지식도 점점 더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강의 중 수강생들이 '아, 이제 알겠다.'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 느끼는 희열. 그 맛에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 아이들 앞에서는 공부하는 엄마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물론 공부가 막막할 땐 오히려 찜질방에서 변기 뚫고 전구 가는 일이 더 편하고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강의가 내게 준 제일 큰 선물은 자기 관리다. 찜질방 갈 때는 거의 폐인룩으로 갔는데 강의 가는 날은 한껏 꾸민다. 머리 찰랑거리게 감고 화장도 풀 세팅. 거울 속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맞아. 나도 이렇게 꾸밀 줄 아는 여자였지.'


사람은 평생 자기 관리를 멈추면 안 되는 거다. 또 하나는 강사라는 플랜 B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있어도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언제 또 어떤 전염병이 닥칠지 모르니 '내가 살아갈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물론 아직 수입은 적지만 그래서 더 키워나가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무엇보다 두 일은 서로의 거울이 된다. 찜질방에서 험한 일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강의는 이만큼 힘든 일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강사라는 일이 더 소중하다.


반대로 강의를 하면서는 찜질방 일에 더 신경 쓰게 된다. '강사 한다고 여탕 관리 대충 한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다. 오히려 전보다 더 꼼꼼해졌다. 말하는 직업을 하다 보니, 찜질방 직원들과 대화할 때도 더 조리 있게 말하게 된다. 원장님의 자영업 운영을 옆에서 보며 사업 감각까지 조금씩 배우고 있다.




요즘은 N잡러의 시대다. 하나의 일에만 매달리던 시대는 끝났다. 찜질방 박반장과 간호학원 강사. 얼핏 상극 같지만 이질적인 두 일이 내 삶을 채우며 균형을 맞춰준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그만큼 보람되고 뿌듯하다.


간호사 출신 찜질방 박반장. 오늘도 나는 멀티가 된다. 찜질방에서 땀으로 버틴 시간들이 강단 위에서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강단에서 갈고닦은 말들이 찜질방에서의 하루를 조금 더 단정하게 만든다. 서로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두 세계가 내 안에서 이어지며 결국은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간다. 그게 내가 살아내는 방식이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작은 감동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멀티로 살아간다.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세상에 하나뿐인 캐릭터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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