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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고살아야 하는 걸까

by 이다

여기선 더 이상 찔 수 없다. 이것은 밀라노에 도착한 내가 필사적으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동안의 다이어트를 돌아봤다. 그동안 내가 해 온 다이어트는 그저 먹고 찌고 단기간에 빼는. 한마디로 무식한 방법의 무한 반복이었다.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운동으로 살을 뺀다는 건 운동선수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세계 4대 컬랙션이 펼쳐지는 패션의 도시, 나는 패션 스타일링을 공부하러 온 사람. 답 나왔지? 살찌면 안 된다! 그렇지만 사람은 어디서든 먹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가.






언어 학원에 등록을 하고 프리토킹으로 레벨 시험을 봤다. 미국, 스페인, 한국, 일본... 국적도 다양한 아이들이 선생님과 레벨 테스트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눈에 보이는 풍경 중얼거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 앞의 아이가 말을 걸어왔는데 스페인 학생이다.


"난 여기 온 지 한 달 됐어."

"뭐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이태리어를 잘하는 거야?"

"스페인어는 이태리어랑 거의 똑같아. 우리는 한 달만 있으면 말을 하게 돼."

"이런... 정말 부럽구나."


이런 대화를 끝으로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왜 이태리에 왔니?"로 시작된 선생님의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상하다. 내 귀에는 오디오로 들린다. 난 이미 선생님이 말하는 문장을 통째로 외운 사람이다. 이런 정도 질문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답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내가 생각해도 거침이 없었다. 이곳에 막 도착한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이태리어는 굉장히 빠르다. 일단은 속도에서 압도해야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ㅋㅋ)


"이다, 6 레벨로 가세요."


헉. 전체 8 레벨의 언어학원에서 6 레벨이라니. 그곳엔 한국사람이 아무도 없다. 외국 아이들만 바글바글 한 곳. 이다야. 잘할 수 있겠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원어민 선생님의 이태리어는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들었던 수업보다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언어에 대한 고민이 한시름 놓이자, 슈퍼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지 탐색을 해야 하는 시간. 이태리 슈퍼는 일단 그 규모가 엄청났다.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치즈치즈치즈, 요구르트요구르트의 끝도 없는 행렬. 아래쪽엔 씻어 놓은 샐러드까지 포장포장포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마리아끼아라가 말했던 모짜렐라 담고,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는 큰 통으로,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샐러드!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게, 유럽식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입에 델 수 없는 맛이었다. 앗싸! 느낌 좋아!


학교에 가며 까페에 들른다. 이곳에선 아침을 까페에서 대부분 해결한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브리오슈(크로와상)하나, 아침이니까 우유 들어간 까푸치노 한잔! 이것이 내가 선택한 아침이었다. 점심은 주로 파니니와 파스타를 많이 먹던데 생각보다 무맛에 짜기만 했다. 배를 내놓고 다니던 여자 아이들의 메뉴를 슬쩍 보니 어라. 얘네들은 단체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인지 모두 다 샐러드를 먹고 있다!


쾅쾅. 이것은 내 인생 일대의 혁명이었다. 샐러드가 점심밥이 될 수 있구나. 그건 고기에 쌈 싸 먹는 거 아니었냔 말이다. 그러나 배를 내놓는 트렌드를 무시할 순 없었고, 나도 어느새 점심으로 샐러드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들은 샐러드의 내용물도 마라탕 재료처럼 하나하나 다 개인 취향으로 골랐고, 나는 단백질거리를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의외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갈 때까지 딱 죽지 않을 만큼 견딜 수 있었다. 중간에 배가 너무 고프면 갈색설탕 한 봉지를 털어 넣은 쓰디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까페라고 불리는 커피의 효과는 대단했는데, 그날부터 온몸의 찌꺼기가 나오는 듯하더니 급기야 변비가 사라졌다.


저녁은 간단히 파스타를 해 먹거나 한국식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스트레스가 최고였던 목요일 저녁, 한 번 정도는 배부르게 요리를 해 먹었다. 그 외에는 딱 이 정도의 식사를 유지했다. 한 번도 굶지 않았다. 길바닥이 울퉁불퉁해서 걷기도 힘든 이 도시에서 밥을 굶었다간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도 없는 뚜벅이 유학생인 나는 트램에서 내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참 열심히도 걸어 다녔다.


그러는 사이 살이 점점 빠진 거 같긴 한데, 저울이 없어 미처 재보진 못했다. 저녁이 되면 귀에 딱지처럼 가라앉은 이태리어를 닦아내는 것이 나에겐 더 시급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슬금슬금. 정말 이 말이 딱 맞다! 엄청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살이 내리고 있었나 보다. 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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