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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의 도토리

by 올레비엔

개밥의 도토리

동물을 키우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다리가 생기는 것과 같았다. 미지의 세계를 통역해줄 조력자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온갖 궁금증을 다 강아지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물들끼리는 모두 말이 통할까, 강아지는 깜깜한데서도 잘보일까. 강아지 코는 항상 촉촉할까. 냄새로 사람의 질병을 알아챌 수 있을까? 매 순간 궁금증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도토리묵을 쑨날도 마찬가지였다. 도토리묵을 보자마자 ‘개밥의 도토리’가 생각났다. 세상의 비밀을 또 하나 풀 생각에 온갖 맛있는 것들속에 도토리묵 세조각을 숨겨서 강아지에게 줬다. 맛있는 고기들 사이에서 도토리묵은 보이지도 않았고, 항상 식탐이 많아서 급하게 먹느라 쓴 약도 쉽게 먹는 우리 강아지는 정신없이 특식을 즐겼다. 멀리서 문제의 답을 기다리던 나도 도토리묵따위는 잊고 강아지가 먹는 것을 감상할때쯤 여느때보다 훨씬 허겁지겁 먹어치운 식사도 끝났다.

그릇에는 신기하게도 도토리묵 3알만 남아있었다. 실험은 대 성공이었다. 그래도 도토리묵이 고기가 아니어서, 아니면 낯선 말캉말캉한 식감 때문에 먹지 않았을지도 몰라서, 남긴 도토리묵을 집어들고 강아지를 달래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시늉도 하고, 치운다고 으름장도 놓고, 맛있는 거라면서 한번만 먹어달라고 사정도 했다. 몇 번 먹어주는 시늉도 하고 한 개 반정도는 먹어줬지만, 치우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 강아지는 밭에 버려진 썩은 무도 잘 먹는데, 이제 막 쑨 따끈하고 보드라운 도토리묵은 흥미가 없었다. 이후로도 우리가 도토리묵을 먹을때마다 특식과 함께 살짝 섞어서 도토리묵을 줬지만, 언제나 침으로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한 밥그릇에는 도토리묵만 덜렁 남아있었고, 그때마다 신기해하면서 매번 즐거웠다. 가끔 적극적으로 조르면 마지못해 먹어주기는 했지만, 개밥에 도토리는 사실이었다.

개밥그릇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도토리묵이 왜그렇게 즐거웠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세상의 비밀을 조금씩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비밀...
몰라, 그냥 싫은 것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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