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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히말라야 트레킹 일지 7

6, 7일차_촘롱에서 나야풀까지

by 김승요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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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드룩 घान्द्रुक Ghandruk


다음날, 간드룩까지 가는 길은 고도가 다시 낮아지면서 거머리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다시 소금을 바지 끝 단, 양말 속, 신발 전체에 고루 발랐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곧 다 씻겨 내려가 버렸다. 우기의 산길이라 폭포로부터 내려오는 강물을 이따금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거머리도 거머리인데, 축축하게 젖은 양말을 하루 종일 신고 걸어야 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때 푹 젖은 신발은 카트만두에 도착해서까지도 마를 생각을 안 했다. 허허, 몬순의 네팔이란!


안개 낀 간드룩 정경안개 낀 간드룩 정경


간드룩은 네팔어로 ‘돌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구룽족이 주로 거주하는 이 마을의 가옥은 그 이름처럼 대부분 돌로 지어졌다.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은 뉴간드룩에서 머물렀다. 데이터도 다시 터지기 시작해서, 부모님께 못 드렸던 연락을 드렸다. 당시에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인터넷이 끊긴 그 며칠 동안 걱정돼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한참 후에 고백하셨다.


마지막 날의 루트마지막 날의 루트


뉴간드룩 롯지에서는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잠깐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혹시나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였다. 하지만 그놈의 우기라, 여전히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렇게 히말라야의 마지막 밤까지, 단 한번도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볼 수 없었다. 일말의 작은 기대까지 꺾이는 순간. 네팔의 밤하늘 또한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또 오면 되니까. 발 닿은 어디든 작은 미련은 남겨 놔야 하는 법이니까. 스스로를 위로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안심해선 안됐지만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던 것 같다. 고도가 낮아지고 인가와 가까워지니까 확실히 길도 비교적 잘 닦여 있어 걷기 편했다. 집집마다 기르는 동물들도 자주 마주쳐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에 비례해 길에 똥도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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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기 염소를 이때 난생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다. 크기랑 하는 짓이 진짜 딱 강아지와 똑같아서 보자마자 나는 거의 우는소리를 내며 반쯤 눈이 돌아가버렸다. 진짜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사진으론 이놈들의 귀여움을 10%도 담을 수 없다. 누구든 아기 염소를 꼭 실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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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색이 다 다른데, 가족일까?털 색이 다 다른데, 가족일까?


침롱이었나, 시와이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마을의 가게 앞에 앉아 쉬며 K가 가게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아저씨가 가족들과 먹던 오이를 권했다. K가 얻어온 오이는 길이가 팔뚝만 하고 굵기는 생수병만 했다. 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처음엔 거절했는데, 술에 취한 건지 기분이 매우 들떠 보이는 아저씨가 두 번째 권하실 때는 그 커다란 오이 두 조각을 받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듯이, 네팔에서는 칠리에 찍어 먹나 보다. 소스까지 세트로 그릇 째 주시기에 웃기기도 하고 고마웠다. 칠리는 고추장보다 매웠지만, 오이와 진짜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 신선하게 조화로운 맛에 감탄까지 했다. 정말로 그 조합 자체가 맛있었던 건지,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위안이 된 아저씨의 친절 덕분이었는지, 좋아하지도 않던 오이가 달고 시원했다. 그렇지만 역시 오이가 너무 컸다. 한 조각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두 조각 째 먹고 나서는, 결국 체하고 말았다.


초연한 눈빛의 염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초연한 눈빛의 염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트레킹 로드의 막바지 마을인 비레단티다. 이곳의 한 사내아이가 초콜릿을 달라고 떼를 써서 애를 먹었다. 없다고, 초콜릿….트레킹 로드의 막바지 마을인 비레단티다. 이곳의 한 사내아이가 초콜릿을 달라고 떼를 써서 애를 먹었다. 없다고, 초콜릿….


나야풀 नयाँपुल Nayap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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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나야풀, 트레킹 로드의 초입지. 보통은 이곳부터 트레킹을 시작해 푼힐 전망대, 혹은 A.B.C로 향한다. K가 안내한 시작지는 깐데였기 때문에, 처음 와보는 나야풀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이런 걸 상상하고 우비를 안 챙겨온 것이었다. 마을의 경제를 책임질, 쭉 이어진 상점가에는 트레킹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끝난 트레킹이고 후회는 없었다. 뭐든 준비성 없이 그냥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과정 내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불편함을 동반하는 것. 내겐 그런 게 더 익숙하니까.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팀스와 퍼밋을 체크하고 나니, 정말로 트레킹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이곳에서 마지막으로 팀스와 퍼밋을 체크하고 나니, 정말로 트레킹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


나야풀의 슈퍼마켓에서 콜라를 샀다. K와 나란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음료를 야금야금 마시면서 택시를 기다렸다. 산중과 다르게 공기가 온화했다. 히말라야에서 일주일 간 충분히 시간을 보냈으니 얼른 다시 포카라의 페와를 만나고 싶었다. 젖은 운동화도 좀 벗고 싶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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