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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Oct 16. 2024

설마, 일이 항상 재미있을리가요.


터벅.. 터벅..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박 주임이 출근하는 게 분명하다. '안녕하세요.' 하고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내뱉음인가. 무표정에 시선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어서 어깨에 멘 하얀 테니스 채와 가방을 옆 의자에 내려놓더니 후, 하고 한심을 쉰다. 딸깍. 노트북 전원을 켜더니 영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박 주임은 10개월 전 입사한 우리 팀 신입니다. 아마 합격 문자를 받았을 당시에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을 테다. 입사 첫날, 회사 로비에 들어서며 자신의 열정을 모두 바치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팀에 인사 왔을 때의 에너지 꽉 찬 목소리와 생기 가득한 표정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수십 번의 서류와 면접 탈락 끝에 자신을 받아준 곳이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끓어오르던 의지는 어디로 갔을까. 무미건조함 속에 무료한 시간만 흘려보내는 듯 보인다. 박 주임에게 회사는 일 한 만큼 돈을 주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 버린 듯하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퇴근 후 가는 테니스 장일지도 모르겠다.


박 주임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조용한 퇴직'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퇴사는 하지 않지만 1인분 역할만 하겠다고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더 안타까운 건 그 모습을 주변의 동료가, 상사가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건너편에 앉아 계신 한 차장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침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웃는 얼굴로 출근한다. 차장님이 등장하면 왠지 모르게 사무실에 생기가 돋는다.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마치 경쾌한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는 듯하다.


가장 빛을 발 할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일을 맡았을 때다. 처음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신다. '일단 해 보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시작하다 보면 다 방법이 보일 거예요.'라고. 어쩔 땐 팀장인 나조차 차장님의 긍정 에너지에 휩싸여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마구 샘솟기도 한다.


자신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팀원이 조금이라도 어려워 보이거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선뜻 손길을 내민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에이, 뭘요. 쉬운 일인데요, 뭐.' 하고 싱긋 웃어 보이고 만다. 차장님은 회사가 즐겁기만 한 공간일까? 진정 일을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퇴사하기 위해 입사한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위한 자본이나 투자용 종잣돈을 마련해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단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취업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어도 기대했던 일이 아니거나 성장이 정체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열정이 사그라들 수도 있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성장하고자 하는 니즈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켜 준다면, 리더가 개별 역량과 의지에 맞추어 업무를 부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조직과 리더는 모든 사람을 살펴봐주기엔 환경도 역량도 부족하다. 때로는 잘하고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맞지 않는 일을 던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불만만 가득한 채 일하는 만큼 돈만 받아가자라는 생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게 맞을까? 이는 스스로에게 수동적인 습성을 심어주는, 회사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이 아닐까.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사무실을 오고 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걸음걸이, 눈빛, 표정은 물론이고 대화하는 말투, 보내온 이 메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맡겨진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를. 적당히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분 중 한 명의 실제 이야기를 공유해 본다. 주어진 일은 문제없이 하셨다. 하나 그게 전부였다. 팀장들은 소위 말하는 중점 업무를 차장님에게 맡기지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그저 그런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드머니만 벌고 퇴직하겠다던 차장님은 결국 일상에 필요한 자금조차 모으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반대로, 일을 즐겁게 하려는 사람들도 연 눈에 띈다. 걸음걸이 자체가 다르다. 어깨는 쫙 펴져있고 앞을 보며 당당하게 걷는다. 눈빛은 의욕에 꽉 차 있고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넘친다. 대화를 몇 마디만 주고받아도 순식간에 열정이 전해진다. 이런 분들은 일 처리 또한 완벽에 가까우며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상사들은 점점 굵직한 주요 업무들을 부여하게 된다. 어떤 일을 맡기더라도 즐겁게 열정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조직 생활에서 선순환의 정수인 것이다.





몇 개월 전 한 차장님과의 점심을 함께 하던 날. 차장님에게 꺼지지 않는 열정의 이유를 여쭤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차장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하셨었다.


"팀장님, 사실 저는 너무 늦게 알았어요. 기왕 하는 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요. 아마, 주임, 대리님들은 아직 모를 수도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그때 더 빨리 깨달았다면 훨씬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아서 아쉬워요. 투덜 대며 지냈던 시간들이 아까워요. 그래서 지금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마음만 달리 먹어도 확실히 결과도 좋아지더라고요."



일잘러들은 정말 회사 일이 즐겁기만 할까요? 설마, 그럴 리가요. 힘들게, 어렵게 해 온 일일수록 성공한 순간 도파민이 극에 치닫습니다. '드디어 해냈구나! 드디어. 와, 진짜 힘들었는데. 정말 잘했다.'라는 셀프칭찬과 함께요.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은 이때의 느낌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마치 인사이드아웃에서 즐거움의 구슬을 담아놓는 것처럼요. 이후 어떤 일을 맡더라도 그때의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나 스스로 뿌듯하고 싶어서 일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기왕 하는 일 즐겁게 한다.' 이 말은 곧 일을 제대로 잘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성장할 수 있는 기본 마음가짐이라고 할까요.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을 할 때에도,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려운 일을 마주해도 마음가짐을 바꾸면 달리 보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시야가 달라지고 성과 또한 따라오게 되는 거죠. 성과는 곧 스스로의 자신감과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고요.

혹시 지금 조금 지쳐 있나요? 매일 쳐내야 하는 루틴으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나요? 마음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아주 작은 움직임이지만 커다란 성장을 가져다준답니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두 주먹 꽉 쥐고 더 세게 외쳐보세요. '에잇! 기왕 하는 일 즐겁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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