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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배운 단어 ,'토마토'

by 올레비엔

가장 먼저 배운 단어 토마토

동물의 입맛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고양이는 단맛을 못느낀다느니, 강아지는 맛보다는 냄새가 중요하다느니, 심지어는 동물도 맛을 느끼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만큼 동물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개나 고양이 조차도 모른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하는 생명체인 새끼강아지와 함께사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처음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처음 먹은 수박이나, 난생처음 고기를 먹었을때가 언제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2달된 강아지와 같이 살면, 세상을 처음 만나는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알려주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가릴줄아는 입맛에는 사는 맛이 다 들어있다.


골든 리트리버는 개들 중에도 식탐이 많은 편이다. 세상에 먹어본 음식이 사료 뿐일때도 밥먹는 시간은 항상 행복해한다. 그런 행복을 되도록 오래 누리게 해주고 싶어서 맛없는 과일부터 천천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사료말고 처음 먹은 음식은 토마토였고, 처음배운 인간의 단어도 토마토였다. 토마토는 너무 맛있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였고, 끝없이 이어지는 귀찮은 훈련도 참아내게 할만큼 살맛나는 단어였다.

토마토를 들고 있는 내게로 펄쩍펄쩍 귀를 흩날리면서 뛰어오던 아기 강아지가 눈에 선하다. 세상의 맛을 이제 좀 알겠다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음흉하게도 한동안 토마토만 주면서 훈련도 하고, 순진하게 설레는 표정을 즐겼다. 그 다음에는 수박을 줬는데, 수박은 토마토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국같은 맛이었다. 첫날은 껍질까지 다먹어치우는 마루를 말릴 수가 없었다. 바나나도 첫날은 껍질까지 다 먹어치우는 것을 간신히 말려서 껍질 일부를 뺏을 수 있었다. 마루 덕분에 시큰둥했던 세상의 달콤한 맛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강아지는 사람이랑 미각이 다른가봐, 왜 뼈다귀를 더 좋아할까?" 강아지에게 줄 고기를 손질하다가 동생에게 물었다.

"개도 고기를 더 좋아해, 없어서 못먹지. 고기는 사람이 먹고 뼈만 주니까. " 동생은 세상 저렇게 멍청하고,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봤다는 듯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대답해줬다. 아. 나는 나밖에 모르는 멍청이였다.

강아지도 고기를 더 좋아한다. 개밥에 평소에 먹기 힘든 고기를 얹어주면, 우리 마루는 사료를 먼저 허겁지겁 먹고는 고기는 아껴먹었다. 맨마지막에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고기의 맛을 음미했다. 강아지가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실험을 해봐도 먹기싫어서 나중에 먹는 것이 아니었다. 뺏길 걱정만 없으면 편안하게 마지막에 음미하는게 맞았다. 미각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법도 알고 있었다. 먹는 것은 동물들에게도 배를 채우면 그만인 충전이 아니었다. 요즘 사람에게는 맛있다는 뜻이 비싸고, 사진이 그럴듯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다시 써야할 지경이었는데,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식사시간이 소소한 행복임을 오히려 강아지는 잘 안다.


이후에 토마토는 결국 찬밥신세가 되었다. 바나나는 통째로 던져줘도 껍질을 벗겨내고 먹었고, 수박은 빨간살이 많이 남았는데도 너무 남겨서 깨끗하게 먹으라고 잡아줘야했다. 제주도 사는 개답게 귤도 잘 먹었다. 마루는 가리지 않고 앞발로 귤을 잡고 껍질을 벗겨 먹다가 힘들면 애타게 벗겨달라고 졸랐다. 절대 껍질채 먹지 않앗다. 젤로는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것만 먹었다. 노지귤은 항상 뱉어버렸고, 하우스귤이나 한라봉 레드향만 먹었다.

귤철이면 우리는 마당에 앉아 동네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귤을 나눠먹었다. 혹여 강아지에게 비싼 귤을 먹인다고 타박받을까 걱정하면서도 포기하기 힘든 행복이었다.



“세상 사는 맛은 고기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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