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유 Oct 18. 2024

'네?' or '네!' 나의 대답은 어땠나요?


매년 1월이면 주임, 대리들의 눈빛이 뭔지 모르게 바빠진다. 아마도 팀장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테다. 회사에서는 매년 조직문화 활성화를 위한 '조직문화 리더, 영보드(Young board)'를 선발한다. 이들은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위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운영까지 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신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요구되기에 '젊은' 직원들이 뽑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 일을 맡기기가 일반적인 팀의 업무를 부여하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원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회사생활 속에서 어느 누가 이 일을 맡으려고 할 것인가. (물론, 간혹 가다 인싸이면서 아주 외향적인 분들이 자원하긴 한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우리 팀은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으니 얄짤없이 한 명은 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선정 기준이 주임, 대리라니. 어쩔 수 없이 김 주임과 이 주임에게 눈을 돌렸다. 3개월 전 입사한 김 주임, 1년 정도 더 근무한 이 주임. 회사 상황을 알아가고 있는 김 주임보다는 이 주임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요즘 일을 할 때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기존에 진행하던 방식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보였다. 직무교육 업무를 1년 넘게 해 왔으니, 영보드 역할을 하면서 조직문화 업무까지 확장을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 주임에게 다가가 잠시 미팅을 하자고 했다. 이 주임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채 회의실로 졸졸 따라 들어왔다. 나의 의도를 잘 전해야 할 텐데, 잘 설명해야지. 하고 첫마디를 떼었다.


"주임님,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 네. 팀장님."


"요즘 일 어때요?"

"아, 직무교육 맡은 지 이제 1년 정도 되어서, 무리 없이 잘하고 있습니다."


"아, 좋네요. 제가 보기에도 주임님이 일을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더 확장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네?"


"매년 영보드를 뽑잖아요. 거기에 주임님을 추천하고, 조직문화 업무까지 조금씩 영역을 넓히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제가요? 저 아닐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정색 그 자체였다. 정말 하기 싫어 보였다.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미팅에서는 이 주임의 생각을 잘 알겠다고 하고 일단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여러 생각들이 속사포처럼 오고 갔다. '갑자기 얘기를 꺼내서 당황했나, 더 자세히 설명을 했어야 했나... 그래도, 너무 티를 내는 거 아닌가. 민망하구먼.'


그날 퇴근할 무렵 메일 한 통이 왔다. 이 주임이었다. 김 주임이 맡을 줄 알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제안을 해서 놀랬단다. 영보드도, 조직문화 업무도 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내가 의도한 대로 되긴 했으나, 뭔지 모를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라고 하니까 할게요.'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김 주임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려면 눈치가 꽤나 많이 보이겠다는 생각도 얹어졌다. 미팅에서의 단 몇 마디 대화로 김 주임은 일을 주기 어려운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일 한번 해 볼래요?'의 질문에 '네, 해보겠습니다.'와 '네? 제가요? 네 알겠습니다.'의 두 가지 답은 확연히 다르다. 그때 상사의 머릿속은 어떨까. 첫 번째와 같이 답을 했을 때는, '오, 적극적이네.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다. 두 번째의 답에는 '아, 이 일을 하기 싫어하는구나. 새로운 일 맡기가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이렇게 하기 싫은 티까지 내니 당황스럽네.' 하고 씁쓸해할 것이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나 또한 아직도 열 중에 아홉은 하기 싫은 일들이다. 얼마나 싫으면 데드라인 하루 전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밤새 매달리다 완성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보면 회사 생활뿐만이 아니라 빨래, 청소, 설거지와 같은 집안일 등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도 싫은 일들이 늘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할 일은 해야 한다.


집안 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회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친구 사이에도 문자 하나, 단 순간이 표정 만으로도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매 순간 평가되고 있는 회사 생활이면 오죽할까.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평판이 판이하게 뒤집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 흔쾌히 받는 편이 낫다. 상사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역량과 상황을 고려해서 일을 맡기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임무를 권한 것이 아니라 통보한 것이라는 말이다.

맡겠다고 해 놓고 못할 같아서, 제가 몰라서 등의 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해 보고 나서 정말 어렵고 힘들 도움을 청해도 늦지 않는다.



기획팀에서 우리 팀으로 이동하게 된 차장님 한 분이 계신다. 차장님이 원해서는 아니었다. 이전 부서에서 다른 사람으로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마침 우리 팀에 공석이 있어서 일종의 강제 발령이 된 것이었다. 보통 부서 간 직원이 이동할 때 팀장들끼리 만나 맡았던 일이나 역량, 장점, 단점 등에 대해 공유를 해준다. 그 미팅 자리에서 이전 팀장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팀장님,  이 차장하고 같이 일 하기 어려울 지도 몰라요. 교육팀도 변화 업무들이 꽤 많잖아요. 우리야 뭐 항상 새로운 일이 대부분이니까. 그런데 이 차장에게 변화 업무 주기가 진짜 어려워요. 단호하게 못하겠다고 할 때가 너무 많아서. 나는 더 이상 같이 일 못하겠더라고요. 팀장님한테 미안해요. 내가..."




변화와 새로움을 반기는 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의욕과 열정을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을 거다. 어떤 일이 부여되어도 웰컴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거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티 내지 말아야 하는 거다. 표정이 다소 어색하고 기계적이더라도 하하하 웃으며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적절한 스킬이 필요한 거다. 적어도 일을 맡기기 어려운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변화와 새로움을 반기는 분이라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열정과 의욕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일이 부여되어도 웰컴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죠. 거부한다고 할까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을, 거부감을 티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새로운 일을 제안받았을 때, 표정이 다소 어색해 보이고 기계적이라 하더라도 하하하 웃으며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적절한 기술이 필요한 거죠.
솔직히 말하면요. 상사들도 알아요. 새로운 일을 맡기 싫어한다는 사실을요. 그래도 해보겠다고 하니 얼마나 더 기특해 보일까요. 저는 여러분이 적어도 일을 맡기기 '어려운'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전 07화 일, 적어도 쪽팔리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