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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지 않는 감자부침 그리고 크바스

by 보리차 Oct 18. 2023

  “엄마, 미얀마에서 먹은 쌀국수 이름은?” 

  “모힝가”

  “그럼 헝가리에서 먹은 스튜는?” 

  “굴라쉬”

  “폴란드 만두 이름?” 

  “피에로기”

  “폴란드에서 우리가 남긴 음식 2개는?” 

  “비고스, 주레크”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호수에서 먹은 음식은?” 

  “키비나이”

  “시디부 사이드에서 먹었던 길거리 호떡은?” 

  “밤발루니”

  엄마랑 여행을 시작하곤 이런 질문을 주고 받는다. 기억력 유지에 제법 도움이 된다. ‘피에로기’와 ‘키비나이’는 늘 헷갈린다. 둘 다 밀가루 반죽에 다양한 속을 채워 구운 것으로 만두의 동유럽 버전쯤 되는 것 같다. 자! 그럼 키비나이를 찾아 떠나볼까? 빌뉴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 후, 버스를 타고 트라카이까지 딱 30분이 걸린다. 호수에 떠 있는 섬 위의 트라카이 성. 전략적으로 중요한 트라카이에서 요새의 역할을 하던 15세기에 완공된 중세의 성. 붉은 빛깔이 눈길을 끄는 트라카이성, 짙푸른 호수, 녹색의 갈대, 흰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 간간이 오가는 패들보트를 배경으로 엄마와 하트를 만들며 사진을 찍는다. 시원치 않은 모델을 화보집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이 멋진 풍광. 평온함이 물밀듯이 번지는 그곳에서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순간을 만끽한다. 그리고 푸른 호수의 출렁임을 배경으로 키비나이를 구경하고 맛보며 오후를 즐긴다. 

트라카이 성

  리투아니아에서 한국 음식이 그리운 엄마를 구해 준 음식은 감자부침이다. ‘우주피스 공화국’을 다녀오며 들어간 식당에서 발견한 감자부침. 그 이후 엄마는 거의 모든 식사에서 이 감자부침을 주문하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우주피스 공화국’? 빌뉴스에 있는 예술가들이 만든 가상의 공화국으로 1997년 4월 1일 수립되었단다. 1990년대 빌뉴스 구시가지 한 켠에 빈민가들이 몰려와 살게 되었고, ‘단 하루라도 무시당하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며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든 나라다. 매년 4월 1일 단 하루, 정식 국가가 된다는데 언젠가 4월 1일에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이다.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기 위해선 천사상을 찾으면 되는데 꽤 헤매었다. 일단 우주피스 공화국 영역으로 들어서니 예술가들의 공간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엄마와 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인적이 끊긴 외진 곳에서는 그래피티들이 음습하게 느껴져 조금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돌아 나올 때는 자물통이 빽빽이 달려 있는 다리를 통과하였다. 처음부터 이 다리를 찾아 들어갔더라면 우주피스 공화국과의 만남이 쉬웠으리라. 우주피스 공화국의 뜻이 ‘강 건너편’인 만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생각을 했어야 했다. 우주피스 공화국 한편에는 헌법을 각 국가의 언어로 적어 놓았다. 엄마가 한글로 된 헌법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2018년 여름, 아쉽게도 한글로 된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은 없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리투아니아 음식점을 찾아 들어 엄마와 나는 메뉴를 정독한다. 엄마가 메뉴판에서 찾아낸 감자부침,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실패할 확률이 적은 치킨을 주문하는데 서빙하는 직원이 ‘크바스’를 권한다. 이 저녁 식사 이후, 엄마는 감자부침을 빠지지 않고 주문하였고, 막걸리를 연상시키는 리투아니아의 저 알코올 음료 ‘크바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조금은 무서웠던 우주피스 공화국 내의 그래피티


감자부침과 크바스


식사때 마다 주문했던 감자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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