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_히말라야에서 A.B.C까지
길을 나서자마자, 히말라야 롯지의 검은 개가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조금 잘해줬다고 배웅까지 해주나 싶어 고마웠는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쫓아오며 되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니 점점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K에게 ‘얘는 어떡하지?’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내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다지 별일은 아니라는 듯한 K의 태도 덕분에 걱정은 뒤로하고, 함께 트레킹 하기로 했다. 반나절이 지나고부터는 그에게 ‘마보이’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
어느 순간부터 개의 걸음이 불편해 보인다 싶어서 발을 살펴 보았다. 그의 발가락 사이에 통통한 거머리가 붙어있었다. 조심스레 떼어 주었더니, 킁킁 냄새를 맡다가 홀랑 먹어버린다. 야, 너 네 피를 다시 먹은 거야!
한 번은 그가 무언가를 물고 장난을 치길래 봤더니 작은 새였다. 기겁해서 저지했지만, 새는 이미 죽은 뒤였다. 충격과 배신감이 들어서 한동안 그를 마보이가 아닌 ‘배드 보이’라고 불렀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मच्छपुच्छ्रे बेस क्याम्प Machhapuchhre Base Camp
몇시간 동안 마보이와 함께 걸으며 도반, 데우랄리를 지나서 마차푸라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고지가 바로 앞에 있지만 눈에 보이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창문 밖을 내다 보면서 좀 쉬었다. 방금 이곳을 떠난 트레커 무리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 딱 한 치 앞 밖에 보이지 않는 날씨였다.
내가 조금 나눠준 김과 밥을 먹고 난 뒤에 마보이는 추운지 식당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롯지 측의 눈치를 볼 새도 없이 능구렁이처럼 빠르게 문을 비집고 들어온 개는 테이블 밑으로 숨어버렸다. 다행히도 M.B.C의 롯지 직원은 딱히 개의치 않아 했다.
해발고도가 3,700미터가 넘기 시작한 시점, 확실히 찬 기운이 들었다. 나도 고산증세가 살짝 오기 시작했다.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몸이 으슬으슬했다. 잠시 후 캠프에 도착한 폴란드 부자는 여기에서 하루 쉬었다가 올라간다고 했다. 아무래도 높아진 고도 때문에 아들에게 고산증세가 온 듯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소년은 내 옆에 앉아 히말라야 롯지에서처럼 마보이를 함께 쓰다듬었다.
“얘, 쌀을 좋아해?” 내가 준 마보이의 밥을 본 소년이 물었다.
“아시아 개라 그런가, 쌀을 잘 먹네.” 대답하니 웃었다. 그러더니 생각치도 못한 질문을 했다.
“개를 한국에 데려갈 거야?” 나는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얼버무렸다. 솔직하게 정말, 그 뿐이었다.
마보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벌써 슬퍼졌지만, 책임감 없이 너무 정을 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과 마음이 여기서 더 가라앉기 전에, 진저레몬티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마보이도 역시 따라나섰다.
날씨와 거머리 때문에 선호되지 않는 7월의 히말라야. 하지만 발에 사박사박 밟히는 것이 눈꽃이 아닌 푸르른 풀꽃인 것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꿈속을 걷고 있는 기분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고요했다. 마보이의 가벼운 걸음 소리와 공기 중의 물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먼 옛날 거대한 눈덩이가 미끄러져 내려가며 텄을 길에, 너무나도 작은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서있었다. 그러나 K와 마보이가 저 멀리 안개 속으로 앞서 가버리면, 그때는 나 혼자였다.
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해발 4,000m는, 내내 평지에 살던 인간에게는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고도였다. 젖은 옷가지를 걸친 몸의 온도는 계속해서 낮아졌다. 목덜미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까지 가세하니 머리가 더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뒤처지자 마보이는 길을 되돌아왔다. 그리고 풀밭을 내지르며 장난스레 뛰어다녔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기죽어 있는 것보다, 비를 맞고 풀밭을 뛰어다니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다른 개 같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소리지르며 웃었다. 마보이와 함께 올라가니 모든 악조건은 별게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함께 걸으니까 충분히 견딜 만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나는 드디어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에 도착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अन्नपूर्ण बेस क्याम्प Annapurna Base Camp
고지에 다다른 것은 맞지만, 목적지에 당도한 기분은 결코 아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달까, 가벼운 고산증세가 아직 가시지 않아 얼이 빠져 있었다. 더구나 날씨가 좋지 않아 안나푸르나봉이 모습을 꽁꽁 감춘 채였다.
당신이 난생 처음 파리에 가서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데, 모자리자가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아니면 뉴욕에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갔는데, 공사 중이라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거나. 숨어있는 안나푸르나봉을 보니(아니, 보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나도 그냥,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우와~작가님~
소중한 사진과 글이 힐링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