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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배동 사모님 Feb 09. 2023

정규직 보단 신혼여행

3. 사실 간절했어요

그와의 연애는 참 달콤했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바로 취업을 해서

2학기 학교 생활은 전혀 하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우리는 캠퍼스커플이었지만

(캠퍼스에서 만나기만 한 커플)

사귀는 동안 실제로 같이 학교 생활은 해보지 못했다.


학생인 내게 직장을 다니는 그의 모습은

참 나보다 훨씬 어른 같아 보였던 것 같다.

서울 시내 한복판 그의 회사 앞에서

학생인 나는 그의 퇴근을 기다렸다.

회사 앞 작은 커피숍은 나의 아지트이기도 했고

커피를 잘 못 마시는 나는 항상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며

그를 기다렸다 (여전히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는 아주 촌스러운 나란 여자)

지금도 그때의 달콤한 코코아맛이 그대로 기억난다.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취업을 생각하게

되는 시기가 왔다. 청소년. 상담 등

전공을 살리고 싶었는데 그 취업의 문은 좁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직업에 대한 큰 고민을 하던 시기

친한 언니가 은행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다.

"수지야 너도 은행 한번 넣어봐"

 응?? 전혀 금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도 못했던 직업

언니와 다른 은행에 이력서를 넣었고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면접까지 최종합격을 했으니


그렇게 나의 첫 면접을 보았던 그곳은

나의 첫 회사가 되었고

현재도 19년째  다니고 있으며

 어쩌면 내 마지막 회사가 될 듯하다.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처음 텔러로 입행했던 나는 사실 정규직을 꿈꾸었다.

그 당시에는 일 년에 한 번씩 정규직이 되는

시험이 있다고 하니

대학생 때 재수도 안 했고 휴학 한 번도 안 한 나는

한 번에 바로 된다면 정말 완전 나이스


그렇게 시작된 내 은행 생활

(나중에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여름~가을 사이에 시험이 있다고 하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순간들이었다. 

고등학생 때 보다 더 열심히 했으니 말  다했다

독서실 등록을 했고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하고

바로 독서실에 가서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했다.

무려 몇 달동 안이나  (지금 생각해 보니 대박이였다)

아마 갈아 넣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지점에서는 귀염 받는 막내였기에 일도 참으로

열심히 했다.

회사에서는 이 시험을 과거 전환 고시라고 표현했다.

그 정도로 되기가 무척 어려웠기에




그가 결혼을 하자고 한다

급한 게 하나도 없었던 25살의 나

지금 급한 건 내게 시험과 면접의 합격뿐이었다.


누나가 8명인 그는 결혼이 급했다.

일단 결혼식만 하자고 한다

세상 쿨한 나

"그래. 시험과 면접이 가을에는 끝날테니 겨울에 합시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로 날을 잡았다.  

지점에서는 온 직원분들이

막내인 나의 은행생활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도와주셨다.


결혼 날짜는 가까워지고

지점장님께 얘기를 드려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점장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응. 수지야"

"저 결혼해요"

 어??? 지점장님 눈이 튀어나오실뻔했다.

한창 시험 준비하고 있는 막내의 입에서

나온 결혼소식  

"너 혹시" (우리가 상상할만한 그 얘기가 나오셨다)

"아니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 일단 결혼만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황당하다.


장 시험날짜가 미뤄졌다.

여름이 지나 가을인데 아직도 시험날짜가 안 뜬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는데 결국 시험날짜는 미뤄져서

내 결혼식 일주일 전 토요일이 필기시험일이 되었다.


결혼식 전에 피부관리도 하고

그렇게 결혼준비로 바쁘다는데

여전히 나는 퇴근 후 독서실로 다시 출근을 했고

공부에 매진했다.


토요일 필기시험을 끝내고

웨딩촬영은 그다음 날 일요일에 했다.

결혼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인생은 시트콤이지)

문제는 필기시험이 합격하면 다음 면접이 있고

면접까지 합격해야 최종합격인데


아무래도 면접일이 내 신혼여행 기간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유부녀를 뽑아 줄까?

시험 후 일주일 동안 별 생각을 다했고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멀기도 했다.


그 사이 필기시험 합격 소식을 받았다.

면접일자는 결혼식 당일까지도 안 나왔다 

결혼 전 지점장님께 신혼여행 기간 중

면접날짜가 잡히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겠다고 나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떠나는 우리의 신혼여행. 지상낙원 몰디브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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