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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Jul 27. 2024

너무 슬퍼서 엽서를 산다

ADHD+INFP+아들둘맘 정신세계드로잉


Help!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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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덩한 역들 스멀스멀 모여든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종아리를 맛보고 부드럽게 두 발을 휘어 감는다. 모래밭 속으로 깊이 잠식는 몸뚱이. 숙소 앞바다에서 논다던 남편과 아이들은 어디로  걸까. 이 미역의 혓바닥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지. 





브런치 발행일을 지키고 싶던 나는 드디어 발행을 마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저 멀리 현무암 돌밭을 가로지르는 3명의 해수욕 원정대가 보다. 그들이 돌밭을 지나고 나면 찾기가 더 어려워지기에 서둘러야 한다. 아차, 핸드폰 방수커버가 없. 급하게 나가야 할 때, 찾는 물건을 한방에 찾은 기억이 있는가? 나는 없다. 애먼 가방들을 다 뒤집어엎고서야 코 앞에 버젓이 놓여있는 물건을 발견하고 서둘러 따라나선다.

원정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쩜 사람들 수영복 죄다 똑같은 색인지. 이럴 때를 대비한 큰 아들의 화려한 꽃무늬 바지도 무용지물이다. 물구나무라도 서면 모를까 파도 속에 파묻힌 수영복을 확인할 길이 없다. 저 멀리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나는 혼자 미역에 잡아 먹히고 마는가......


십여분 이상 오도 가도 못하다 눈을 질끈 감고 이동을 결심한다. 아쿠아슈즈를 통해 뭔가가 물컹하오만가지 신음을 내며 사투를 벌이다 드디어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끝까지 찾지 못했다. 낼모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돼있기에 오늘 최선을 다해 놀아주는 엄마코스프레를 해야 했다. 결국 실패. 핸드폰 없이 나간 남편에게 성질이 나기 전에 그냥 숙소로 돌아다.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소품가게에 잠시 들다. 나, 정말 아이들을 찾느라 고군분투했자나. 목숨을 위협하는 미역습지를 지나 거친 돌밭을 가로지르고 굽이치는 파도를 넘어.. 생존을 기념하 제주 그림엽서를 고른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애처로운 표정으로 맞이하리라. 너희를 못 만나서 너무 슬펐어.


엄마가 너무 슬퍼서 엽서를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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