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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Nov 25. 2024

초딩에게는 알보다  닭이 먼저

급식에 진심입니다만


나무가 이따



에구.

곧 죽어도 ‘이따’ 구나.

‘있다’라고 쓰는 날도 오겠지.


아직도 글씨를 쓴다기보단, 보고 그리느라 분주한 민경이의 알림장에 도장을 찍어주다가 티 나게 놀랐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어야 했는데.

알림장 한 번, 아이 얼굴 한 번을 너무 대놓고 넘나들며 놀랐던 모양이다.


제가 쓴 거 맞아요. 선생니임~~!
오늘 급식 닭볶음탕이에요.

저 매워도 잘 먹어요. 이거.


가 매운 걸 잘 먹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못해 미안하다, 민경아.     


한결같이 ‘있다’의 쌍시옷이 버거운 민경이에게 달걀보다 닭이 먼저일 줄이야. 

분명 음탕이었다.



느닷없이 ‘복음’을 전하거나,

재료를 ‘보끔한 탕’이 결코 아닌!

정확히 지지고 ‘볶음’한 메뉴임을 이토록 가뿐히 체득했단 말인가? 우리 민경이가? ㅠㅅㅜ

감격해서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건 아닌지...


(저런...이제와보니, 알림장에 쓰라는 준비물은 안쓰고, 급식메뉴를 적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지도를 못한 교사가 나다. 느므 놀라가지구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제야 미소를 건넸다.


아하! 선생님도 닭볶음탕 완전 좋아해. 이야~ 우리 민경이,
어려운 글자도 진짜 야무지게 잘 썼다.


어찌 엄지척을 날려주지 않을 수 있나.

내 너에게 쌍 따봉을 하사하련다. 


간만에 쏟아진 찬사에 몹시 감격할 줄 알았건만, 아이 표정은 ‘뭐 이런 걸 가지고?’ 쯤이다.

그날의 충격과 오해는 그 후 아이들이 알아서 풀어줬다. 아홉 살의 위력이라기보단 여느 책의 제목처럼 ‘어린이라는 세계’가 그러함을 내가 잠시 잊고 지냈나 보다.


그렇지! 어린이라면 그래야지.


선생님,
우리 그냥 급식 표로 받아쓰기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저 맨날 백 점 맞을 수 있어요. 윤후도 평소엔 3개 겨우 맞는데 주말마다 저한테 문자 보내줘요.

쟤 급식 메뉴 완~~~~전 잘 써요.

그날로 우리 반은 국어 교과서 받아쓰기와는 별개로 매주 수요일 급식표 받아쓰기를 봤다. 요일도 아이들이 정했다. 수요일은 그들에게 ‘특식 나오는 날’로 명명되는, 이른바 잔반 없는 날이니까. 급식메뉴 받아쓰기도 그날 봐야 한다는 게 아이들의 논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쉬는 시간 내내 식단표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홉 살 꼬마들.


어른들도 헷갈리기 쉬운 맞춤법을 잘도 지켜가며 메뉴 이름을 기똥 차게 외운다. 앎과 삶이 연결되는 공부란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먹는 일이란 게 그렇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다를 바 없이 귀한 일.



올 초, 내겐 또 한 번의 깨달음이 있었다. 먹는 것에 진심인 것은 비단 저학년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준현이가 밥상머리 앞에서 투쟁하듯 묵언 수행하고, 반항적인 걸 보니 (눈물 표시)
이 녀석, 드디어 사춘기가 왔나 봅니다.
제가 워킹맘이라 요즘 걱정이 많아요. 선생님께서 잘 좀 지켜봐 주세요.



오~ 새 학기 첫날부터 이런 메모, 반갑기도 하고, 홀로 마음 앓이 하셨을 어머님 마음이 전해져 짠하기도 했다. 담임 마음도 절로 동한다.


읽을 책이 없는 아이가 스물일곱 중 스물인데도, 그 아이들 손에 쥐어줄 추천 책을 30권이나 미리 준비해 둔 스스로를 대견해하던 아침.

준현이에게 박완서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어머니 쪽지에 담임 의도를 실어 본다. 갸우뚱~ 하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까 싶어 물었다.


다른 거 할래? 혹시 내키지 않으면 준현이가 직접 골라 봐”

하고 세상 따스하게 웃어 보였더니 아이도 따라 웃는다. 후유~     


선생님, 혹시… 교회 다녀요?


뭐지, 이 분위기는? 갑자기?


아니, 선생님은 교회 안 다녀.
근데 그건 왜에~?


아이가 다시 웃는다.

1년 전 우리 반 민경이가 전하지 않은 (닭) 복음을 혹시 지금 이 아이가 전하려나?


저는 다니거든요~.


오호라, 아무래도 전도의 몸짓이 맞구나 싶어 아이가 멋쩍지 않도록 최대한 잔잔하게 묻는다.


아~ 그렇구나.
교회 가면 어떤 점이 제일 좋아?
우리 준현이는?


에둘러 아이 몫으로 답변을 넘겨 보았다.

아이들이 건네는 난처한 질문에는 제자리에서 멀리 뛰는 심정으로 최대한 순발력을 발휘해 보자. 샤샤삭.


음, 제일 좋은 건요!
밥이 너~~~~~~무 맛있다는 거?
집밥은 영 입맛에 안 맞는데 말이죠.

 우리 교회는 용인 최고의 맛집이랍니다.     




아이고, 어머니이~~~.

우리 준현이 사춘기 아니네요.

아쉽지만 밥상 앞 투쟁? 그거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다행인 거죠? ^  ^;



그날로 내겐 과제가 하나 생겼다. 준현 어머님께 어떻게 답장을 드릴까? 상담 때까지 기다려 말어? 때로는 학생의 마음을 보듬듯 학부모의 그것에도 돌을 던지지 않는 지혜가 요구되는 직업이 바로 교사니까. 요리 솜씨를 문제 삼지는 않되, 최대한 유연함을 갖춘 상담이 진행되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코자 센스 있는 준현이에겐 ‘같은 요똥이 에미’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손맛의 부재, 그리고 어머니의 염려를 충분히 설명해 두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재치 있고 현명하게 대처할까 한동안 머리를 쥐어뜯었더니 훈훈하게 종료된 상담 전화 후, 마치 그간 앓던 체기가 내려앉듯 개운해졌다.


이날만큼은 아빠 몫으로 넘겨 버리던 둘째 아이 잠자리 독서에 한몫 제대로 하고자 오랜만에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윤미야! 요리를 못하면 다정하기라도.

       


(나 지금, 맛깔스런 목소리로 책 읽어주는 중ㅋㅋ)

           

 "…   아무튼 정말 잘 됐어.
기분이 좋아서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

그러자 깜냥이 뭐라는 줄 알아?

 “음, 저는 먹어야 배가 부를 것 같은데요. 마저 먹어도 될까요?”

"호호 그래. 기분 좋은 소식도 들었으니 맛있게 먹자.”


언제 곁에 왔는지 첫째까지 합류했다.

평소라면 고양이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를 넘나드는 엄마의 목소리 변조를 간지러워할 나이라 관심도 없을 큰 아이의 동공이 커진다.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폭소한다. 느닷없다. 도대체 어느 대목이 이 자매를 동시에 떼굴떼굴 구르도록 한 건지 의아해서 홀로 다시 묵독한다. 또 한 번 샤샤삭!  흠... 어디지?


급기야 배까지 아픈 모양인데. 그저 피식 웃고 말질 못하고. 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내용에 복통까지 호소하고들 있는 건지.


안 웃겨요. 엄만? (아이고, 배야;;)

여기요. 이거 이거 얘, 깜냥~.


첫째 아이가 재우쳐 묻는다.

웃지 않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음, 저는 먹어야 배가 부를 것 같은데요. 마저 먹어도 될까요?”


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문제의 대목은 여기라는데.

과연 작가도 이런 반응을 기대한 걸까? 돌연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 웃지 못해 홀로 찝찝해진 나. 영 이 상황이 마뜩잖다.


결국 이날의 잠자리 독서는 ‘문제를 눙치는 솜씨가 대단한 우리 엄마’ 정도의 결론을 내고 나만 외롭게 마무리되었다.     




자녀들이 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이 먹어. 엄만 보기만 해도 배부르네’ 하는 말이 순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보는 건데 왜? 그럴 순 없다. 네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남들이 많이들 하니까 나도 한 번 뱉어본 적? 기억에 없다.

딸들의 폭소보다는 이 세상에 없는 캐릭터지만 깜냥의 표현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격이라 생각한다.  배는 먹어야 부르지. 그럼 그럼.


민경이의 경우도, 준현이의 마음도, 심지어 _어린이 책 _임에도 어린이에겐 생경했을 고양이 깜냥의 진솔함 또한 모두 내 것과 같다.

먹는 일에 대한 기본 예의 또는 온전한 감정이랄까?


진심은 언제나 통하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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