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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Oct 22. 2024

우아하게 움직이는 백조처럼

팀에 갑자기 공석 한 자리가 생겼다.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이니 당장 함께 일 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다. 주임 급이면서 똘똘한, 무엇보다 마인드와 태도가 좋은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다. 그동안 만났던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았다. 공채 교육에서 발표했던 분, 공개특강에서 질문하던 분, 그 외 미팅에서 대화를 나누던 분들...


오, 맞아. 김 주임이 있었지! 하고 직원 한 명이 번뜩 생각났다. 팀에서 진행하는 조직문화 프로젝트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매월 미팅에 참석할 때마다 자료 준비도 꼼꼼하게 해 왔고, 아이디어 또한 적극적으로 내던 눈에 띄는 직원이었다. 밝은 웃음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환하게 떠올랐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미팅 가능하냐고. 아니나 다를까, 웃음 이모티콘과 함께 흔쾌히 좋다는 답장을 받았다. 잠시 후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카페에 둘이 마주 앉았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음에도 이렇게 바로 나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바로 대화를 이어갔다.



"주임님, 잘 지냈어요? 그나저나, 제가 왜 보자고 한 지 알죠?"

"하하, 네. 팀장님. 알 것 같습니다."


"바로 얘기할게요. 교육팀에 자리가 하나 생겼어요. 혹시, 같이 일 해볼 생각이 있을까요?"

"(미소를 띠며) 앗, 네. 우선 생각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교육 부서에 관심이 많았었어요."


속으로 '야호!'를 외치고는 다시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김 주임이 교육팀에 왔을 때 하게 될 일들을 날것 그대로 설명해 줘야 했다. 만약 김 주임이 생각하던 일과 다를 경우 부풀었던 기대감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폭삭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실망감은 기대하지 않았을 때 보다 배가 되어 와닿을 것이 분명했다.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와, 반갑네요. 긍정적으로 말해줘서 고마워요. 지금 심정이야, 바로 주임님을 데려오고 싶지만(웃음), 주임님의 경력이 달라지는 거니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니까. 어떤 일을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주임님이 궁금한 점도 답해 준 후, 일주일 또는 이 주일 뒤에 다시 보면 어떨까요?"

"네, 팀장님.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음...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할게요. 신입사원 중에 교육팀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들 앞에서 교육을 운영하거나 강의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정갈하게 옷을 입고 말을 하는 일은 100중에 10도 되지 않는 일부분이거든요. 그전에 준비하는 깨알 같은 업무들이 깔려 있어요. 교육생 리스트를 취합하고, 엑셀로 정리하고, 세미나실 예약은 물론이고 문구류와 간식 구입 등 단순하고 부수적인 일들이 훨씬 많이 차지해요."


속으로 '주임님, 너무 보이는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면 아니 됩니다.'라는 한 마디를 에둘러서 전한 거였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김 주임은 내 말이 끝나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물 밑에 있는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것도 결국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요. 입사하고 나서 특히 많이 깨달았어요. 자잘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크게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요."


감탄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 생각을 꿰뚫는 대답과, 당연히 모를 거라고 여기며 훈수 두듯 말 한 나의 모습 때문이었다. 내가 김 주임과 비슷한 때, 그러니까 입사 2년 차에 과연 김 주임과 같은 생각을 했었을까?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업무들을 반복하며 입이 대빨만큼 나왔던 것 같은데. 회사 일들의 생태계를 이미 완벽히 파악했다니, 그리고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니, 꼭 데려와야겠다는 욕심이 더 커지게 된 자리였다.





이후 두 달 뒤, 김 주임은 우리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함께 일한 지 반년이 흘렀다. 미팅에서 받았던 깊은 인상을 매일 일로,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습득하는 속도가 특출 나게 빠르거나 기획력이 뛰어나거나 등의 실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간혹 지시받은 내용을 조금 놓치기도 하고, 실수가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이 부족한 모습을 어떻게든 보완하려는 노력이 보였기.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본인이 맡은 영역은 어떻게든 해 내려는 의지를 비쳤기에. 또한, 이러한 마인드가 뒷받침된다면 실력이야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저절로 높아질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김 주임은 자신의 사수와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유독 자주 살펴보게 된다.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지, 더 넓은 영역의 일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줄 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이토록 잘 키워보고 싶은 후배가 생긴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저 또한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멋들어지고 근사한 일을 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한 팀에 소속되어 일을 하다 보니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단순하고 쉬운 일들만 했었어요. 투덜대고 실망하고 때려치우고 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어쩔 땐 부품 중 하나로 느껴지기도 했죠.

그런데 일을 하는 햇수가 지날수록 그 적은 일들이 결코 작기만 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장 한 줄, 엑셀 표 하나, 종이 한 장들이 모이고 모여 흔히 말하는 멋들어진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몇 년이고 작은 일들만 계속해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잘해 보이는 일들도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알고 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결과의 질은 물론이고 과정에서도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보이게 되거든요.

기억해야 할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대부분 일 잘하는 사람들은 분명 일이 쏟아질 듯 많은데 평온해 보여요. 신기할 정도로요. 그분들 역시 물 밑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답니다. 최선을 다해서요. 덕분에 물 위에서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우아하게 움직이는 백조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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