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자란한뼘 Jun 03. 2024

조금은 괜찮아 보이고 싶었나 보다

심리상담센터 첫 방문 (2)

상담 선생님의 첫인상은 특별할 게 없었다. 자그마하고 평범하셨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1시간의 상담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금 떠올려보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주저리 했는지도 가물거린다. 첫날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왜 여기 왔는가?'였다. 그 질문을 마주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40여 분을 운전해서 옆 동네에 있는 이곳까지 무슨 이유로 온 것일까. 사실 답은 쉬웠다. 요새 너무 힘들어서요. 제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지독한 무력감에 생활이 무너지고, 의미 있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어요.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에요. 할 말이 참 많았는데, 그 많은 말들을 꺼내기 위해 입을 떼어 첫마디를 내뱉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정적 속에서 부드러운 시선으로 묵묵히 기다려주고 계시는 와중에 시계 초침만이 똑딱이며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이 한 마디를 시작으로 그간 내가 느껴왔던 수많은 괴로움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실 심리상담센터에 가기 며칠 전부터 '이런 말들을 해야지', '이런 순서로 이야기를 해야지', '이런 상태에 대해 설명해야지' 등 혼자서 소설을 쓰고 앉아 있었다. 논리 정연하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온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두서가 없었다. 시간 순서도 꼬여 앞으로 갔다가 다시 빼놓은 말이 있는 것 같아 뒤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쉴 새 없이 떠들다가도 한동안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내가 표현한 것이 사실에 맞는지 혹은 알맞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심하기도 하였다. 내가 너무 과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게 있는 일을 그대로를 전하는 것조차 그렇게 힘이 들었다.


상담선생님께서는 내가 말하는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주셨는데, 어찌나 적절하게 넣어주시는지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할 것을 두, 세 마디로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게 하였다. 참 웃기는 것은 쉴 새 없이 말하는 그 순간에도 '아, 이래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나름 진지한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면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있었나 보다. 그 와중에 생각은 또 달나라로 이어져 상담사라는 직업도 참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 부정적인 감정을 매일 몇 번씩이나 감당한다는 것은 예민한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지인의 괴로운 이야기조차 듣는데 얼마나 많은 심력을 소모했던가. 나도 원하지 않는 정도로 불필요하게 공감하여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의 불편한 마음을 그냥 듣고 흘려내지 못해 마음 한편에 고여놓아 쉽게 상해가기도 하였다. 힘든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이기에 나의 힘든 이야기 또한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될까 싶어 점차 말을 아꼈던 것 같다. 나는 내 힘든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상담 중에 상담사 선생님 걱정이라니, 이게 무슨 오지랖이냐 싶겠지만 이는 어머니를 닮은 점 중 하나이다. 저녁 한창 바쁜 시간 때 무심코 들른 식당이 한산할 때면 어머니와 '아니 저녁 시간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 장사는 어찌할까.'하고 서로 쑥덕이다가 손님이 어느 순간 밀어닥치면 머쓱해져서는 '우리가 마중물인가 보다.'하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문득 내 나약하고 깨지기 쉬운 마음도 어머니를 조금 닮은 것이라면, 어머니는 그동안 괜찮으셨을까? 혹여 살아오신 시간 내 아픔 마음 쥐고 견디셨던 순간은 없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한 가족의 어머니로써 강인하셨지만 간간히 눈물을 비추셨는데,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을까. 괜스레 가슴이 시렸다.


상담은 그렇게 내가 이야기를 쏟아내다가 어느덧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이야기를 더듬어가고 상담 선생님께서 중간중간 한 마디씩 거드는 형태로 계속되었다. 특이한 건 내가 말하는 방식이었다. 내 상태를 이야기하면서도 조금씩 정당화하고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진 않은데, 뭐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하고 말이다. 하나를 이야기하고 다시 거기에 부연 설명을 붙이고, 나름 생각한 원인을 말하고, 혼자 다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는 방식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랬나 보다.


거기까지 가서도 조금은 괜찮아 보이고 싶었나 보다. 



내가 지금 힘들긴 하지만 너무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분명 견디다 견디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찾아가 놓고는 새침한 어린아이처럼 대놓고 도움을 구하기는 창피해 고개를 돌리고 손만 삐죽 내민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내 상태를 스스로 인정한다고 생각해 놓고 끝까지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분명 자존심 같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지켜내야 할 자존심은 이미 남아있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머리로 인정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10분 같았던 1시간의 첫 심리상담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하게 만든 인생 첫 상담이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충분히 잘 해내었다. 나 자신에게는 큰 결정이었고,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내가 해낸 결과에 뿌듯함을 느껴도 좋을 법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나와보는 것을 추천하셨고, 나는 군말 없이 그러겠다고 약속하고는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예약을 하였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니 해는 이미 서녘 끝에 꼬리만 남겨놓고 있었고, 어둑이는 길 위를 번쩍이는 간판들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들만이 무심하게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금은 멍했다. '아! 이야기도 했어야 했는데!', '아니, 이야기는 너무 오버했나? 하고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을 뿐이었다. 후련하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의 힘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참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속되지만 내가 대가를 지불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다소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분은 자발적 선의로 인한 것인 아닌 직업적인 위치에서 내가 지불한 대가로 나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라 생각하니 죄책감이 조금 덜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 자락을 부여잡아 위안을 삼았다.


조금은 그렇게 위로해도 좋은 하루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