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올드타운에 잡으니 리가의 아름답고 재미있는 올드타운을 매일 돌아다닐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올드타운 골목을 탐색하던 중, 제법 넓은 공간에 하늘로 팔을 뻗친 수십 개의 곰 동상이 둥글게 원을 이루며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형형색색으로 개성 있게 칠해진 곰은 각각의 국가를 대표하고 있고 곰의 발 아래에 그 곰이 상징하는 국가명이 붙어있다. 자연스레 나는 대한민국 곰을 찾는다. 빨강, 파랑, 노란색을 사용하여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하는 복장을 하고 있고 몸에는 애국가가 적혀 있다. 그리고 바로 옆의 곰을 흘긋 보니 북한 곰이다. 산과 하늘을 나는 선녀들이 곰 몸에 그려져 있다. 수많은 곰 동상 사이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의 곰이 나란히 서서 팔을 하늘로 뻗치고 있었던 거였다. 그 두 마리의 곰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가 분단된 두 국가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며 나란히 세웠을 듯하다.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던 중에 갑자기 엄마가 화장실이 급하시단다. 어쩌지? 눈으로 360도를 더듬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공중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바로 근처 길에서 과일을 팔던 아주머니에게 여쭤본다. 그랬더니 길 건너의 호텔을 가리킨다. 아르누보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근사한 호텔. 엄마와 나는 서둘러 그 호텔로 걸어간다. 로비의 직원에게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물어본다. 친절한 직원이 화장실을 가리킨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면서 로비의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호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과일 노점상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 다시 그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가방을 뒤져 가지고 다니던 한국 기념품을 전한다.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그 아주머니가 팔고 있던 과일을 좀 살 걸 그랬다.
화장실이 급했던 경험은 이후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도 이어진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건물이 숙박 시설인 거 같아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 직원에게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는지를 묻고 오케이 사인을 받는다. 그런데 여긴 또 어디인가. 화장실이 너무 아름답다. 넓지 않은 곳이지만 정갈하고 품격있게 가꾸어져 있다. 우연히 길 가다 들어왔는데 세면대 옆 한 장 한 장 곱게 접어놓은 천으로 된 핸드타월을 쓰는 게 미안할 정도다. 대체 우리가 들어와 있는 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겉에서 봤을 때는 아담한 집이었는데... 화장실로 돌진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본다. 그리고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그 건물의 이름. 바로 유명한 ‘쓰리 시스터즈 호텔’이다. 14세기 상인의 저택 세 채를 묶어 하나의 호텔로 만들었다는 그 호텔이다. 엄마의 시원치 않았던 컨디션이 놓치고 지나칠 뻔한 유명 명소를 보고 가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