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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Apr 30. 2024

'이놈의 기지배'의 잔소리

혼삿길 말고 황천길 막는 걸음

“이놈의 기지배”

어린시절 나의 다른 이름이 그랬다.

유독 두 사람이 윤미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도 나를 그리 불렀다. 굳이 비효율적으로 3배나 고생하면서까지 길게도 불러댔다.


할머니의 것은 하필 둘째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를 시작으로, 눕혀만 놓으면 징그럽게 울기에 그랬단다. 첫 딸은 살림 밑천인 데다 생김새마저 공주같은 첫 손녀에 비해, '없는 집에 다행히 없는 듯 자라준 게' 기특해서였을까? 그 덕에 ‘우리 강아지(5자)’로 잠시 효율을 높이나 싶더니, 격동의 사춘기를 거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한참을 이놈의 기지배로 자랐다.


 다른 한 명은 나의 담임인 적도 없으면서 담임보다 더 치열하게 잔소리를 일삼던 걸스카우트 대장 선생님이었다. 초등교사가 된 지금도 그 시절의 학교문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옆 반 선생님조차도 남의 반 아이들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참으로 끈끈한 조직이 내가 다니던 명주초였다. 운동장 정 가운데에 서서 간단히 안구만 굴려도 뉘 집 자식이 등교 중인지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눈곱을 달고 학교를 가든, 아침밥을 일주일째 거르든, 땟국이 절어있는 옷을 닷새째 입고간들 누구 하나 나의 등굣길에 눈길을 줄 리 없던 시절.

겉은 챙기지 못해도 꼴에 안으로는 체면치레 좀 할 나이였을까? 열두 살 소녀에게 고작 걸음걸이 따위로 시비를 거는 어른이 매일같이 운동장에서 레이더를 곤두세우고 날 기다린다는 사실은.. 종종 나로하여금 개근상을 포기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족히 2년 가까이 아침 시간 또는 방과 후면 자를 대고 그린 듯한 회백 가루 선에 맞추어 워킹 연습을 해야 했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복장이 터지거나 억울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아마도 그 시절, 나에게 몸과 마음의 시선을 함께 건네 주던 유일한 어른이라 고마웠던 건 아닌가 한다. 그 둘처럼 이놈의 기지배까진 아니었어도 옆 집, 건넛집 할 것없이 죄다 나를 ‘불운한 아이’로 명명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이 놈의 기지배,
너 그래가지고는 평생 시집도 못가.
어후~ 양반 납신다. 아주 그냥

어라! 딸도 없는 양반이 공연히 남의 걸음걸이를 살피다 말고, 남의 집 딸 혼사 길을 다 걱정한다. 90년대 오지랖퍼, 장창열 선생님.

 당신 염려와는 달리 내가 어렵지않게 신부가 되던 날, 다행히 웨딩드레스가 걸음걸이를 잔뜩 가려준 터라... 그날만은 잔소리 대신 기쁨으로 울었다. 곱다는 말, 예쁘다는 말을 20년 가까이 아껴두던 잔소리쟁이가 20년 치를 한꺼번에 쏟아내며 눈물을 훔쳤다.


고질병을 끝내 고치지 못한 기지배가 어찌저찌 시집을 가서 아이도 낳고 그럭저럭 사는 걸 보면 팔자걸음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처녀 귀신으로 생을 마감하리라는 선생님의 논리는 기우가 맞았다. 내가 이긴 셈이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먼 걸음 하셨다가 감히 눈물을 보이는 일이 선생으로서 아니 될 일이라 여기고 먹지도 않은 밥값을 10배는 더 치르고 황급히 자리를 뜨셨다. 언어사용의 효율이 묘연했던 분이 윤미 대신 딸! 하고 안부전화를 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아빠가 의식을 잃은 날부터였을 거다. 불운한 열 두 살에서 하루아침에 벙어리 반장으로 언어기능을 잃는 순간까지 매일 아침, 오직 한 아이를 위해 운동장에 곧게 라인을 긋던 마음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걸을 때마다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체온이 느껴지는 일이라 수고롭지 않다. 나를 위한 누군가의 수고를 떠올린다.

남들에겐 살을 빼기 위한 일이거나, 무릎통증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나에게는 그저 회복의 일이 되곤 한다. 불운하지만은 않았을 어린시절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 걷기.


 다른 의미에서 걷기는 사람의 병을 낫게도 하지만 병이 나게도 하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시절 선생님이 내게 베푼 애정을 흉내내며 귀한 지인들에게 덩달아 잔소리를 일삼는다. 냅다 걷지 말라고.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몸을 먼저 만들라고 말이다. 울며겨자 먹기로 걷고 있긴 한데 무릎이 자꾸 닳아버려서 오히려 이러다 영영 두 발로 못 걷는 건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걷는 법부터 익히라고 말한다. 관절이 망가진다는 통념과 달리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바른 자세로 걷는 일은 관절염을 앓게 될 가능성을 낮추는 거 맞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소파에 전신을 눕히며 흔히들 외치는 말, ‘아이고 편하다’ ‘이제야 살겠다’는 말은 미안하지만 틀렸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궁극적으로는 불편한 삶을 살게 되기에 그렇다. 이대로 계속 활동량과 근육 운동량을 줄인 채 소파와 한 몸이 되다가는 "이러다 죽겠네" 싶은 순간이 꼭 온다. 혹자는 나더러 그거 협박이라 느낀다기에 협박 맞다고 화답해 주었다. 이거 협박이니까 지금 당장 ‘잘 걷고 잘 걸을 수 있는 몸부터 만들라’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에 대한 대답은 다음 화에 드립니다

: 혼삿길 말고 황천길 막는 비법,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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