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상상몸살

by 유명

20년 동안 매년 11월 마지막주 친정집에서 김장을 해왔다.


김장이야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씻어 물기 빼고 양념을 치대면 끝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 김장의 가장 힘든 점은 모든 재료를 엘리베이터 없이 3층으로 올리고, 완성된 김치를 각자 가지고 갈 만큼 통에 담아 1층으로 다시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추와 무를 사서 집으로 올리고 완성된 김치를 내리는 것도 힘들지만 김장을 위한 다른 준비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쪽파, 무말랭이, 청각, 갓, 진미채, 다시마, 황태, 새우등등의 부재료 준비부터

마늘사서 까기, 커터에 갈기, 생강 껍질 벗겨 갈기, 고춧가루 주문, 젓갈 거르기, 육수 내기 등등 준비할 것이 끝도 없다.

하지만 식구들 겨울 양식이라 엄마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재료를 고르고 씻고 다듬어 양념을 만들었다.

심지어 처음 10여 년간은 남의 손은 믿지 못하겠다는 신념으로 말린 태양초를 사서 깨끗이 닦아 방앗간에 가서 빻아 고춧가루를 준비했다.



사전 준비 과정에서 내가 하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배추와 무를 3층으로 나르고, 추운 주택에서 김장할 생각을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 몸살이 나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년 김장을 앞두고 "상상몸살"이 났다.

멀쩡하던 나는 김장 전날만 되면 으슬으슬 춥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욱신거리고, 손발이 미세하게 떨렸고,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나는 사실 동생들한테 상상 몸살로 유명하다.

큰 일 앞두고는 꼭 상상몸살이 난다.

상상 임신이 있듯이 상상몸살도 있다.

분명히!!!



하지만 친정에 도착해 김장에 돌입하면

"까라면 까는 군인정신"으로 각자의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


군인들이 전쟁에 임할 때 전투복을 입고 위장을 하듯, 우리는 주택의 추위에 대비해 따뜻한 옷을 위아래로 껴었다. 활동성을 위해 조끼로 한겹더 무장한 후 헤어밴드까지 단정히 썼다. 그리고 엄마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여차 하다가는 적에게 죽음을 당하는 군인처럼, 정신줄 놓고 대충 하다가는 엄마의 잔소리에 멘탈이 깨질 수도 있으니.




나도 언제 몸살이 났냐는 듯 장갑을 끼고 엄마의 지시에 따라 양념을 섞거나, 배추를 옮기거나, 배추에 양념을 치대며 김치 담는 일에 집중을 했다.


"아파도 지금은 아니다"

"죽어도 김장이 끝나고 죽자"는 심정으로 일하다 보면 절인 배추는 모두 김치로 변해있었다.

파김치, 무김치, 무말랭이, 고추김치 등등 그때그때 엄마가 준비한 다른 김치거리까지 버무리고 나면 정말로 끝이 났고, 또다시 일사불란하게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김장이 끝나면 몸살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3년 전,

아이들이 크면서 집에서 밥 먹는 횟수도 줄고 김치가 메인보다는 없어도 되는 사이드로 취급이 되면서 김치에 대한 절실함이 줄었다.

우리도 힘들고,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엄마는 더 힘들걸 알기에 각자 김장을 하거나 사 먹자고 뜻을 모았고, 그렇게 김장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이제껏 엄마가 담근 김치가 먹고 싶어도 미안해서 극구 사양을 해왔는데, 어제 엄마가 김치 담갔다고 가져가라고 하길래 염치 불구하고 달려갔다.

배추김치와 파김치와 무김치를 얻어 왔다.

근 3년 만에 엄마김치를 먹었다.

온 식구가 김치하고 밥을 먹고, 고구마위에 김치를 올려 먹고, 입이 심심하다고 무김치를 와작와작 베어 먹고, 매콤 달콤한 파김치를 돌돌말아 먹었다.

밥없이도 김치를 먹었다.


다시 김장을 하고는 싶은데 김장 생각을 하니 또 몸살이 날 것만 같고...

나는 어찌해야 하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