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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14. 2024

할. 아버지

EP 02

출처: 구글

'Grand + Father'

'할 + 아버지'



어떤 사람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때로는 혼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어릴 적 부모님의 존재는 신을 대신하는 존재일 정도로 거대한 존재일 것이다.


나에게도 아버지의 존재는 그랬다. 특히, 내가 1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나의 인생에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이 바로 아버지이며, 지금도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버팀목이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나는 13살부터 15살 때까지 2년 동안 거의 못 보고 살아야 했다. 내가 14살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간병하시느라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하고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며 어머니를 간호하셨고, 내가 15살 때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잃은 아픔을 달래며 오래 계획하셨었던 외국 유학을 먼저 떠나셨다. 그렇게 나는 한창 부모님이 필요할 시기에 혼자 한국에 남겨졌는데, 다행히도 외가와 친가의 사랑과 지원 덕분에 그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내가 15살 되던 해,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외가로부터 친가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나를 보고 있으면 죽은 딸이 생각나서 너무나 슬퍼지신다는 외할머니의 눈물 섞인 한탄과 친동생, 또는 친언니의 발병과 죽음의 원인을 죽은 자매의 남편(나의 아버지)에게서 찾으려는 이모들의 분노가 그 이유였고, 아버지는 참다못해 나를 친할아버지 댁으로 옮겨 놓으신 후에 먼저 미리 계획했던 유학의 길을 떠나셨다. 그래서, 나는 방년 15살의 나이; 그러니까 요즘으로 따지면 한창 중2병으로 부모님 속을 썩이고 있을 법한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사실, 그때까지는 내가 특별히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님이 곁에 없는 그 상황이 조금은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나에게 큰 간섭을 하지 않으실 것이라서 웬만하면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특히 어차피 한국에서 한 학기만 버티면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전처럼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자는 내 생각대로였지만, 전자는 아니었다. 할아버지 댁에서 살기 시작한 그날부터 나는 할아버지의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밥은 왜 더 안 먹냐', '밤에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공부도 좀 해라', '전기를 아껴 써라' 등등 평소에 부모님 두 분으로부터 들었던 잔소리들을 할아버지 한 분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시골의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수요일, 나는 학교에서부터 몸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내가 당시에 전학을 와서 다니던 시골 중학교는 할아버지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고, 학교로 가는 길에 언덕길과 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날 나는 아침 등굣길에 타고 간 자전거도 타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고 매우 열이 높았다. 학교에 양호실이 있었지만, 일단 나는 마지막 수업을 참여하지 않고 선생님께 내 상태를 말씀을 드린 후에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멀쩡한 몸이었다면 단지 30분 안에 갈 수 있었겠지만, 나는 거의 두 배인 한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집에 도착해서 거실로 들어간 이후에 거실에 걸려 있는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왠지 나 같지 않아 보였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에 누워있었고, 내 옆에는 물이 들어있는 대야와 물수건이 있었으며, 조금 매캐한 한약 냄새도 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은 왠지 조금 어두워진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서 누워있던 내 시선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벽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오후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뭐야? 아직 두 시간 반 정도밖에 안 지났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더 자려고 몸을 옆으로 돌렸는데, 몸이 정말 가뿐한 것이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지만 몸이 매우 가볍게 느껴졌다. 당시의 내 몸 상태가 그냥 2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극적으로 좋아질 리가 없는 상태였지만, 순간 나는 '아직 내가 어려서 내 몸이 정말 회복력이 빠르구나. 역시 젊음이 최고야'라고 생각하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들어오셨고, 들어오시자마자 손을 내 이마에 대 보시며  몸은 어떠냐고, 병원에는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매우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할머니께 팔을 들어서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나는 젊어서 두 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말짱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얼굴이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오늘이 금요일이라고 말해 주셨다.


엥? 금요일? 무슨 금요일?

나는 웃으면서 할머니께 오늘이 무슨 금요일이냐고 오늘은 수요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 할머니는 조용히 TV를 켜셔서 오늘이 금요일임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렇다. 나는 수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 직후에 거실에 쓰러졌고, 그 후로부터 깨지 않고 무려 약 48시간을 자고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할아버지께서 꼬박 이틀 동안이나 계속 나를 간호했으며, 한약방에 가서 약도 지어 와서 나에게 먹여 주셨다고 말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하지만, 조부모님; 즉,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도 역시 부모님의 사랑만큼이나 크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경험으로 깨달았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과는 조금 다른 방식과 표현의 사랑일지는 모르지만, 절대 부모님의 사랑보다 못한 사랑은 절대 아닌 것이다.


약주도 많이 드시고, 나에게 잔소리도 많이 하셨던 할아버지셨지만, 이유도 모를 정도로 몸이 많이 아픈 손자를 위하여 밤새 간호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오늘 가만히 떠올려 본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영어로 할아버지는 "Grandfather"이며, 이 단어는 "Grand"라는 형용사와 "Father"이라는 명사의 합성어이다. 원래, "Grand"의 어원은 라틴어 "Grandis"인데, 이 단어가 가진 의미는 바로 "Full-Grown"으로써 한국말로는 '다 자란, 완전하게 다 성장한'이라는 뜻이며, "Grandfather"을 이런 어원적 의미로 이해해 보면, 바로 '완전하게 다 성장한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란 의미는 바로 "사랑이 온전하게 다 성장한 아버지"인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할아버지를 어떤 분으로 기억하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나를 이틀 동안이나 밤새워 간호해 주셨던 그때의 할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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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어떤 분으로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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