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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히말라야 트레킹 일지 8

에필로그_나의 두 부처를 흘려보내며

by 김승요


DSC00419_1.JPG 호숫가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까마귀


몬순, 밤의 페와 호숫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에 맞춰 반딧불이들이 제 짝을 찾아다니며 날아다녔다. 그것을 잡았다가, 놓아주었다가 하며 혼자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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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생각이 많은 우울한 아이였다. 다행히 머리가 크면서 만난 친구들 덕에 성격이 꽤 밝아졌고 그 누구보다 10대와 대학시절을 재미있게 보냈지만, 천성이란 게 무시할 건 못 되는 건지 내 발목을 꽉 잡고 놓지 않는 그림자는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할 뿐 절대 떨어지지 않아 왔다.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어린 애들 놀이 같아."히말라야에서 주문처럼 되뇌었던 노랫말. 사람 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린 애들이 하는 소꿉장난 같다는 그 말에 동감한다. ‘누군가’의 나긋한, 친밀한, 이해심 깊은, 모범적인, 순한, 말 잘 듣는, 믿음직한 ‘누군가’로서 기능하는 놀이. 사실 나는 그 역할 놀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사는 내내.


자신 있게 내세울 만큼 뛰어난 건 사회성 밖에 없기에 더욱 인간관계에 집착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나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지쳐버려 내향적이었던 유치원생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친구들이 하는 소꿉놀이에 끼기 보다 혼자 있는 게 훨씬 더 좋아했던 어린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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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자연과 안나푸르나 산군을 맨눈에 담고 싶다던가, 트레킹 코스를 완주해서 성취감을 얻고 싶다던가 하는 소망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어떤 형태이든 타인과 맺은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히말라야로 도망친 것이었다. 산행하는 동안 K와 물리적인 거리가 벌어지곤 했던 것은 우리의 체력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종종 그가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기도 했다. 장황한 설명을 늘어놨지만 요컨대, ‘제발 좀’ 혼자 있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이건.


그렇지만 정말 그곳에서 내가 온전히 혼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일주일 간의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은 덕이었다. 산악 용품을 빌려주신 윈드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돈 한푼 받지 않고 우비를 만들어준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 캠프 직원, 히말라야에서 마주친 트레커들, 든든한 안내자 K, 그리고 동행자 마보이.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적잖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니 놀이터 밖으로 아예 나가버리지 말고 혼자 가장자리를 빙 둘러서 거닐다, 그때그때 끼고 싶은 친구들 무리에 슬쩍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하면 되지 않을까? 당장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성심껏 대하되, 구름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인연은 굳이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며…….


8년 전의 여행으로 얻은 인간관계 신조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게는 꼭 맞는 터라 여전히 충실히 따르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건 K의 이름조차 결국 흘려 보냈다는 것이다. 페와 호숫가에서 손에 쥔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은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늦은 오후 트레킹을 마치고 K와 택시에서 내려 헤어진 그 끝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 여행기를 다시 쓰면서, 뇌 한구석에 숨어있던 그의 이름을 다시 떠올릴 수도 있을 거란 기대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난 그 이름을 찾지 못했다.


‘흘러가는 구름 하나하나가 다 부처’라는, 가장 좋아하는 여행기의 가장 사랑하는 구절을 다시 떠올린다. 히말라야의 검은 개, 나에게 왔다가 미련 없이 흘러가듯 떠나가버린 마보이가, 그리고 짐을 나누어 들고 함께 산을 올라 주었음에도 미련 없이 흘려보내버린 K가 바로 나의 두 부처였다는 것을 상기할 때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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