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Jan 10. 2024

옛날 같지 않아

EP 05

집 앞의 육교는 지나다닐 때마다 타임머신을 통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은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무슨 말이야?'

'그냥, 어릴 때에 비해서 뭔가 허전하고, 어떤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지금도 뭔가 의미가 있겠지?'

'그런가?'

'흠.. 채워지지 않는다.. 라...'



신기하게 나는 30대 초반까지도 아침에 일어나면 막 가슴이 뛰었다.

마치 천진난만한 일곱 살 소년처럼 말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떤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명절이 되면 나의 마음은 들뜨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내가 아니라도 주변에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랬던 내가 시내의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길거리 상점들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어도 마음이 들뜨지 않게 된 것은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아니 뭐, 그다지 큰 계기는 아니고, 그냥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잠을 설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오늘만 이럴 것이고 내일 아침이 되면 또다시 내 마음이 설렐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아침도 평소와 다름없는 맑은 아침이었고,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나는 문득 내 마음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차분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이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특별히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때까지 내 평생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밥을 먹었고, 이를 닦았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길거리에 걷는 사람들은 어제처럼 자신들이 가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날 아침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발걸음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저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날도 그저 전날과 똑같은 하루였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변한 것을 뚜렷하게 느꼈다.


그날 저녁, 나는 당시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던 여자친구에게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만약,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와 헤어져달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명절

#크리스마스

#기분

#가슴이 뛴다

#옛날과는다르네




Q: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런 이유 없이 가슴이 설레어 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요?


이전 04화 뒤돌아보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