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건축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건축의 모퉁이에서 업으로 삼고 있는 처지에서도 무척 난감하다.
왜냐하면, 타 분야도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건축은 너무나 방대한 잡학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종합예술이라거나 그런 구태의연한 말이 아니다.
수학과 과학, 철학과 논리학, 기호학, 미학과 음향학, 종교 등 그야말로 삶의 전반적인 부분들이 녹아있고 개괄적으로 포용해야 하는 분야라서 그 중 일각을 담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감히 논하기 두려운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부분을 논하기에는 지식도 짧고 밑천도 바닥이라 미리 손들고 항복을 한다.
그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일단은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질서 없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기술하려고 한다.
앞서 기술한 내용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 공간단위를 잠시 언급하였었다.
공간철학이라고만 해도 그리스 시대부터 뉴턴,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열심히 조사하여 기술할 생각은 없다.
특정 전문적인 글들은 관심이 있다면 조금만 찾아보면 훌륭하게 정리된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적 관점에서, 관련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을 기반으로 드문드문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을 써보려 한다.
『공간3, 空間 명사
1.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을 메우다"
2. 상하·사방의 널리 퍼진 것. "생활 ∼"
3. `영역', `세계'를 뜻하는 말.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
4. 철학 ;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 그 객관적 실재(實在)를 인정하는 입장(주로 유물론)과 선천적인 직관 형식으로 하는 입장(칸트) 따위가 있음.
5. 물리학 ;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현상이 생기는 장(場). 물질과 시간에서 독립한 무한의 용기로서의 뉴턴(I. Newton)의 절대 공간이 고전 물리학의 전제로 되어 있었지만, 상대성 이론에서는 4차원 리만(Riemann) 공간이 도입되었음.
6. 수학 ; 일반적으로, 유클리드 3차원 공간을 이르는 말. 광의(廣義)로는 어떤 집합에서 그 요소 사이 또는 그 부분 집합 사이에 일정한 수학적 구조를 생각할 때, 그 집합을 말함. n차원 공간·위상(位相) 공간 따위. "비(非)유클리드 ∼" 』 구글 사전
공간이란 사전적 의미만으로도 복잡하다.
그러나, 전혀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공간에서 태어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죽어서도 공간에 일부분을 차지한다.
늘 숨 쉬고 있는 공기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듯 공간에 대한 자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상황과 공간에 있지 않은 한 우리는 공간에 대하여 별다른 느낌 없이 지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공간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 이 그곳이다.
정확히는 뮤지엄 산에서 상설전시를 하는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관 이다.
사실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뮤지엄 산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 와 제임스 터렐 관 때문이었다.
안도의 작품 중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그랬고, 제임스 터렐의 전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공간적 체험이기 때문에 그랬었다.
터렐의 공간을 경험하는 순간, 이전에 가진 선험적 경험들은 전부 무시된다.
이것은 착시일 뿐이며 교묘하게 인간의 시각적 경계를 이용한 일종의 트릭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게다가 나의 경우는 강의시간과 연구를 통해 대략 어떤 것이라는 사전지식이 있었음에도 그의 공간에 들어서서는 정말 ‘멍청이’가 된다.
심지어 불과 2~3미터 남짓한 공간 앞에서조차 내 눈을 의심하거나 착각하는 일이 있었다.
삼십여 분 정도 걸리는 전시를 체험하고 나와서야 비로소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임스 터렐 관을 나는 두 번 경험 했었다.
두 번째 경험에선 조금 실망을 했다.
뮤지엄 측 문제인지 아니면 새로 채용한 큐레이터의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전시관을 들어가서 나오는 과정이 처음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것은 최초의 전시를 체험하며 받았던 공간적 충격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처음 전시 때 느낌이 ‘탄생의 체험’이라고 표현한다면 두 번째 순서를 뒤집은 전시의 느낌은 거꾸로 ‘죽음의 체험’에 가깝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 과정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작가에 대한 모욕일 것이라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특별한 재질이거나 그래서가 아닌 순수한 공간과 빛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다는 것이고 공간을 채운 매질은 오직 빛과 어둠뿐이었다.
소리 하나 없는 정적의 공간 속에서 왜곡된 공간장치와 지향성을 부여한 빛에 의해 관람자는 몽환적인 트릭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약간의 혼란스러움과 시각적 왜곡에 당황하기도,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1차 관람 때 체험의 마지막 공간인 스카이스페이스 Sky space에 잠시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으면 아주 잠시 ‘도’에 이르기까지 하니 한번은 체험해 볼 전시다.
이 전시를 공간에 대한 단상 첫머리에 놓은 이유는, 공간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구조와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공간을 채운 매질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 공간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이 느끼는 시간에 의해서 공간에 대한 주관적 크기와 느낌은 변화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