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미국의 유명한 현대 건축가 루이스 칸이 수업 중에 청중들 앞에서 했던 말로 유명한 말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 루이스 칸이 물었다. 그러자 벽돌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는 아치가 되고 싶어요."
이 말을 소개한 이유는 서양의 고대 건축 (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 이 고전 건축 ( 그리스, 로마 )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아치이기 때문이다.
과거 그리스 신전들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에서 알 수 있듯 빽빽한 열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한 것이 육중한 대리석으로 신전을 지을 때 천정을 받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서 전래한 아치가 도입됨으로써 로마 건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 아치는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문명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아치?
그러면 왜 아치가 중요한가?
아치가 등장하기 이전의 건축들은 대부분 출입구를 만드는 데 많은 제한이 있었다.
모든 건축구조는 출입문에서 열린 부분이 가장 천장부의 무게를 집중적으로 받아내는 곳이 된다.
그 때문에 고대의 건축에서는 출입문 상부에 장 스팬의 석재를 쓰거나 긴 목재를 사용하곤 했으나, 그 부재의 무게로 오히려 상인방 ( 출입구 상부를 받치는 부재) 이 부러지거나 무너지는 문제가 종종 발생했었다.
이때 아치의 발명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건축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상부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가장 안정적으로 분산시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수학이 가장 발달했었던 인더스 문명에서 아치가 발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 아치가 왜 특히 고전 건축에서 중요할까?
아치로 인하여 인류는 건축이 구조적으로 가진 제한, 폭과 넓이에 대한 부분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었다.
로마의 대표적 유적인 수도교와 판테온을 보면 알 수 있다.
반원형 아치를 길게 연장하면 아치 형태의 복도, 즉 Vault가 형성된다.
아치를 반원 중심에서 빙글 한 바퀴 돌리면 Dome이 만들어진다.
로마 유적이나 유럽의 중세 건축에서 이 세 가지 요소가 빠진다면 단언컨대 유럽의 고대 유적은
형태와 규모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형태의 아치가 있다.
고구려 고분 내부에 나타나는 아치, 그리고 불국사와 석굴암에 나타나는 아치와 돔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고대 유적에는 왜 이런 형태가 적용되었을까?
정확하진 않아도 당시 서양과 한반도 연대를 비교해 보면 대략 로마 시대와 삼국시대가 겹친다.
그것을 보면 아치와 돔의 뿌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인 모헨조다로 유적에는 아치형 천장 구조를 가졌던 도시의 하수도 시설이 있다.
아치의 유래가 어느 문명으로부터였는지는 사실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치’라는 구조로부터 건축 문명이 여러 가지 구조적 제한을 극복하게 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
콘크리트가 없던 시대, 벽돌이나 석재를 이용하여 거대한 공동(空洞)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비좁은 장소가 아닌 넓은 장소에서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고대의 건축물 중 거대하기로는 피라미드만 한 것이 없지만,
그것은 크기가 거대한 것이었지 그 내부의 공간이 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신전들도 구조적 문제로 빽빽했던 열주(列柱) 탓에 내부에 개방된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아치 –볼트- 돔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지니는 의의는 많다.
메소포타미아 나 그리스, 모헨조다로 문명 같은 곳에서 신전은 대부분 대중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숨겨진 공간이었다.
신전 내부보다는 외부의 장대한 형태로 대중을 압도하고 경외감을 품게 만드는 기능이 우선 이었고,
기후의 영향으로 외부 공간에서 충분히 연설과 집회를 할 수 있었었다.
그러던 것이 내부에 집중할 수 있는 거대 공간을 만들게 되면서 종교건축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개방적이지 않은 대형 공간 형성으로 인하여 종교적인 영향력이 더 극대화된 부분도 있다.
참고로 판테온은 석재도 벽돌조 도 아닌 세계 최초의 콘크리트 돔이다.
서기 125년경 건축물에 콘크리트가 적용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고,
이 재료는 소석회 반죽과 포촐라나(Purvis puteolanum)와 인근 화산에서 가져온 가벼운 부석(浮石),
주먹 크기의 돌들로 만들어진 콘크리트가 이 로마 건물의 주재료로 알려졌다.
이 콘크리트는 현재 쓰이는 콘크리트와 매우 흡사하다.
거대하고 높은 천장은 당시의 인간들에게는 감히 인간의 힘으로 도전할 수 없는 신의 권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역량을 훌쩍 넘어서는 구조물이었으니까.
이러한 측면에서 이슬람 사원들이 거대하게 축조되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인 효과 때문에 중세 유럽에 고딕 성당들이 무수히 지어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왜 인간은 거대한 동굴 같은 곳에서 좀 더 신성을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측면의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의 태생적이고 유전적인 경외감 같은 것이 아닐까 막연하게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