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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이별을 한다.

by 여름의푸른색



세상에 괜찮은 이별은 없다.


각자가 다른 모양으로 통증을 느낄 뿐, 이별의 고통이 다르지 않다.

아빠를 떠올리면 후회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가슴을 치게 만드는 건 ‘서로에게 더 나은 이별일 수는 없었나‘였다. 쫓기듯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이별이 아니라 천천히 삶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온전히 가족과 생의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거 말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병실이면 어떨까. 독한 진통제를 맞으면서도 우리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아빠는 점점 걸을 수 없게 되고 말할 수 없게 되고 우리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단 몇 개월만의 일이었다.


병원에서 말했던 6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시간과 달랐다. 나는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컨디션이 확보될 거라 믿었고 현실은 달랐다. 초반의 몇 개월은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죽음에 다가갈수록 아빠는 병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내가 아빠와 우리의 마지막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호스피스에 가지 않겠다던 아빠를 나는 끝까지 설득했어야 했다. 더 강하게 적극적으로 권했다면 아빠는 마음을 바꿨을까. 만약 아빠가 호스피스에서 진통제를 맞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으면 덜 아프게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아빠의 고통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암에 대해 몰라서 아빠를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런 죄책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아빠는 마지막까지 통증에 몸부림치다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했다.



아빠가 아프고 난 후, 난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하고 나면 또 다른 결정이 줄을 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나에게 아빠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결정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다. 내 결정 하나에 아빠의 삶이 단축되기도 겨우 6개월의 여명을 지켜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빠의 병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루 2시간씩 자면서 모든 자료를 뒤지고 찾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달려오는 시간을 내 힘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언제나 나보다 빨리 내달리고 있었다.



남유하 작가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에서 한국인 조력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작가의 엄마는 암 환자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했다. 조력 사망.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일이라 숨기고 둘러대며 스위스까지 가게 된 가족의 이야기였다. 암으로 인해 죽음보다 더한 통증에 시달리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하는 말을 직접 듣고 그를 위해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약물을 마시고 영원한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까지. 엄마의 곁을 지키는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딸이 겪어야 할 참담한 상황들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한때는 나도 막연히 아빠도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만약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랬으면 분명 우리의 마지막은 달라졌을까.


아빠가 떠나고 내게 다가온 첫 번째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아빠를 더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 병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면, 그래서 더 좋은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 아빠가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고 알렸어야 한다는 마음, 딸로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 내 안에 여러 가지 죄책감이 색을 달리하며 섞여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무책임한 딸이 되어버린 나는 매일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빠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내 힘으로 이미 저승으로 간 아빠를 다시 이승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절은 차례를 지켜 찾아왔다. 꽃이 피고 꽃이 졌다. 그리고 나는 다음 꽃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죄책감은 그리움으로 변했다.


아빠에게 걸어두었던 추억의 무게 추 하나를 내 쪽으로 가지고 왔다. 오늘도 하나, 내일 또 하나.

지금도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병원도 척척, 항암제도 척척, 그리고 아빠의 외로운 마음도 살뜰히 챙겨둘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알았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사람들도 각자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를 조여오던 죄책감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암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를 떠나보낸 후에도 카테고리 안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비슷한 이별의 무늬를 품은 채, 가끔 서로의 무늬를 알아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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