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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6

중국의 옛 건축은 어땠을까?

by 능선오름


지금까지 그리스와 로마, 중세 고딕에 이르는 과정을 대강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다 보면 아시아, 그중에서도 가장 땅덩이가 커다란 중국의 건축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어난다.

사실 고대의 건축, 그중 서양 건축사에 포괄적으로 들어가는 내용만 해도 너무 방대하기에 지금까지 대강 ‘공간’이라는 화두에 집중하여 고대와 중세의 공간을 알아봤는데,

중국이라는 나라는 크기도 워낙 크고 역사가 깊어서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서양의 고대 건축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대부분 피라미드 혹은 파르테논 신전 그도 아니면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의 고대 건축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퍼뜩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한옥과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

아니면 기껏해야 만리장성 정도? 아니면 비교적 근대에 가까운 자금성 정도 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서양의 고대건축은 대개 수직으로 발달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있는데,

중국의 고대건축들은 수평으로 크게 확장된 형태라 오히려 단적인 이미지로 눈에 기억되기 어렵다.


시대적으로 만리장성의 축조 시기는 서양사에서는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문명 시기와 겹친다.

당시 한반도는 고조선~부여에 이르는 고대국가 시대였다.

만리장성이 축조될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였기에 가능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중원 외곽이라고 불렸던 이족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다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만리장성이 이족의 침략을 막은 경우는 드물다.

만리장성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문화나 기술로 봐도 고대 중국이 결코 서양의 문명에 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에는 만리장성 이외에는 특별히 기억된 건축물이 없을까?

그보다는 단일 건축물로의 기억되는 이미지를 본다면 서양의 대형 건물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중국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건축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양과 동양의 건축 철학에 대한 차이와 종교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서양의 대형 건물들은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이 신전으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이 종교시설로 이어진 특징이 있다.


물론 동양에서도 앙코르 와트와 같은 대형 사원 건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군집 건축으로서 대형화된 것이지 단일 건축이 대형화된 것은 아니다.

유일신을 믿으며 대형 건축물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서양의 건축문화와는 달리 동양,

특히 중국의 건축은 수평적으로 발달했다.

구대 중국에서 귀족층의 집들은 때로 1,000 개가 넘는 방을 갖춘 대저택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 쪽의 관광지에 있는 유명한 건물들은 기억하지만, 중국의 거대한 스케일의 건축물은 모른다.

이건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건축교육의 방향성에 따른 편향적 시각도 있을 것이고,

어딘가 비슷한 건물이 군집을 이루는 건축에 대해 한눈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공간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재료의 물리적인 차이도 물론 있다.

석재 위주로 건축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건축과 비교하면 중국의 건축은 대체로 목재로 이루어진 건축이 많다.

목재로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 사이를 흙이나 나무판으로 메우는 방식이었다.

이런 구조는 좀 더 섬세한 조형을 만들 수 있으며 색을 입히거나 자유로운 형태의 가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석재 건축처럼 높은 건물을 만드는데 제한이 있고, 화재에 취약한 약점이 있었다.

서양의 고대 대형 건축이 신적인 영원불멸을 지향하였다고 생각하면,

반대로 중국의 고대 대형 건축은 '황제'가 신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서양의 신에 대한 태도가 신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쓰는 형태 ( 고대 불가사의 중 바벨탑이 그러하듯 )로 높이 높이 오름을 추구하였다면,

동양의 신에 대한 태도는 하늘이 곧 '신'이라는 생각에서 불경스럽게 하늘에 닿으려는 생각을 지양하지 않았을까?

중국에도 고대 목조탑 중에 높은 것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역사 속 전란이나 자연재해로 소실되어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대개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재료라고 할 수 있을 나무와 흙을 주로 이용한 건축이 중국 대중 건축의 속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중국의 건축물 들은 대형이라 하더라도 내부에 거대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건축물들이 단일 건물이 아닌, 건물과 건물이 연이어 연결되는 군집 건축의 특성을 보여준다.

중국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은 대부분 건물 내부가 아니라 외부다.

외부에 이어지는 건축물 사이의 회랑과 담장과 담장 사이의 공간들.

여러 가지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를 채우는 공간의 여백들.

이런 것이 전통적인 중국 건축의 미학이라고 하겠다.


즉, 거대한 구조를 만들어 그 내부에 여러 개의 부속실을 만들고,

내부에서 모든 기능이 이루어지도록 계획하던 서양과 달리 중국은 내부에서는 최소한의 기능을 다 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을 중요하게 계획했던 것이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한 중국 건축의 특성과 방향성이 좀 다른 건축들도 있다.


토루와 사합원이다.

중국 남부 광둥성의 토치카식 주택, 객가(客家)의 집단 주택 투러우(土樓),

하늘을 향해 ‘숨구멍’ 천정(天井)만을 낸 후이저우(徽州)의 민가,

북방의 성채와 같은 대저택.

이런 중국 전통 주택의 대표주자는 사합원(四合院)이다.


사합원은 동서남북 사방(四方) 건물이 하나의 뜰(院)을 향해 함께 맞물려(合) 있어 이름이 붙은 주택이다.

이 건축의 형태는 현대 유럽의 고도시에 세워진 도시주택과 유사한 구조를 지녔다.

사합원의 외관은 '벽'만 보인다.

내부로 들어서는 대문도 문 앞에 벽이 가로막아서 돌아 들어가는 구조가 많다.

이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 적절한 구조이며 추측하건대 풍수지리상 집 내부가 들여다보이면 안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 라는 사상과도 연결이 되었을 것이다.


사합원


중국 푸젠 성福建省에는 토루土楼 라는 독특한 집단 거주 주택 양식이 있다.

물론 이 주택형태가 고대 중국의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고 푸젠 성과 광둥 성 일부에 존재하지만,

나라 때부터 건물이 현재까지 보존될 뿐 아니라 실제 후손들이 사용을 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까지 되었으니 여기 소개드린다.

토루의 형태는 외적으로 지극히 폐쇄적이며,

내부에 들어서서도 누가 안내를 하지 않는 한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서방과 냉전 시대였던 마오쩌둥 시절에는 CIA가 항공사진 분석을 통해,

이 건물을 핵미사일 발사대로 착각하고 위성으로 집중적으로 관찰했다고 하는 일화도 전해진다.


토루의 군집


토루 같은 경우는 규모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250가구가 넘는 집단생활을 하는데 출입구는 단 한 군데인 경우도 있다.

그 출입구는 철판으로 덧대어진 완강한 형태로 제작되어,

유사시 문을 닫고 토루 각층에 외부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토루를 공격하는 외부인들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사합원 또한 높은 담장과 겹으로 이루어진 출입문, 복잡한 내부 구조에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왕궁이나 사찰은 그렇지 않은데 왜 서민주택은 거의 3천 년 전부터 이토록 폐쇄적인 구조로 계획되었을까?

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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