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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란한뼘 May 29. 2024

벼랑 끝에 서서

심리상담센터 첫 방문 (1)

첫 심리상담센터 방문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사실 심리상담센터 떠올렸던 시점은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으니, 꽤 일찍이었다. 그때는 진지하게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기보다는 힘들고 못 견디겠으면 찾아가 봐야겠다고 가볍게 생각한 정도였다. 뭐랄까, 후퇴할 곳을 미리 찾아놓은 패전 직전의 장수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잠깐 헛소리였다.


내가 일하며 살고 있는 곳은 중소도시 지역으로 심리상담센터나 정신의학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부득이하게 옆 지역을 검색해 보았는데, 거기에는 열 군데가 훌쩍 넘는 곳 들이 검색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큰 도시로 나가 사는 건가 싶기도 했다만. 각설하고, 틈만 나면 검색도 이곳저곳 해보고, 후기도 자세히 읽어보고, 여기저기 비교도 해보았었다. 내 상태가 더 안 좋아질수록 검색하는 빈도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중 한 곳을 마음에는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이지 않을까? 아직 가보기에는 조금 이른 건 아닐까? 내가 갈만한 상태이긴 한 건가? 내가 진짜 이상해지고 있는 것 맞는 건가? 그냥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 아닌가?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검색이 잦아질수록 수많은 고민과 상념이 함께 소용돌이쳐 허우적거리고는 하였다.


특히나 여전히 심리상담이니 정신의학과니 하는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그런 곳에 간다는 것이 정신적인 나약함이나 어딘가 문제가 있음을 나타는 것 같아 주변에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내에 심리상담센터가 있음에도 금전적인 부담을 안고 외부 심리상담센터를 가게 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특히. 회사 일에 치이고 지쳐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사내 심리상담센터를 간다는 것이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아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심술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힘들게 일하는 동료들이나 상사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혹여 알게 된다면 내가 유난 떤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것도 아닌 것들에 그리도 괴로워했구나.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날들이 계속되다가 벼랑 끝에 스스로 떠밀리듯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고 심리상담센터에 가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예약 당일이 찾아오고 퇴근 후 40여 분을 달려 심리상담센터로 가는 길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는 것을 겨우내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 대해 꽤나 관대한 편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 언뜻 느껴짐에도 애써 무시하거나 알면서도 좋아지겠지 불필요한 낙관에 빠지고는 한다. 이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성취해 나간 시간이 있거나, 혹은 성취를 추구하는 성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운전대는 내가 쥐고 있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자신이 잡은 운전대가 이미 반쯤은 어긋나 있다는 것을


어긋난 운전대를 아무리 힘껏 부여잡고 틀어본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리가 없다. 오히려 길을 벗어나 진창에 빠지고 말 것이다. 자신은 분명 직선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한참을 어긋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자신을 스스로 믿는다는 것은 분명 굉장히 중요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효과적이지만, 자신의 경험적 근거에 잘못 심취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오히려 주변을 보는 시야를 가두고 자신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분명 나는 그러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상황은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고, 변하는 것은 이상해지는 내 상태뿐이었다.


심리상담센터는 조그마한 4층 건물 중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심리상담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미국 드라마의 영향일 것이다. 사실 미국 드라마에서 본 장면 대다수 심리상담보다 정신과 상담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햇빛이 큰 창을 통해 들어와 조명이 꺼진 방 안을 슴슴히 밝히고, 내담자와 상담사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사이에는 낮은 티 테이블이 위치해 있는 그런 흔한 장면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머릿속을 스쳐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투명한 유리문을 여는 순간 방울이 딸랑하고 울렸고, 나는 심리상담센터의 포근한 공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의 내적 탐구와 성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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