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다.
펑펑 왔다.
대구에 눈이라니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집 앞으로 친구가 왔다.
눈이 이렇게 펑펑 오는데 집에 있기 아깝다며 나를 불러냈다.
길 위에도, 차에도 나무에도 쌓이는 눈은 고요하게도 왔다.
우리는 집 가까이 있는 공원으로 갔다.
펑펑 내리는 눈, 공원 매점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반짝이는 트리 불빛에 젊은 청춘들이 설레어하며 그 밤을 붙잡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친구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고, 깔깔 웃고, 하하하 웃었다.
갑자기 친구가 눈뭉치를 만들어 내게 던졌다.
나는 더 큰 눈뭉치를 만들어 걔한테 던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눈싸움을 했다.
머리에 눈을 뿌렸고, 얼굴에도 뿌렸다.
눈을 뭉쳐 던지고는 도망갔고 , 뛰다가 숨이 차면 항복을 했다가 다시 눈을 던졌다.
지쳤을 땐 눈 위에 퍼질러 앉아 눈을 흩뿌렸다.
우리의 웃음소리도 밤하늘 별처럼 경쾌하게 흩뿌려졌다.
겨울밤이 하나도 춥지 않았다.
던지고 던져도 눈은 쌓였다.
우리는 각자 눈을 뭉쳐 굴리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눈덩이가 무거워 더 굴리기 힘들 만큼.
머리가 젖고 옷이 젖었다.
신발이 젖고 양말이 젖었다.
그 밤, 눈 속에서 우리는 끝도없이 웃었다.
마른 나뭇가지와 돌멩이로 눈, 코, 입을 만들어 눈사람을 완성하고 나서야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눈에 폭 젖은 우리는 공원 매점으로 갔다.
친구가 잠시 기다리라더니 어묵과 떡볶이를 사 왔다.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다~~!!"
떡볶이를 먹으려는데 친구가 갑자기 새빨간 내 양볼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지금부터 오빠라고 불러라~" 했다.
하얀 눈 때문이었던지, 까만 밤이어서였는지, 내가 좋아하는 빨간 떡볶이 때문이었던지 무엇에 홀린 듯 내 심장이 뛰었다.
그냥 친구가 남자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오빠라고 불러라"
라고 했던 동갑내기 남자친구.
눈 오는 날 떡볶이 앞에서 고백받았던 그날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