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유 Oct 15. 2024

'나의 일'은 지금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Episode1.


오늘도 이 주임은 입이 뽀로통하다.

입사한 지 어느덧 6개월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급여 데이터 정리와 같은 단순한 일만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인사팀에, 그것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으나 이토록 시시한 일만 하고 앉아 있으니 한숨만 나오는 듯하다.


사실 이 주임은 사회생활이 처음이었고 인사 업무 경력도 전무했다. 그래서 팀장은 선임 차장이 있는 파트에 이 주임을 배치했고,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치게 했었다. 이를테면 전화받는 법, 이메일 작성하는 법, 폴더 정리법 등과 같은 것들을. 파트 내 자료 추출이나 분석, 일정관리 등의 일도 함께 맡기면 좋겠다고 권했었다.


초반에는 정신없이 배우는 듯 보였다. 처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온전히 자신의 일을 맡지 못해서였을까. 드러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사실, 팀장은 오랜만에 받는 신입사원이라 잘 '키워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팀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 차장님에게 제대로 가르쳐 보라고 부탁했다. 어느 정도 잘 따라오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그에 맞추어 영역을 넓혀 주려는 계획이었던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습득력이 더뎠고 온전히 일을 맡기기에는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한 듯했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급여 데이터 정리에 작은 오류가 자주 보였다. 직원들 대상 복지 안내 메일에 중요한 일정이 빠져있는 경우도 있었다. 팀장이 직접 보고를 받을 때면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꽤나 많아서 일일이 가르쳐 주기가 쉽지 않았.


한편으로는 선임 업무 밑에서 지원 업무만 하고 있으나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온전한 자신의 일이 쥐어져야 더 신나게, 열정적으로 일을 한다고도 들었으니까. 그러나 팀장의 마음은 꼭 렇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하... 그래도 아직 이 주임에게 일을 단독으로 맡기기에는 불안해.. 지금 하는 일을 실수 없이 해 내야 다른 업무를 더 줄 수 있는데... 지원 업무더라도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해 보라고 얘기해야 하나, 일이 아니라 회사에 마음이 뜬 건가. 내가 괜한 말을 꺼내는 건지 모르겠네...'


어쩐단 말인가. 팀장의 마음속에 작은 의혹의 불씨까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Episode2.


박 차장은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들을 보니 막막함이 밀려온다. 다음 날 있을 경력사원 면접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합격한 데다가, 면접관용으로 출력해 둔 자료마저 죄다 뒤죽박죽 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김 주임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김 주임님, 뭐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아, 네. 차장님. 그럼요."


"여기 면접 조별로 이력서랑 면접 평가표 모아서 각 회의실에 있는 면접관 자리에 좀 놓아줄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 인쇄 순서가 잘못되어서, 다시 출력해야 할 것들도 좀 많은데…."

"괜찮아요. 차장님, 해볼게요."


김 주임은 두 팔을 걷어붙이더니 자료들을 모으고 인쇄하기를 반복했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게다가 박 차장이 부탁한 일 말고도 다른 것도 하고 있다. 면접관이 서류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간지를 추가하기도 하고, 접관용 문구류도 정갈하게 정리해 두었다.


뿐만 아니다. 박 차장에게 슬쩍슬쩍 질문도 한다.


'차장님, 자기소개서 항목은 누가 정한 거예요? 채용 종류마다 다르게 제시되나요? 나중에 평가표 정리는 어떻게 해요?' 등과 같이.


가만 보니 김 주임은 자신이 맡고 있던 일들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 이 메일을 보낼 때도, 데이터를 정리할 때도 나름의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는 게 눈에 보였. 물론, 간혹 실수들도 나왔지만 그건 일에 대한 경험만 쌓으면 충분히 커버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 주임,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김 주임이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좀 찾아봐야겠.'


이후에 실제로 김 주임에게 기획부터 운영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다. 당시 김 주임은 날개 단 듯 신나게 일을 했. 업무의 기본을 배운 상태에서 자신만의 업무라는 책임감까지 더해졌으니 훨훨 날아오른 것이다.




위 두 사례는 팀장으로 근무하며 듣고 접했던 일들이다. 무엇이 두 사람의 6개월 후, 1년 후를 다르게 만들까? 바로 지금 내 앞에 놓인 일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 주임은 왜 빨리 자신만의 일을 주지 않나 아쉬워하고 있고 김 주임은 그 시간에 부여된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일단 한다는 거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회사에 첫 출근을 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기대감이 가득 차있어 보인다. 자신만의 일을 맡아서 주도적으로 핸들링하며 성과까지 내는 모습을 상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놓인 일이라고는 자잘한 업무들 뿐이다. 미팅 일정 잡기, 자료 찾기, 메인 보고서도 아닌 첨부 자료에나 들어갈 만한 데이터 정리하기 등과 같이. 그렇게 단순하고 남의 일만 지원하는 업무만 매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들어왔나.'



냉정하게 보자면, 회사는 주어진 시간과 비용 안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이다. 직원은 비용과 시간을 모두 사용한다. 만약 많이 봐줘야 하는 직원이라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봐주는 사람도 그만큼 인건비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증명된 사람에게 중요한 업무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그런데 일의 기초를 다지고 있는 사람, 방향을 잡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거나 실수가 잦은 사람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을까? 아니다. 초반에는 작은 업무들을 먼저 부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결과물을 점검한다. 이후에 일의 크기와 깊이를 달리하게 되는 거다. 즉, 어떤 일을 맡길지 '관찰되고' 있는 단계인 것.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다면 회사에서는 수시로 매일 퀴즈를 내고 채점한다 보면 된다.


단순한 업무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회사 일은 단순 반복 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반복적인 일을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하고 변화 업무에 역량을 쏟아붓느냐도 능력이다. 그러니 일단 맡은 일을 제대로 하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보란 듯이 해 내자. 다음 임무의 레벨이 달라질 테니.  



이는 비단 신입사원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맡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어쩌면 후자가 10중에 8 이상이라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대리, 과장, 차장이 된다 한들 다를 바 없고요.  
그럼, 재미없는 일, 주목받지도 못하는 시시한 일들이 주어졌을 때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상사가 시킨 일만 해야 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계속 지루한 일만 반복하다 결국 조직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일이더라도 지금 맡은 일에 집중하세요. 스스로 뿌듯할 정도로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 보세요. 그럼 중추적인 업무를 맡게 되는 상황이 될 겁니다. 신나게 일하는 기회는 처음부터 찾아오지 않는 사실, 그 기회는 내가 만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이전 02화 까다로운 상사를 만나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