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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자국 떨어져서 해바라기

아이와 거리두기

by 서수정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 실수투성이에 좌충우돌이었다. 그러다 보니 초보 엄마에서 프로 엄마가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식을 낳고 보니 내 자식이 제일 천재인 것 같고 똑똑한 것 같았다. 이것은 모든 엄마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메이커란 메이커의 책은 다 구입했다.

남편에게 미안해서 한 번은 기존 있던 책 사이사이에 새로 구입한 책을 끼워 넣어 표시 안 나게 한 적도 있다.

( 남편이 몰랐던 사실인데…… 이 글을 보면 배신감이 느껴질까? 하핫 )

억척같은 책 사랑의 엄마를 만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다.


아이와의 초밀착 생활로 인해 내 눈동자 안에 모든 행동이 들어와야 마음이 편했다.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있든지 아이들과 관계된 것들은 ‘ 내 손안에 있사올 시다 ’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와 보내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아이 유치원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 ㅇㅇ 이가 얼굴에 웃음이 별로 없어요" 그러면서 생일 축하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를 많이 웃겨서 간신히 샷하나 건졌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잘 웃느냐고 하시며 아이의 모습을 잘 관찰해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난 그 말을 듣고 아이를 관찰해 보며 왜 그럴까?를 연신 생각했다.

무엇이 부족한가? 사고 싶은 것이 있나? 친구와의 관계가 힘든가 등등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를 살펴보려고 하니 조금은 떨어져 다른 시선에서 아이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엄마와의 초밀착 상태가 문제은 듯했다.

결론은 아이가 나의 눈빛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나의 시선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자유롭지 못한 행동을 유발하기까지 한 것이다.

아이에 대한 과한 사랑이 아이를 심적으로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도 힘들었지만 아이를 위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아이와 한 발자국 떨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이에게 규칙안의 자율을 주었던 시기가 그때부터 인 것 같다.

아이와의 조그만 거리 두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아이가 엄마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도록 아이를 믿어주면 되었다.

아이의 실수는 조금 눈감아 주고 잘한 것은 칭찬해 주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완벽할 수 없는데 그것조차 용납 못하고 바른생활어린이를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도 실수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나도 실수하면 아이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는 그런 엄마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나와의 거리두기,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자신을 믿어준다고 생각한 것 같다.

행동과 생각의 표현도 자유로워졌고 자존감도 점점 높아졌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신경 써주는 것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때 많이 깨달았다.


때론 아이가 하는 것들이 불안하고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 두 번, 세 번 삼키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것은 나를 인내하는 엄마로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많은 성장을 가져다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들을 보며 도움을 주고 싶을 때도 무조건 맡기고 내버려 두었다.

‘ 엄마는 너를 믿어 ’라는 생각과 확신을 주고 싶어서 참고 참았지만 그렇게 안될 때도 많았다.

성미가 불같아서 소리도 지르기도 하고 하고 있던 것을 뺏어서 그냥 내가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니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인내하며 아이와의 거리 두기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들과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은 당연히 그리 해도 괜찮다.

하지만 아이에게 향한 시선은 아이가 잘하는지, 잘못하는지를 판단하는 시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뜻한 시선은 아이를 판단하라고 있는 것이 아닌 아이와 마음의 결을 맞추고 사랑을 보내는 것에만 사용해야 한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면 가끔은 나란히 보기만 하고 걸어도 좋겠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 사랑하고 아끼는 것임을 깨달았고, 아이도 그렇게 느끼게 해 주면 된다.

나의 사소한 행동의 변화들로 아이들을 더욱 책임감 있고 절제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게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아이들을 볶아 공부시켜서 서울로 올려 보냈다고……

물론 푸시한 적도 있지만 아들은 지금도 얘기한다. 우리 집에서 공부하라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그 후 난 아이들과 아직도 사이가 좋은 엄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런 엄마이고 싶다. 아이들에게 착한 엄마...

솔직한 엄마...

지혜롭고 예쁜 엄마

멘토 같은 엄마로...

그들 기억 속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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