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소리가 집 안까지 흘러 들어왔다.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한 마음이었다. 나는 화장대에 앉아 휴대전화로 날씨를 검색했다. 작은 비가 예상되기는 했지만 지금 밖에 내리는 비는 의외로 많은 양이었다. 섬나라 날씨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한 인생과 닮아있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자동차 앞 유리를 둔탁하게 내리쳤다. 와이퍼 속도를 높인 후에야 천천히 아파트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무릎까지 눈이 쌓이는 곳. 그래서 조용히 고립되는 곳. 이곳이 내가 사는 제주의 중산간 지역이다. 해안가의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습도가 덜해서 적응하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폭우와 폭설에 취약하기도 했다.
“오늘은 폭우구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동차 유리에는 쉴 새 없이 내리는 빗자국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가는 장소라 시간을 여유 있게 출발했는데도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비에 가려져 있었지만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집과 나무들, 카페와 반찬 가게. 내가 모르던 공간 속에 툭 떨어져 길을 헤매는 것 같았다.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내 차와 트럭이 스쳐 지나갈 때, 자동차 앞 유리에 물이 튀었다. 촤- 소리와 함께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늦어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자동차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다 보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앞에 내리는 비와 흐릿하게 보이는 사물의 간격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 모든 감각은 비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에 우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이 도착 장소와 가까워짐을 알려주었다.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곳에는 작은 언덕길이 있었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짐작만 한 채로 우회전을 하던 순간 거짓말처럼 선명한 무지개가 보였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무지개는 언제 만나도 반갑다. 제일 변덕스러운 날씨, 그 날씨를 대변하는 것이 무지개가 나타난다는 징조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가을이 와도 장맛비처럼 쏟아내는 하늘이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시동을 껐다. 중산간에서 해안가로 작은 경계를 지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비는 멈추었고 하늘은 더없이 맑게 개었다. 파란 하늘에 당당하게 피어난 무지개, 나는 그날 무지개의 우연함과 찰나의 황홀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만난 무지개는 내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빠는 암이 발견되고 5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치료를 위해 아빠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수시로 119를 부르고 응급실을 달려가게 되었다. 생명의 끈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의사 선생님은 자주 마지막을 말했고 나는 매일 아빠를 잃어가고 있었다. 오늘이, 내일이, 아니면 하루 더. 밥을 하다가도 아이들을 데리러 가다가도 수시로 울리는 전화벨에 내 심장은 내려앉았다. 안타깝게도 죽음 직전까지 가 있는 아빠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아빠가 오늘,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내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그때부터 내 삶도 아빠와 같이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아빠를 따라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3개월 만에 제주로 왔다. 왼손에는 사망신고서를 오른손에는 부동산 계약서를 들었다. 나는 삶과 죽음을 양손에 쥔 채,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알게 된 일상의 소중함. 이것이 아빠가 남기고 간 선물이 아니었을까. 사실 무지개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무지개는 좀 달랐다. 마치 터널 끝을 알리는 한 줄기 빛 같았다. 나는 그 빛이 반가워, 오랫동안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